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태권 가족 이룬 보스톤 이강원 씨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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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춘천 사범을 졸업한 이강원 씨는 춘천 지역에서 20여 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74년부터 1984년까지 당시 운영하던 농장 운전기사의 차 사고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퇴직하면서 이강원 씨는 제2의 체육인으로 인생항로를 찾게 된다. 평소 마라톤, 배구 등 운동에 심혈을 쏟고 태권도 현재 공인 9단 유단자인 이강원 씨는 1985년 대한 배구협회의 국제심판 자격으로 미국 켄터키 대학으로 가면서 인생항로가 바뀌게 된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만능 체육인 이강원 씨의 꿈과 소망의 이야기로 함께한다.

이강원 선생이 태권도 폼을 선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이강원 씨)
이강원 선생이 태권도 폼을 선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이강원 씨) 사진 제공: 이강원 씨

만능 체육인 이강원 씨는 어떤 운동들을 했을까? 궁금하다.

이강원: 처음에는 기계 체조를 한 2년 했었고요. 그 후 중2 때 육상을 하고 마라톤도 해서 강원도 대표 선수까지 했습니다. 제2회 3.1절 기념 경인 간 역전 경기에서 강원도가 2등 할 때에 제가 3구간을 뛰었던 육상 선수였고요. 태권도를 어렸을 때부터 했습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가서 점프를 잘하다 보니까? 극동식 배구를 하게 돼서 배구를 잘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에서 또 제가 2군 대표로 배구를 하다 보니까 제대하고 나서 학교 체육에서 배구를 하게 됐습니다.

이강원 씨가 배구를 시작한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이강원: 극동식에서 국제식으로 바뀌는 그때에 두 가지를 군에서 했습니다. 군에서 배구를 하는 바람에 이후 학교에서 배구를 가르치다 보니까? 배구인이 되어서 춘천 시내에 상촌 초등학교라고 있습니다. 상촌초등학교에서 5년 동안 초등학교 여자 배구 전국 제패를 5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그 당시는 서울에 있는 학교나 큰 학교가 배구를 했었는데 상촌초등학교가 75년부터 78년까지 각종 대회에 나가서 전국 제폐를 한 것입니다. 그래 초등학교 봉직 때 보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한 배구협회에 국제 심판으로 그동안 각종 대회나 배구 현장에서 심판으로 활약했습니다.

이강원 씨는 현재도 태권도장을 보스톤에서 운영하고 있다. 태권도를 배우게 된 동기가 있었을까? 그의 이야기 들어보자!

이강원: 저는 어머님 때문에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6.25 때 공산당에 의해 어려움을 겪게 되어 어려서 가슴에 상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싸움을 잘 안 했었는데 한 큰 아이가 싸움을 걸어와 한 번 싸움했습니다. 사흘 동안 했어요. 점심을 싸 가지고 가서 학교에서 먹고 나서 싸우고 그래 사흘을 싸웠는데,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고 앉혀 놓고 말씀을 하시면서 네가 아비가 없는 후레자식(배운 데 없이 제풀로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른 말)이 되려느냐! 하고 제 종아리를 때리려고 하다가 그냥 우세요. 그러면서 종아리는 안 때려 주고요. 그래서 그 우는 어머니를 보고 이제는 싸움하지 말아야지! 그러고 있다 보니까 싸움을 안 하려면 뭘 해야겠는가! 힘을 좀 길러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제가 그 길로 태권도를 배우러 나가기 시작해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이강원 씨는 오랜 세월 동안 태권도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한 분이다.

이강원: 군에서 군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태권도 교육대는 아닌데 오후에 4시간씩 가르치고 사범 하다 제대했는데 그 이후 미국에 와서 85년도에 이스턴 켄터키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나와 한 선배를 만나 태권도장을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강원 씨는 자녀들 태권도 교육에도 힘썼다.

이강원: 다른 운동은 못하더라도 태권도는 해야만이 사람 됨됨이가 되지 않느냐! 어려움을 참고 인내를 기를 수 있는 또 도전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지 않느냐는 것을 몸소 알기 때문에 저희 아이들만은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딸 중에서 큰딸 하나만 제대로 못 했고 나머지는 남자 둘 여자 둘 다 태권도를 가르쳐서 딸들도 2단까지 따고 했는데.

지금은 3대가 태권도 사범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강원: 저의 체육관에서 할아버지, 삼촌, 조카가 사범이 되어 가지고 우리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가르치고 있고, 아무튼 저희 가족은 전부 합해서 27단입니다. 저는 9단이고요. 9단 된 지가 벌써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저희 제자들이 4-5천 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범들도 많이 배출했고, 그래서 저는 미국에서 저와 저희 제자들과 함께 협회를 하나 조직해서 ‘전통 태권도’ 연맹을 조직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권도 시범을 하던 이야기다.

이강원: 미국에 와서는 태권도 도장을 열어서 활동하면서 옛날에는 저희 선배님들이나 같은 청도관 후배, 동료들과 함께 미국에서 여러 시범도 하러 다니고 지금까지 태권도를 했기 때문에…..

이강원 씨는 태권도를 가르칠 때 정신교육을 많이 시킨단다.

이강원: 보람된 이야기는 태권도를 가르칠 때에 정신을 많이 가르칩니다. 지금은 국기원 태권도로 가르치니까? 기술 부분을 중요시하는 데 옛날에는 미국 아이들에게 정신교육을 많이 시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말썽부리는 아이들, 집에서 부모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서 그 아이들을 바르게 만들었을 때 그 부모들이 고맙다 하고 좋아할 때 이게 하나의 태권도가 체육이라기보다는 이건 정말, 인성교육을 시키는 하나의 교육이다는 것이 분명하게 볼 수 있는거 이런 것을 볼 때 보람이 있는 거지요.

이강원 씨는 김영일 씨(전 서울대 체육교수) 한차교 씨 등과 함께 미국에서 태권도 대학 개설을 위해 힘을 모았다. 시카고의 한 인디언 대학 부설로 케이스 대학을 세웠고, 6회 졸업생까지 배출하면서 본격적인 태권도 대학으로 발돋움 하려다 함께하던 학장이 기독교 대학으로 바꾸려는 움직임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 것, 지금까지도 아쉽다고 회고한다.

이강원: 조금만 더 연륜을 가졌으면 학과를 늘려서 태권도 학과를 만들려고 다 준비를 했었는데 그만 그렇게들 하는 바람에 태권도학과가 인가를 받지 못하고 그 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서 미국에서의 유일하게 태권도 대학을 하나 만들려고 했던 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강원 씨는 1986년에 시카고 근교에서 태권도장을 열었고, 1987년부터 5년간 야간대학에 다니며 지역경제학을 공부해 1991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만 51세의 나이였단다. 만학도로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인 이야기 함께 듣는다.

이강원: 우리 자녀들이 이민 와서 언어가 안되어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중학생 고등학생 때 왔는데 자녀들이 정말로 고민을 하고 해서 그래 아이들 보란 듯이 아버지는 나이가 먹었어도 공부한다. 너희들이 미국에 와서 1년도 안 됐는데 지금 와서 어떻게 미국에서 나서 산 아이들과 똑같이 언어가 통하고 학점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 그러니까 그냥 장래를 위해서 지금 현재 있는 데로 공부를 열심히 해라! 그래 아버지도 모르는 단어 찾아가며 밤새도록 공부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공부를 했어요. 아이들은 낮에 가서 공부하고 저녁에 오지만, 저는 낮에는 도장에서 학생들 지도하고 저녁에 도장 문을 닫고 햄버거 하나 사서 차에서 먹고 야간 대학에서 공부하고 밤늦게 와서 숙제하고 자는 등 이런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열심히 했습니다.

자녀들의 자랑을 해 달라고 했다.

이강원: 아들이 둘이고 딸이 셋이에요. 현재 딸 셋은 다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큰딸이 MIT 핵공학 박사로 의료 핵공학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화여대 의대 교수로 있고, 작은 사위가 역시 미국에서 핵 관련 박사 학위를 받아 이화여대 핵융합연구소장으로 가 있어서 작은딸도 한국에 가 있는데 작은딸이 미국의 골프티징 프로입니다. 막내딸도 핵융합 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가 있어 딸 셋이 다 한국에 가 있고, 아들 하나는 MIT 핵 연구소 엔진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큰아들은 옛날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래 큰아들의 돌잡이 아이들을 키웠는데 그중에 딸 손녀는 지금 미국에 모델로 활동하면서 한국에 파견 내 보내서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강원 선생은 이제 7 순의 아직도 젊음을 과시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이강원: 지역사회를 위해서 안보에 대한 활동을 해야 되겠고요. 특히 건국문제를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지금 정체성이 없어서 나라가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그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건국에 대한 활동도 하고요. 태권도를 하니까 아이들 정신 교육 시키고 그거지요.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만능 체육인 이강원 씨의 꿈과 소망의 이야기로 함께했다. 진행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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