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의 꿈과 소망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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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선생.
임채욱 선생.
사진 제공: 한국 상징문화연구소

43년 동안 남북 문화 분야 연구와 관련 책 10권을 쓴 이가 있다. 바로 한국 상징문화연구소 임채욱 이사장이다. 전 세계에 사는 한국인들은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통일의 물고 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라는 큰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래서인지 임채욱 선생의 남북한 문화 비교한 책들이 통일 한국 문화의 폭을 넓히고, 통일문화 형성에 큰 역활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43년 동안 남북 문화 연구에 힘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의 꿈과 소망의 시간으로 함께한다.

임채욱 선생은 지난 43년 동안 많은 남북문화관련 책을 썼다. 어떤 책들인지 소개해 달라고 했다.

임채욱 선생: 저는 북한문화에 관한 책 10권을 썼습니다. 그 중 4권은 다른 분과 함께 쓴 공저이고 6권은 제 단독으로 쓴 것입니다. 이 가운데 3권이 내 세울만한 책인데 2001년 9월에 나온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 그리고 1년 뒤인 2002년 9월에 나온 <북한상징문화의 세계>, 또 2004년 5월에 나온 <북한문화의 이해>가 그것입니다. 이 3권 가운데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책, 가장 대표적으로 내세우 고 싶은 책이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서울문화 평양문화로 대표되는 남북한 문화를 비교하고 나아가서 통일한국 문화의 폭을 넓히고 통일문화를 형성하는데 도움되는 문화내용들을 찾아내려고 한 작업이었습니다.

임채욱 선생의 저서 '북한 문화의 이해' 표지.
임채욱 선생의 저서 '북한 문화의 이해' 표지. 사진제공-임채욱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 책은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강조했을까?

임채욱 선생: 공간적으로는 휴전선 이남과 이북을, 시간적으로는 광복 후 오늘날까지 남북한에서 이뤄진 문화들을 포괄하여 검토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책의 한계도 있습니다. 남북한 문화의 전 분야를 다 망라하면서 비교하지는 못하고 가능한 범위에서만 이뤄진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투리와 표준말, 구호와 표어, 기념일 행사, 애국하는 모습, 미의식, 상징색과 기호 색, 삶의 질과 행복감 등의 특이한 내용들을 많이 다루었다는 특징을 갖지요. 이 책에서 저는 북한문화를 ‘주체 일색의 훈고학 문화’, ‘자기충족적인 환상의 문화’로 규정했지요.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서울문화와 평양문화를 단순히 통합한다고 통일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요.

임채욱 선생의 다른 두 권의 책 ‘북한상징문화의 세계와 북한문화의 이해’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설명해 달라고 했다.

임채욱 선생: <북한상징문화의 세계>는 이 땅에서 첫째가고 둘째가던 서울과 평양이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한반도의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려고 적대적 대결을 벌여오면서 각자의 상징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 상징 대결을 선의의 경쟁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문화의 이해>는 북한이 주체성과 민족성을 내세우면서 남한문화 풍토를 반민족적이라 규정하면서 자기들은 문화적 정통성 확보에 한발 앞서고 있다고 기세를 올리기도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을 파헤쳐 본 것입니다.

임채욱 선생은 북한문화의 이런 특성이 있다고 설명해준다.

임채욱 선생: 중국 한나라나 당나라 시대에 무슨 말에 주석을 많이 달게 되는 훈고학이란 학문이 유행했는데 북한문화분야가 바로 김일성의 말에 주석을 다는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에 착안해서 저는 북한문화를 ‘주체 일색의 훈고학문화’로 규정했지요. 또 북한문화는 ‘주체일색의 신민 문화’이기도 하지요. 조선조 초기 한 문신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읊은 글에서 이 몸이 한가한 것도, 이 몸이 서늘한 것도, 이 몸이 춥지 아니하옴도 다 임금의 은혜라고 했는데 북한 주민들이 읊는 글들이 이런 식으로 읊고 있으니 조선 초기 왕조시대나 같은 신민 문화, 신하 신, 백성 민 신민 문화에 다름 아니지요.

임채욱 선생은 통일문화로 나아가는 방향도 제시한다.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이걸 못 보면 평생 후회한다고 자랑하는 집단체조 작품 <아리랑> 공연을 비롯해서 옥류금 같은 국악기를 만들어 내고 그림에서 보석화 기법이란 것을 개발하고 문학에서 종자론을 내세우며 독특한 무용표기법을 지어내기도 합니다. 또 많지요. 사투리를 사용 못 하게 억제도 하고 남한보다 먼저 번역한 고전도 많지요. 이렇게 남한에서 눈여겨봐야 할 좋은 문화도 있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이런 것들을 민족문화라는 큰 보자기에 주워담으면서 남북한이 함께 통일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임채욱 선생은 북한에서 우리의 순수 전통문화와 북한정권문화는 엄격히 다르다고 설명해준다.

임채욱 선생: 북한과 북한지방은 얼핏 생각하면 그게 그것이지요. 하지만 개념적으로 다르다고 봐야하지요. 평안북도 영변군에는 묘향산이라는 아주 좋은 산이 있습니다. 이 산에는 보현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고 또 북한정권이 세운 국제친선전람관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보현사는 고려 시대에 세워졌고 국제친선전람관은 북한정권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모아 두려고 지은 건물이지요. 이 두 건조물은 하나는 광복 이전에 지어져서 우리 민족의 문화자산으로 되어 왔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정권과 관계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편의상 광복 후에 세워진 것은 북한정권 문화라 할 수 있고 광복 전의 것은 북한지방 문화라 할 수 있겠지요. 건물뿐 아니라 다른 시설물이나 학교, 제도, 풍속, 의식 등 모든 분야에서도 광복 이후와 이전을 나눌 수 있지요.

임 선생은 북한문화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준다.

임채욱 선생: 왜 이렇게 구별을 해야 하는가 하면 몇 년 전 이런 일이 있었지요. 일본에 있던 북관대첩비를 한국으로 옮겨 올 때 관계 공직자가 하는 말이 원래 북한에 있던 유물을 돌려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유물은 북한 정권이 만든 유물이 아닌데도 북한에 있던 것이라 하니 북한에서 만든 문화재인가 하면서 오해할 수 있지요. 이때는 함경북도 길주에 있던 것이라든가 아니면 최소한 북한지방에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야 정확한 것입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지요. 2012년 7월 남한 방송에서 북한무용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방송보도가 있었는데 이 때 조금만 생각해봐도 북한무용을 왜 남한에서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말인가 의아했을 것입니다. 의문은 곧 풀렸으니 평안도, 황해도에 전래되어 오던 전통무용을 대상으로 해서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면 그렇지요. 분단이전의 것이야 민족 공통의 자산이니까 남쪽에서도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지만 만일 광복이후 북한 정권에서 생겨난 춤이라면 남한에서 문화재로 정할 이유가 없지요. 이 때 그 방송보도는 북한의 무용이라 하지 않고 북한지방의 무용이라고 해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의 북한과 북한지방을 구별해야 하는 논리이다.

임채욱 선생: 저는 북한과 북한지방을 구별해야 하는 논리를 이렇게 세웠지요. 북한이란 개념은 시간적으로 해방 이후이고 공간적으로 38선 또는 휴전선 이북지역으로 한 마디로 북한정권과 관계가 있는 것들이 모두 포함되지요. 반면에 북한지방은 해방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간적으로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지역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새로 나타난 북한정권과 관계되는 것만을 포괄하지만 북한지방은 광복 이전과 이후가 통시적으로 연결되고 공간적으로는 북한지역이라는 지역성을 갖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해 보겠습니다. 옥류금이란 악기가 있습니다. 전통국악기인 와공후를 가야금처럼 눕혀서 연주 할 수 있게 개량한 악기죠. 이것은 북한 정권하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또 천리마운동이나 최고인민회의 같은 것은 북한정권과 관련되어 나온 것이어서 북한이라는 개념에 포섭됩니다. 그러나 이제 말한 보현사나 대동강변에 있는 부벽루 같은 정자는 광복이전부터 북한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지방 문화라는 것입니다. 같은 묘향산에 있어도 보현사는 북한지방 문화지만 국제친선전람관은 북한문화란 것입니다. 북한지방문화는 민족 전래의 문화이므로 통일문화를 형성할 때 거의 그대로 채택되겠지만 북한정권하에서 만들어 진 북한문화는 채택 안 되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 중에서도 통일문화에 좋은 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야겠지요.

임채욱 선생의 북한문화 연구에 대한 회고이다.

임채욱 선생: 저는 요즘 좋은 글 읽고 가끔은 글쓰기도 하면서 주말이면 등산도 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편인데 사람은 즐겁기만 해서는 안되겠지요. 즐거움과 함께 뜻 있는 일도 있어야 겠지요. 좋은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이 즐겁고 뜻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늘 내가 북한과 관련해서 그동안 연구하고 가르쳐 왔던 내용들이 헛것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강조했던 지식이나 가치관과는 너무나도 다른 가치들과 행동들이 우리사회에서 날뛰고 있다는 거지요.

임채욱 선생의 통일의 절박성에 대한 한 마디이다.

임채욱 선생: 통일의 절박성을 담은 이야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1970년대 중반 서울의 정부부처에 근무하는 한 젊은이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 왔지요. 그때는 대체로 그랬지만 신랑 신부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집들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지요. 이 신랑 신부도 직장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했지요. 신부가 준비한 맛 난 음식도 배불리 먹고 술도 몇 잔 마셨으니까 자연 노래 한 곡씩 부르게 되지요. 몇 사람이 부른 다음 신랑에게 한 곡 부르라고 독촉을 하는데 이윽고 일어난 신랑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였습니다. 잔치 분위기엔 좀 안 맞지요. 이럴 땐 생뚱맞다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동료들이 외칩니다. 그 노래 때려치우고 다른 노래 부르라고. 하지만 신랑은 계속 부르더니 2절까지 부르고는 처음부터 다시 부릅니다. 그때 신부도 일어나서 따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신랑의 눈에는 눈물까지 흐릅니다. 신부도 웁니다. 그제서야 동료들도 알아차렸습니다. 신랑이 왜 저 노래를 부르는가를! 드디어 동료들도 일어서서 함께 부릅니다. 그래서 그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열 차례도 더 불려 졌습니다. 신부도 알아차리고 동료들도 알아 챈 것은 신랑이 6.25때아버지가 납북된 이산가족이라는 사실이지요. 여러분, 이런 장면이 1970년대 중반 그 때로 끝났습니까? 이산가족 문제는 얼마나 절박한 문제로 우리 곁에 있습니까? 이런 뜻에서 새해에는 북한문제나 통일문제를 다루는 인사들은 한 층 더 진지함과 절실함을 담아서 문제에 접근하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북한문화평론가로서의 나아갈 방향과 포부이다.

임채욱 선생: 저는 통일문제 연구에서 기능주의적 접근법을 적용하는 시도도 해보고 했습니다만, 북한의 상황이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좋은 성과는 내지 못했지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고 합니다. 다만 옛 방식이라도 진지함과 절실함으로 접근해 보면 좋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43년 동안 남북 문화 연구에 힘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의 꿈과 소망의 시간으로 함께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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