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한군 러시아 파병 소문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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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 당국의 입막음에도 파병 사실 소문 파다

- 러시아 파병 군인 유가족, 전사증 받아봐야 혜택 없어

- 영예군인, 노병 형식적으로 챙겨도 주민들에게 효과 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사망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여전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사망한 군인의 유가족에게 사망 사실마저 계속해서 숨길 순 없었나 봅니다. 관련 소식 자세히 알아보죠.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지난달, 평안남도 도당 간부가 사망한 군인 유가족들에게 전사증을 주면서 전쟁이 아닌, 전투 훈련에 참가했다가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당이 일절 함구하고 있음에도 유가족들이 자신의 자녀가 러시아에 파병돼 사망했다고 짐작하고 있는 근거는 뭡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전사증은 유사시 전쟁에 참여하다 사망하거나 평상시 군 복무 기간 전투 훈련이나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에게 국가가 수여하는 증서입니다. 군사분계선이 자리한 전연지대나 중국과 마주한 국경 지역에서 가끔 당국이 묻어 놓은 지뢰를 밟아 억울하게 사망하는 군인들이 나오곤 하는데요. 이 경우에도 사망자 전원에게 전사증이 수여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대부분 부주의로 지뢰를 밟아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사망한 군인의 부모에게 사망 통지서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전사증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평안남도에서 한번에 10명~20명의 유가족들이 군 복무하던 아들의 전사증을 받았습니다. 전사증을 수여하는 행사가 군부대 주최가 아니라 도 당 위원회가 주관한 행사였는데요. 제가 만약 북한에서 유가족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합리적인 의심부터 들 것입니다. 전사자가 한번에 많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만, 전사증을 받은 군인들이 폭풍군단에서 군 복무하였다는 것이 유가족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의심이 증폭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심은 지난해 10월부터 북한 당국이 폭풍군단 군인들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했다는 여론이 국경지역 중심으로 퍼졌던 것과 이어진 것입니다. 당국은 전사증을 수여하는 행사에서 유가족에게 폭풍군단에서 군 복무하던 아들이 사망해 전사증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부에 말하지 않겠다는 비밀서약까지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들을 잃고 통곡하는 유가족의 친척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주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합니다.

진행자: 북한 당국은 파병 사실을 소문 낸 사람들을 색출할 정도로 단속을 벌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이젠 북한 주민들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 당국이 자국의 군인들을 러시아 전쟁에 총알받이로 파견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파병 군인의 가족을 집단 이주시켜 격리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었습니다. 그만큼 주민들의 반발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또 폭풍군단 군부대 장교들의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고 해당 부대 군인들의 외출도 통제하면서 파병 소식을 원천 차단했었습니다. 하지만 1천 명도 아니고 약 1만여 명의 20대 군인들이 파병되었는데, 어떻게 모르겠나요.

김정은 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앳된 군인들을 파병하는 대가가 무엇입니까.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1인당 월 2천달러 수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돈이 전사한 군인의 유가족에게는 한 푼도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김정은 정부의 외화벌이용으로 군인들의 목숨이 팔린 것이어서 너무도 황당하고 분개하다는 주민들이 목소리도 전해졌습니다.

진행자: 그럼에도 앞으로 전사증을 받게 될 유가족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인데요. 현지에서 월급을 받아도 개인이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현실적인 얘기를 잠깐 더 해보자면, 정확하게 전해진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만 러시아 파병 유가족들이 받게 되는 보상은 기존 전사자와 동일할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손혜민 기자: 기존 전사자와 동일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처럼 북한에는 국가 보상이라는 개념조차 없습니다. 물론 매달 전사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진학의 기회나 국가 물자를 공급하는 제도는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전쟁노병이든 영예군인이든 국가 물자 공급 혜택이 중단된 지는 오래되었으므로 전사증은 허울뿐이죠. 그래서 북한에는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이 있는데요.

신분계층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북한 사회 특성상 전사자 유가족이 일반 계층에서 핵심 계층으로 상승하는 기회는 주어지지만, 장마당에서 장사를 해야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핵심 계층 명분이 어디에도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전사자의 유가족들은 증명서 없이 기차를 타고 가다 안전원에게 단속될 경우 오죽하면 전사자의 유가족이 장사하겠냐고 안전원에게 대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3천800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장했는데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북한은 주민들을 속일 수 없을 것이고, 사망자들에게 모두 전사증을 수여할지, 아니면 숨길지 어떻게 하든 민심 폭발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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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북한군 유가족에 전사증...비밀서약Opens in new window ]

양강도, 새해 맞아 영예군인·노병 특별 우대Opens in new window ]

진행자: 계속해서 다음 소식 알아보죠. 양강도에서 이번에 송년 행사와 새해맞이 행사에 일부 영예군인과 인민군 노병들을 초대해 환대했다고 합니다. 문 기자, 이게 그동안에는 별로 없던 이례적인 일인 겁니까?

문성휘 기자: 이런 행사가 이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참가자들과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해마다 인민군 창건절인 4월 25일이나 북한에서 소위 전승절이라고 하죠. 정전협정 기념일인 7월 27일이 되면 으레 영예군인들과 노병들을 초대해 무슨 행사라는 걸 조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보여주기식 행사이다 보니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위한 행사에 특별히 품을 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간단한 사례로 지난해 인민군 창건일과 전승기념일이라고 하는 7월 27일에 인민군 노병들을 불러 행사를 조직했습니다. 양강도의 경우 인민군 노병들로 조직된 ‘예술선전대’에서 몇 명의 노인들을 선발해 혜산시의 대학과 초급, 고급중학교에서 ‘이야기 모임’을 조직했다고 하는데요. ‘이야기 모임’은 자신들의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행사입니다. 그 외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불러 혜산역 앞에 위치한 ‘역전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 대접했다고 하는데요. 이게 전부였습니다.

양강도의 경우 이 ‘역전식당’은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위해 무슨 행사를 조직한다고 할 때마다 단골로 이용하는 식당입니다. 식당 내부의 위생 상태가 형편없는데 음식은 감자전분으로 만든 국수 한 가지이고, 그 마저도 양이 적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역전식당’이다 보니 주머니가 빈 길손들이 가볍게 한끼를 해결하기 위한 식당입니다. 대신 한번에 40명 정도의 손님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면적은 꽤나 넓은 식당입니다. 한마디로 가난한 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중산층 이상 주민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식당인데요. 이런 식당에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불러 놓고 그냥 싸구려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겁니다. 말 그대로 형식적인 행사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번 송년행사와 설 맞이 행사는 조금 달랐다는 겁니다.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초대해 학생소년회관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압록각’에서 돼지고기 국밥을 특별히 대접했다는 거죠.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위해 특별히 공연을 조직하는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이들을 ‘압록각’에 모셨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이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압록각’은 양강도에서 제일 유명한 고급 식당입니다.

평양에 옥류관이 있고, 함흥에 신흥관, 청진에 갈매기 식당이 있는 것처럼 양강도를 대표하는 고급식당이 바로 ‘압록각’입니다. 기본 음식은 감자전분국수고요. 그 외 여러 가지 다양한 요리들이 있습니다. 이런 고급 식당에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모셨다는 것 자체가 특별히 품을 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에게 대접한 음식도 국수가 아닌 돼지고기 국밥이었고, 대동강 맥주까지 대접했다고 하니 매우 품을 들였다는 거죠. 새해 첫날에도 ‘김정숙예술극장’에 초대해 설맞이 공연을 관람하도록 조치했고, 혜산영화관에서 처음 상영하는 ‘대결의 낮과 밤’이라는 영화도 관람하도록 우대했다는 거죠. ‘압록각’에서 식사를 마친 영예군인과 노병들이 “오랜만에 사람다운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동안 북한 당국이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얼마나 홀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여느 때와는 달랐던 대접에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중앙에서 이번에 갑자기 영예군인과 인민군 노병들을 우대하는 분위기를 세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하셨는데요. 문 기자, 소식통은 이번 행사가 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정한 걸까요?

문성휘 기자: 네, 북한 내부는 새해를 앞두고 매우 뒤숭숭했습니다. 한쪽으로는 화폐개혁이 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확산돼 주민들이 잔뜩 긴장했고요. 여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시신이 들어왔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들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초, 인민군이 러시아의 편을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민심이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과거 북한이 베트남 전쟁에 군인들을 파견할 때 소위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수"라고 하는 미국과 맞서 싸운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남의 나라 전쟁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피를 흘릴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그나마 인민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나돌면서 어수선했던 민심도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러시아 군대가 계속 패배하고 있었는데 북한 인민군이 나타나 단숨에 고지를 점령했다” 이런 식의 출처 없는 이야기들이 확산된 건데요. 그나마 마음을 졸이던 주민들은 우리 군대가 잘 싸운다고 하니 조금은 안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새해를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 가족들에게 전사증이 수여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전사한 군인들의 시신이 들어왔다는 얘기까지 확산되었습니다.

가뜩이나 불안했던 북한의 민심에 끓는 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죠. 이런 유언비어가 왜 무서운가 하면 북한은 보통 2월말부터 고급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군대에 내보냅니다. 아직 졸업도 못한 만 17세의 청소년들을 군대에 내보내는 건데요. 학생들을 군대에 내보내는 걸 ‘초모’라고 하는데, 이런 ‘초모’를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소식, 전사자가 나왔다는 출처 불분명의 소식들이 자꾸 확산되니 북한의 당국자들도 불안해 하는 것 같다는 게 소식통들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북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데요. 그런 탓인지 군인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군사복무의 자긍심을 높여 주기 위한 차원에서 새해를 맞는 북한 당국이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특별히 우대하도록 조치하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주장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이번 행사가 양강도의 모든 영예군인이나 노병들을 우대한 게 아니어서 대접 받지 못한 이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하고, 갑자기 영예군인이나 노병들을 챙기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주민들의 확신만 더 크게 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문 기자, 북한 당국이 이들을 챙겨서 얻으려고 했던 효과가 잘 발휘될 수 있겠습니까?

문성휘 기자: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행사는 당국이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우대해 사회적인 분위기를 일신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한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군인들을 보기 어렵지만 북한은 문 밖을 나서면 군인들입니다. 북한 인구 2천5백만 중에 100만이 군인이니 25명에 한 명 꼴로 군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군인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사기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데요.

영예군인과 노병들에 대한 대우는 군사복무 과정에 있는 군인들의 미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영예군인과 노병들이 우대받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군인들의 사기가 오르기 마련입니다. 저희들도 경험해 보았지만 초모를 앞둔 고급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새해를 앞두고 매우 불안합니다. 곧 군대에 입대해야 하고, 입대하면 외국의 전쟁터에 끌려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요.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우대하는 모습으로 이런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다는 거죠.

군인들의 사기가 오르고, 군사복무를 앞둔 청소년들의 불안감이 해소되면 그만큼 사회 분위기도 밝아지게 됩니다. 영예군인과 노병들을 우대하는 북한 당국의 이면엔 이렇게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추켜세우기 위한 노림수가 엿보인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인데요. 실제 이런 노림수가 조국애, 미래라는 보기 좋은 허울 속에 감춰져 있어서 주민들도 어지간히 북한 당국의 노림수에 동조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불안도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