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한 주민들이 몰래 사는 불상, 발각되면?
2024.10.17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애국풀 재배하려면 벼 면적을 줄여야
-북한이 사료 부족 해결 못 하는 이유
-가정집 상비 부적이 된 불상
북한 당국이 한 해 4번이나 수확한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애국풀로도, 대체 자원으로도 가축 사료 부족 현상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집안에 몰래 불상을 사놓고 기도하는 북한 주민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발각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자세한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진행자: 중국산 사탕수수를 새로 개량한 것처럼 선전했던 북한의 애국풀, 마치 중국산 손전화를 들여와 껍데기만 북한산으로 탈바꿈한 것과 같은 느낌인데요. 2015년 가축 사료 문제를 해결할 거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애국풀 재배는 현재 북한 매체 보도와 달리 실패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문 기자, 애국풀 재배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뭘까요?
문성휘 기자: 네, 2015년 8월, 인민군 810군부대 산하 1116호 농장을 찾은 김정은이 그곳에서 심어 가꾸던 개량종 사탕수수에 ‘애국풀’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애국풀의 정체가 중국에서 소 사료로 널리 이용하고 있는 사탕수수라는 사실을 알려왔죠. 북한 당국은 이를 숨기고 주체적으로 만들었다며 사료작물로 가치가 높은 애국풀을 전국 각지에 대대적으로 심을 것을 지시하기도 했는데요.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난 2021년 8월 5일, 북한의 ‘노동신문’을 비롯한 관영매체들은 애국풀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대규모 축산기지로 건설된 강원도 세포지구와 평양시, 평안북도 등 각지에서 애국풀 재배면적을 늘리고, 생산수준과 이용율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마디로 애국풀을 재배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재배면적을 늘리고 생산 수준과 이용율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 활발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데요. 6년이 지나도록 이런 정도면 이건 공식적으로 애국풀 재배에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라고 밖에 더 이상 설명드릴 수 없습니다.
6년이 지나도록 왜 애국풀의 재배면적을 늘리지 못하고 있나 여기에 대해 소식통들은 애국풀의 재배 조건이 벼 재배 조건과 비슷해 심을 땅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결국 애국풀을 많이 심으려면 벼의 면적을 줄여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의 식량난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기다 북한은 애국풀을 전문적인 농장에서 심고, 사료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축산시설이 있는 주변에만 심고, 축산시설에서 자체로 사료로 만들어 쓰다 보니 재배로부터 관리, 수확, 가공, 보관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다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강냉이와 밀, 보리 짚을 비롯해 따지고 보면 북한엔 애국풀을 대신할 만한 사료 자원이 넘쳐난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입니다. 그러니 김정은의 욕심과는 달리 애국풀은 주민들과 축산관리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진행자: 애국풀 대신 강냉이와 밀, 보리 짚으로 가축 사료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거네요. 강냉이와 밀, 보리 짚은 그동안 북한에서도 충분히 확보가 가능했을 텐데, 왜 그동안 사료 부족을 해결하지 못한 겁니까?
문성휘 기자: 북한을 들여다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북한은 늘 자력갱생을 외치지만 정작 자력생생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일부러 멀리 돌고 돌아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요. 젖소와 염소를 많이 키워 어린이들에게 젖가공 제품을 넉넉하게 공급한다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중요 목표입니다. 젖소와 염소 먹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부터 사탕수수 애국풀을 대대적으로 심을 것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애국풀을 대대적으로 심어 축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김정은의 꿈은 주민들의 반발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한해 농사를 짓고 남는 강냉이와 밀, 보리 짚으로도 얼마든지 사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애국풀까지 심어야 하느냐는 것이 주민들의 반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왜 강냉이나 밀, 보리 짚으로 사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냐? 여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여기에 할 수 있는 시설과 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농업 시설 부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농민들은 가을철이 되면 땔감으로 강냉이와 밀, 보리 짚을 모두 거둬들여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축사료로 쓸 강냉이와 밀, 보리 짚을 모을 인력은 없습니다. 모았다고 해도 보관할 장소 또한 마땅치 않습니다. 나중엔 농민들이 땔감으로 강냉이 뿌리까지 다 캐 가다 보니 강냉이나 밀, 보리 짚이 남아 나질 않습니다. 이런 일이 해마다 반복되다 보니 가축 사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는 거죠.
진행자: 북한의 전체 소 사육 두수는 45만여 마리이고, 그 가운데 젖소는 5% 미만으로 알려졌습니다. 젖소만 500만 마리가 넘는 한국과는 차이가 무척 큰데요. 북한은 그래서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젖소와 염소 사육에 주력하고 있죠. 김정은 위원장이 의욕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젖소와 염소 사육,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문성휘 기자: 네, 축산 문제는 결국 사료 문제입니다. 위생방역, 풀판조성, 이런 건 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북한이 세계 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던 세포등판 축산기지를 건설해 놓고도 전국의 가는 곳마다 젖소목장과 염소목장들을 계속 건설하는 이유도 세포등판만 가지고는 사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연간 북한이 젖소보다 염소목장에 더 집중하는 이유도 결국 더 적은 사료를 가지고 더 많은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젖소를 많이 키우면 먹이를 감당할 수 없기에 젖소보다 먹이가 적게 들고, 방목에도 유리한 염소를 키우겠다는 건데요.
문제는 김정은이 아무리 옳은 방향을 잡았다고 해도, 인민이 발동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민군 부대에서 염소를 키워선 무얼 합니까? 염소를 키우는 건 병사들인데 병사들은 염소 젖을 맛도 보지 못합니다. 염소고기를 구경조차 못합니다. 젖소목장의 근로자들 역시 우유를 제대로 맛볼 수 없고, 염소목장의 농민들은 염소고기를 구경도 못합니다. 그러니 사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 서야할 근로자들, 농민들이 사료 해결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적당히 변명을 하면서 비판과 처벌을 면하면 된다는 것이 북한 축산담당자들의 한결 같은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북한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병폐이기도 합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최우선으로 고기를 먹이고 우유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그들이 의욕에 넘쳐 젖소도 키우고 염소 마리 수도 늘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북한의 축산업은 무슨 수를 써도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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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운 없애 주시라요” 집안 소형 불상에 비는 북 주민
진행자: 다음 소식입니다. 살면서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느꼈을 때 사람들은 종교를 찾곤 합니다.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 마음인 것 같은데요. 오죽했으면, 종교가 허락되지 않는 북한에서 불상을 사서 기도를 할까 싶은데요. 손 기자, 주로 어떤 사람들이 불상을 몰래 사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갈수록 불안한 북한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마음의 기둥을 찾고 싶은 사람이랄까요. 특정한 계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펄벅 작가의 ‘대지’ 소설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네요. 흉년으로 살기 힘든 가난한 농사꾼 왕룽이 길거리 돌에 있는 흙으로 만든 형상 앞에서 길운을 기도하죠. 불상을 사들이는 북한 사람들의 심리가 와 닿았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되니 불상이라도 사서 잘살게 해달라고 비는 겁니다.
이러한 형태는 북한 사회에서 다양한 사례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큰돈이 오가는 장사하는 여성들일수록 마음을 안정시킬 부적을 만듭니다. ‘부적’이라는 게 별 게 아니에요. 장거리 장사를 떠 날 때 소금을 넣은 작은 주머니를 몸에 품고 다니는데, 그 소금 주머니가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이 되는 거죠. 다시 말해 가정에 놓는 부적이 불상이라면 장마당 여성들이 몸에 품는 부적이 소금이 되는 겁니다.
장사 물품을 운반해야 할 경우 그 물품을 변소 칸에 놓았다가 차에 싣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때 변소 칸의 똥이 부적이 되는데,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할 이러한 현상이 북한 사회 주소입니다. 특히 불상은 70년대부터 북한 당국이 세뇌 교육 목적으로 제작 보급한 ‘성황당’ 연극이 관영매체로 방영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종교는 아편과 같아 대중의 혁명의식을 좀먹는다며 ‘성황당’ 연극을 보급했지만, 이 효과는 식량배급 시대로 끝났습니다. 장마당이 발달하며 주민들에게는 길운을 가져다 주는 신의 상징성이 되는 겁니다.
진행자: 쌀 사먹기도 어려운 사람들까지 1달러가 넘는 불상을 사서 매일 기도를 하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믿음이 마치 유행처럼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진 것 같은데요. 누가 효험이라도 봤다는 소문이 있었던 걸까요? 손 기자, 그런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손혜민 기자: 인간은 감정 동물 아닙니까. 위험 요소를 느끼는 순간 불안해집니다. 하물며 장사 자체가 비사회주의적 행위로 통제되는 북한이라면 그 불안은 말할 것도 없겠죠. 한국처럼 신앙의 자유가 있다면 하나님이라도 찾겠지만, 특히 북한은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반역자로 처벌하잖습니까. 그러니 북한 사람들이 새로운 신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불상을 앞에 놓고 오늘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빌고 나가면, 그날은 사실 안전부에서 회의가 있어 장마당 단속을 하지 못했는데, 불상이 자기를 보호해줘서 장사가 무난히 잘되었다고 믿게 되는 겁니다. 며칠 전 국제전화로 연결된 저의 사촌 여동생도 불상을 사서 집에 놓고 기도한다고 말해서 놀랐습니다.
더 놀란 것은 공장에만 출근하는 남편에게 ‘바보처럼 식량 배급도 안 주는 공장에서 일만 하지 말고 장사를 하라’고 말하다가 부부 싸움이 일어났는데요. 화가 난 남편이 아내가 소중이 여기는 불상을 아파트 베란다로 던지는 바람에 산산이 부서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후 비싼 불상을 다시 샀다고 해서 얼마나 불안하면 이럴까, 개인적으로 씁쓸했습니다.
진행자: 바깥 세상에 이런 소식이 전해진 걸 북한 당국이 알면 가만 있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불상이 집에 있는 주민들이 지금 발각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 것 같습니까?
손혜민 기자: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북한에는 매일 한국을 비롯한 북한 관련 해외 언론을 주시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여 나름대로 정책에 반영하는 부서가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사는 북한 당국이 주시하고 있는 대북 매체 1순위입니다. 불상에 대한 RFA 기사를 읽었을 테고,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겠는지 후속 취재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북한 당국이 불상까지 없애려면 역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북한에는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지하 교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 소책자가 나오면 정치범수용소에 보내고 있는데, 불상을 집에 놓은 주민들이 발각될 경우에는 이보다 처벌이 덜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왜냐면, 불상보다는 성경의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인데요. 그 이유는 수령-당-대중이 혼연일체라는 북한 사회 구조가 ‘성삼위 일체’라는 교회 구조를 모방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북한에서 성경은 3대수령 신격화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힘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에도 하루 빨리 신앙의 자유가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