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담배꽁초로 만든 북한 동복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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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를 해결하기에도 바쁜 북한 주민들, 그동안 시큰둥했던 정치 행사를 최근 반가워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봅니다. 주체농법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주체농법과 상관 없이 밀, 보리 재배 면적 늘리기만을 강조하고 있어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분석해 봅니다.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이예진: 북한 주민들이 지난 16일, 광명성절 행사에서 담배꽁초를 줍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손혜민 기자, 농민들까지 담배꽁초를 팔아 연명할 정도면 이게 돈벌이가 될 정도라는 말입니까?

손혜민: 네. 다른 날도 아닌 김정은 생일 기념 정치적 행사를 계기로 담배꽁초 줍기에 나섰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놀랍습니다.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여지는데요. 돈벌이가 꽤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생존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한 거죠. 이틀 간 담배꽁초를 열심히 주워야 쌀 2킬로, 가족의 식량을 살 수 있다고 하니 웃음보다 슬픔이 앞서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예진: 그런데 그렇게 주운 담배꽁초를 동복 만드는 사람에게 판다고 하셨는데, 그 얘기는 담배꽁초가 동복에 쓰인다는 겁니까?

손혜민: 네. 그렇습니다. 담배꽁초가 일반 담배꽁초가 아니고 니코틴을 여과하는 필터가 달린 담배, 즉 북한에서는 여과담배라고 부르는 담배꽁초입니다. 여과 담배꽁초를 뜯으면 솜 재질이지 않나요. 그것을 양잿물에 몇 시간 푹 담그면 니코틴이 우러나옵니다. 그 다음 맑은 물로 몇 번 씻어내어 건조한 다음 솜을 틀어주는 곳에서 한번 돌리면 고급 솜이 된다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담배꽁초로 만든 솜을 가볍고 질긴 나일론 솜이라고 해서 고급 솜으로 분류됩니다. 동복 안에 넣는 솜으로 수요가 높은 이유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졌다시피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동복은 개인이 만든 동복이 많아 솜 원료로 대용되는 담배꽁초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다른 솜이 많다면 굳이 담배꽁초로 생산한 재활용 솜을 사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솜은 중국에서 수입해야 하고, 수입된 솜은 비싸다 보니 동복을 만드는 개인의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담배꽁초 솜’을 구입하는 겁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그렇다면 담배를 만드는 개인에게 파는 담배꽁초는 또 어떻게 사용되는 건가요, 재활용이라도 하는 겁니까?

손혜민: 동복뿐만 아니라 담배도 북한에서는 개인이 제조하는 상품이 적지 않은데요. 다시 말해 담배를 생산하는 주체는 국영 담배 공장 뿐이었으나 장마당이 발달한 2000년대 이어 2010년대는 수많은 무역회사들까지 경쟁적으로 담배 생산에 뛰어들면서 북한 장마당으로 유통되는 담배 종류는 100가지 상품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여기에 개인까지 담배를 만들고 있으니 장마당마다 담배 매대가 늘어나는 거죠.

특히 개인이 만든 담배는 어느 담배가 잘 팔린다 하면 그 담배가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그대로 모방해 싸게 판매하므로 수요가 많습니다. 담배가 워낙 대중 소비 제품이다 보니 짝퉁은 짝퉁 대로, 정품은 정품 대로 판매되는 건데요. 담배를 생산하는 공장과 무역회사, 개인의 입장에서도 원가에 비해 담배 판매수익이 많기 때문에 담배 제조량은 계속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담배필터 원료가 필요한데요. 길거리서 주운 담배꽁초 필터를 전문적으로 받아 담배 제조자에게 되파는 새로운 시장이 파생된 겁니다. 다시 말해 길거리서 꽁초를 주운 개인이 중개업자에게 넘기면, 중개업자는 양잿물에 꽁초를 담가 누런 니코틴을 우려내고 그것을 하얀 솜으로 만들어 담배 제조자나 동복 가공업자에게 재판매하는 겁니다. 담배 제조업자들의 경우에는 담배꽁초로 만든 솜을 구입하고, 그 솜을 수입산 담배종이 위에 놓습니다. 씨담배도 한끝에 놓고 담배 마는 기계로 말아 작두처럼 생긴 기계로 싹둑싹둑 잘라 필터 담배를 생산합니다.

북한만큼 재활용이 많은 나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담배 곽도 전부 재활용하는데요. 담배꽁초처럼 담배 곽 줍기도 일상화 되고 있다고 합니다. 재활용되는 담배 곽으로 포장된 담배는 가격이 싸서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소득이 낮은 남성들은 주로 싼 가격의 필터 담배를 구입하는데, 이들이 소비하는 필터 담배 대부분이 재활용된 필터와 곽 안에 든 담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예진: 담배가 계속 재활용되고, 정치행사에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담배꽁초가 많다는 건 북한의 흡연자 인구가 아직도 상당하다는 얘기 같은데요. 이 정도면 북한의 금연법, 별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손혜민: 네. 정확히 북한의 현실을 짚으셨는데요. 사실 북한 남성들은 대부분 흡연합니다. 오히려 흡연하지 않는 남성들을 이상하게 인식하는 정도인데요. 남성의 상징이 담배이다 보니 담배꽁초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2000년대 만해도 일반 남성들은 노동신문 종이에 마라초(궐련)를 말아 피웠는데, 지금은 최저가 필터 담배가 유통되어 판매되면서 필터 담배 소비자가 많은 겁니다.

참으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북한 당국이 2005년 금연을 위해 담배통제법을 제정하고 잎담배 생산과 수매, 만담배(궐련)의 생산과 공급 등 금연을 통제하도록 조치했으나 국영공장과 무역회사가 가짜 담배를 생산해 수출하면서 외화벌이하다 보니 법은 법대로 허울만 남는 겁니다. 2019년에는 수입산 담배 수입도 금지하였고, 2020년 11월에는 금연법이 새롭게 채택되었음에도 북한에는 금연에 벌금을 부과하는 현실적 통제가 불가능한 요인이 최고지도자의 행위와 연결되기도 하죠.

대중이 시청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선전되는 최고지도자가 고아원에 가서 담배를 손에 들고 피우는 모습이 방영되는데, 금연법이 어떻게 실행되겠습니까. 일부 남성들 속에서는 우리가 흡연하는 것은 최고존엄을 따라 배우는 것이라고 야유하는 사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북한 여성들은 남성들이 밀집되는 정치 행사가 조직되면 담배꽁초 줍기부터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북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2021년부터 밀과 보리 재배 확대를 강조해왔죠. 그런데 이번에 밀과 보리 재배가 적당하지 않은 양강도에까지 밀, 보리 농사를 강요해 농민들의 불만이 크다는 소식입니다. 문성휘 기자, 이런 무조건적인 지시는 당국이 지역 사정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문성휘: 네, 김정은의 의도에 따라 북한 내각 농업위원회가 북부 고산지대인 양강도에도 밀, 보리를 심을 것을 지시했다, 여기에 대해 양강도 농업부문 관계자들과 농민들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 지시라고 반발하고 있다는 건데요. 양강도에서도 밀, 보리를 재배하라는 내각 농업위원회의 강요는 주체 농법에서 가르치는 적기적작, 적지적작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지시입니다. 백두산을 품고 있는 양강도는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겨울철 온도는 영하 32도, 최하 영하 36도까지 오르내리거든요.

김정은이 밀, 보리 재배를 장려하는 이유는 2모작 농사를 확대해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앞그루(전작)로 밀과 보리를 심고, 뒷그루(후작)로 강냉이와 벼를 심어서 한 해에 두번씩 농사를 짓는다는 건데요. 문제는 북부 고산지대인 양강도는 2모작이 적합치 않다는 것입니다.

북부 고산지대인 양강도는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농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날씨가 춥다는 건데요. 그런 지역에서 2모작 농사를 지을 수가 없죠. 대신 길주 이남지역은 과일농사가 되기에 2모작 농사도 가능합니다. 2모작 농사의 앞그루로 심는 밀, 보리는 가을철에 파종을 합니다. 가을철에 파종을 했다가 다음해 6월 중순에 가을(추수)을 하는데요. 밀, 보리 가을이 끝난 밭에 뒷그루로 강냉이와 벼를 심습니다. 그런데 양강도는 가을에 밀, 보리의 씨를 뿌리면 겨울철에 종자가 모두 얼어 죽습니다.

때문에 양강도는 밀, 보리 파종을 4월 초에 하고, 가을을 7월 중순 경에 하는데요. 그러니까 양강도의 농업관계자들, 농민들은 2모작 농사도 못 지을 바에 왜 하필이면 밀, 보리를 심느냐고 반발을 한다는 거죠. 2모작 농사가 아니라면 밀, 보리보다 강냉이를 심으면 훨씬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내각 농업위원회가 양강도에 밀, 보리를 심으라고 지시를 하는 건 김정은이 이미 기존의 농사법에서 탈피해 밀, 보리 위주의 농사로 전환하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이예진: 김일성 시대에는 옥수수를, 김정일 시대에는 감자를 중요시했죠. 그리고 지금 김정은 총비서는 밀과 보리 재배 면적 확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밀과 보리에 주력하는 이유는 뭘까요?

문성휘: 김정은 시대에 들어 밀, 보리 재배 확대에 열을 올리는 건 2모작 농사 때문입니다. 그런데 2모작 농사는 김정은이 처음 내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알곡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김일성이 처음 도입한 농사법이 2모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앞그루로 올감자를 심고, 뒷그루로 강냉이와 밀, 보리를 심었는데요. 그럼에도 2모작 농사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실패한 2모작 농사를 김정은이 다시 꺼내 든 것도 따지고 보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밀, 보리를 앞세운 북한의 2모작 농사도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절대로 낙관적으로 볼 수 없는 방법이고요. 김일성도 김정일도 실패한 2모작 농사에 사활을 걸고 있는 김정은도 참으로 측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예진: 한 뼘 땅이라도 지력에 맞는 농사를 하는 게 기본이겠죠. 북한에서 실질적으로 밀과 보리 재배 면적을 늘리려면 뭐부터 바꿔야 할까요?

문성휘: 길주 이남 내륙지방의 경우 기존에 강냉이를 심던 밭과 벼를 심던 논에도 2모작의 앞그루로 밀, 보리를 심으라고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밀과 보리의 면적을 늘리려면 무엇보다 유기질 비료, 거름 생산이 늘어야 합니다. 북한은 토양이 너무도 산성화되었기 때문에 유기질 비료로 산성토양을 개량하든지, 아니면 뿌리에서 질소를 활성화시키는 콩농사를 꾸준히 지어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야 합니다. 북한 당국도 토양의 산성화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가는 곳마다 복합미생물비료공장을 지었고, 김정은 시대에도 복합미생물비료공장과 인비료공장을 많이 짓고 있습니다. 또 논밭에 석회석을 뿌리고 니탄(이탄)을 깔아주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고요. 다만 이런 노력들로는 산성화된 토양 개량은커녕 한 해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보태는 역할만 겨우 할 뿐이라는 거죠. 근본적으로는 퇴비의 양을 압도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먹을 것이 늘 부족하다 보니 퇴비의 양을 늘릴 원천이 없다는 것이 문제죠.

퇴비, 유기질 비료의 양을 늘리려면 사람도 배불리 먹고, 축산도 크게 늘려야 합니다. 인간과 가축의 배설물이 최고라는 거죠. 유기질 비료의 양을 늘리지 못하면 밀, 보리 재배면적을 아무리 늘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토양은 더욱 산성화될 것이며, 2모작 농사에 따른 비료 소비는 더욱 늘어나 결국엔 앞그루인 밀, 보리 농사도, 뒷그루인 벼와 강냉이의 농사도 다 망치게 될 겁니다.

총체적으로 밀과 보리의 재배 면적을 늘리려면 비료가 많아야 하고, 그 중에서도 유기질 비료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합니다. 밀, 보리의 김매기는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인력도 보충되어야 하고요. 비료도 부족한 북한에서 여러가지 농약도 마련을 해야 한다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북한은 농촌의 가는 곳마다 “농사의 주인은 농민이다”, “농장 포전은 나의 포전이다” 이런 구호들을 많이 붙여 놓았는데요. 밀, 보리 농사도 그래, 다른 모든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의 주인을 농민으로 믿는다면 농사는 농민들에게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굳이 여기 이만한 면적에 감자를 심고, 여기엔 밀과 보리를 심어라, 이렇게 당과 수령이 농사에 일일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