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없애겠다던 돈주 배만 불리는 양곡판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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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혁명전적지 주민 아사율 높아져

-돈주 없애겠다더니 돈주만 배불리는 양곡판매소

-조선 시대에도 없던 고리대 북한 장리쌀

-북한에서 아사자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지난해보다 일찍 찾아온 북한의 보릿고개, 아사자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습니다. 특히 주요 혁명전적지 주민들의 아사율이 높아진 이유 알아봅니다.

시장을 통제해 돈주 역할을 축소하겠다며 운영하기 시작한 양곡판매소, 하지만 현재 돈주 없인 곡물도 없다고 하는데요. 무엇이 문제인지 관련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이예진: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봉쇄된 이후 북한의 보릿고개 사정은 더 극심해졌다고 하죠. 더구나 지난해 ‘예년에 보기 드문 풍작’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올해 보릿고개는 더 빨리 찾아왔다고 합니다. 양강도에서도 대부분 주민들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요. 문 기자, 그 중에서도 삼지연시와 보천읍, 김정숙읍 주민들의 식량난이 심각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요?

문성휘:네, 삼지연시와 보천읍, 김정숙읍은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사람 못 살 고장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삼지연과 보천읍, 김정숙읍은 양강도의 주요 혁명전적지라는 특징이 있는데요. 삼지연시의 경우 농사를 짓지 않는 시 내부, 보천군과 김정숙군도 농사를 짓지 않는 읍 지구의 식량난이 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읍의 경우 주민의 80%가 농민이 아닌 노동자들입니다. 지방공업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인데요. '고난의 행군' 이후 지방공업공장들이 가동을 못하고 있으니 노동자들도 일거리가 없는 겁니다.

읍에서 사는 지방공업공장 노동자들은 생산물이 없으니 아무리 노력 동원에 끌려 다녀도 월급이 없고, 당연히 배급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곡판매소에서 식량을 팔아 준다고 해도 도 소재지나 특별시의 노동자들에게만 식량을 팔아 주고, 읍에는 양곡판매소가 있어도 식량이 공급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읍에 사는 노동자들은 양곡판매소가 있어도 식량을 살 수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식량 판매와 관련해 이렇게 도 소재지 노동자들과 읍에 사는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요. 읍에 사는 주민들은 산을 벗겨 뙈기밭 농사를 많이 지어 식량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문제는 읍에 사는 주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뙈기밭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도 북한은 항상 식량공급을 할 때 읍에 사는 주민들을 제외합니다. 혁명전적지에 사는 주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양강도는 북부고산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주민들이 산에다 화전을 일구어 뙈기밭 농사를 짓는데요. 그러나 혁명전적지에 사는 주민들은 뙈기밭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일단 혁명전적지로 승격되면 주변의 산들은 모두 ‘특별 보호림’으로 지정됩니다. ‘특별 보호림’은 주민들이 나무를 베어서도 안 되고, 일체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조치돼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혁명전적지에 사는 주민들은 산을 벗겨 뙈기밭을 만들 수가 없고, 뙈기밭 농사를 짓지 못하니 다른 읍 지구 주민들에 비해 더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거기다 읍은 인구가 적어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올해는 그러한 장사도 못하게 하니 혁명전적지에 사는 주민들은 더 험악한 식량난을 겪게 된 거죠.

이예진: 북한 당국이 식량 가격과 수급을 안정화 시키겠다고 야심 차게 운영하고 있는 게 양곡판매소 아닙니까? 하지만 시행 3년이 넘었는데 주민들의 신뢰는 전혀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 기자, 손 기자! 양곡판매소 운영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십니까?

문성휘:네. 현재 개인들이 파는 입쌀이 1kg에 북한 돈 6천원(0.59달러)이라고 하면 양곡판매소에서는 5천6백원에 파는 식인데요. 그런데 양곡판매소에서 판 가격 5천6백원을 다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도 이득을 봐야겠으니 1천원을 떼고, 4천6백원만 주겠다는 거죠. 개인이 몰래 쌀을 팔면 1kg에 6천원을 받을 수 있는데, 양곡판매소에 수매를 하면 4천6백원만 받으니 결국 1400원을 손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민들은 양곡판매소에 수매를 하지 않는 것이죠. 또 개인 장사꾼들은 주민들이 요구하는 곡종을 다 가지고 있는데 양곡판매소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곡종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거기다 양곡판매소에 식량이 없는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또 주민들이 돈을 내도 양곡판매소는 무제한으로 식량을 팔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한달에 두 번, 보름에 한번씩 쌀을 파는데 매 가정에 열흘 분만 판다는 거죠. 그럼 결국 한달에 20일분의 식량만 양곡판매소에서 살 수 있다는 건데 나머지 열흘은 굶으라는 소리죠. 그러니 양곡판매소가 오히려 식량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얘기가 나오고 주민들은 양곡판매소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양곡판매소를 통해 얼마든지 식량 가격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고의로 양곡판매소의 식량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는 북한 주민들의 해석도 쏟아지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그동안 장마당을 통해 주민들의 수중에 장악된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민들의 수중에 장악된 돈을 회수하기 위해 일부러 양곡판매소의 식량, 백화점의 생필품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북한 주민들의 해석은 상당히 사실로 보여집니다.

손혜민:네. 문 기자님 말씀에 이어 복합적으로 본다면 정부가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의 문제점은 가격의 괴리가 당 정책 목표에도 민생 안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가격 문제를 짚어본다면, 2022년부터 전국에 일반화된 양곡판매소 도입 배경은 시장을 통한 곡물 수급을 국가가 장악하여 유통 자금을 중앙은행으로 환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양곡판매소에서 시장가격에 가까운 가격으로 곡물을 팔고, 그 자금으로 영농자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현실은 국가가 양곡판매소에 곡물을 공급하지 못해 돈주 등 개인의 자금으로 곡물을 사들여 운영하다 보니 환수 금액은 개인에게 돌아가고, 차익만 정부가 챙기는 셈입니다. 결국 일부 돈주들이 양곡판매소 공간을 통해 곡물 유통 시장을 독점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쌀장사로 살아가던 일반 상인들은 직업을 잃고 한지에 나앉는 부작용이 나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국가가 양곡판매소의 곡물 판매가격만 시장가격으로 도입하지 말고, 협동농장에서 수매하는 곡물가격도 시장가격으로 인상해야 합니다. 협동농장에서 생산되는 알곡을 국가가 쌀 1킬로 5천원, 즉 시장가격으로 수매해야 협동농장도 비축한 알곡을 양곡판매소에 풀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양곡판매소에 대한 국가 공급력도 해결할 수 있죠. 그러면 중앙은행으로 곡물 판매 자금이 환수되어 협동농장에 대한 영농자재 공급도 정상화하여 농업생산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쌀 1킬로당 국정가격 44원으로 수매 받고 있으니 공짜로 뺏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결국 현재 농업정책에 대한 농장간부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주민은 주민 대로 양곡판매소가 나온 이후부터 장마당이 통제되어 살기 힘들다며 양곡정책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예진: 북한 당국의 대책이 없다면 혁명전적지에 살고 있는 일부 어려운 가정들은 이번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현지 소식통의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문 기자, 올해 상황, 지난해처럼 아사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보십니까?

문성휘: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보천읍과 김정숙읍에 사는 학생의 절반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한다고 해요. 양강도의 경우 최근 코로나를 구실로 유치원과 학교들을 임시로 폐쇄했는데요. 여기에 대해 주민들 속에서는 "식량난이 하도 심각해 학생들이 출석을 하지 못하니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도의 간부들이 일부러 학교를 폐쇄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양강도에서는 고열과 폐렴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그 중엔 어린이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보천읍에서도 최근 열과 폐렴을 비롯해 여러 가지 질병으로 4명의 어린이들이 사망했는데, 주민들은 그들의 사망 원인을 영양실조로 꼽고 있습니다. 김정숙읍에서도 여성과 어린이, 60이 넘은 사람들이 연이어 죽고 있는데, 의료 당국은 독감, 폐렴에 의한 사망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료 당국과 달리 주민들은 그들이 굶어서 사망한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입니다. 양강도의 경우 5월 중순이 돼야 산나물을 캐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 혁명전적지 주민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 생각하기도 두려운 아사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그러니 북한 당국이 차별을 말고, 읍 지구 노동자들도 도 소재지 노동자들처럼 월급도 주고, 식량도 판매해 아사자가 나오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북한에 보릿고개가 일찍 찾아오면서 동시에 일찌감치 시작된 게 장리쌀 거래라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장리쌀로 한 가마니 빌리면 한 가마니 반을 돌려줘야 했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북한에선 쌀 한 가마니를 빌리면 두 가마니를 돌려줘야 한다고요? 너무 폭리를 취하는 거 아닙니까?

손혜민:북한에서 장리쌀은 보통 두 배가 상식입니다. 고리대와 비슷하니 폭리나 마찬가지인데요. 북한 농촌에서 장리쌀 거래는 1990년대 경제난 이후 농민들에 대한 알곡 분배가 무너지며 확산됐습니다. 도시 주민들은 식량배급제가 무너졌지만 가정주부들이 장사를 할 수 있어 장리쌀 거래조차 없는데요. 농촌에서는 가정주부들이 농장 노력으로 일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로 장사를 못하니 장리쌀 거래는 농촌지역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봄철이면 농민들이 텃밭에서 농사지은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 등이 바닥이 나는 반면, 협동농장에서는 영농시기가 시작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농장에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것이 농민들이어서 장리쌀 거래가 증가하고 있는데요. 보통 봄철 옥수수 한 가마니를 꾸고 가을에 두 가마니를 줘야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개인과 개인 뿐 아니라 협동농장과 개인 돈주들 사이에서도 만연하거든요.

예를 들어 영농철에 들어서 밭갈이에 필요한 디젤유는 국가에서 공급하지 못합니다. 입이 닳도록 자력갱생하라는 게 북한 당국의 요구이다 보니 농장간부들은 도시로 이동해 고리대자금을 돌리는 데 나서는 건데요. 봄철 100만원을 개인 돈주에게 돌리면, 가을에 200만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봄철 100만원으로 장마당에서 쌀을 사면 200킬로니까, 가을에 가서 농장 간부는 개인 돈주에게 쌀 500-600킬로 현물을 줘야 합니다. 쌀 가격은 봄철에 비싸고 가을에 싸지기 때문인데, 이로써 북한에는 농장과 개인 간 장리쌀 거래가 세 배 이상이므로, 조선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장리쌀 거래는 사회주의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화가 아닐까 싶네요.

이예진: 지난해 이맘때도 이렇게 절량세대가 늘어나면서 아사자가 속출했고,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손 기자, 문 기자! 올해 아사자 발생을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이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뭘까요?

손혜민:개인적으로 말씀드린다면, 국가가 협동농장에 식량을 풀고 그 식량을 농장 측에서 절량세대에 풀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장리쌀이 아니라 환급 방식으로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일부 벌방농장 간부들의 사례를 본다면 노력이 긴장한 영농철 때마다 농장이 비축한 알곡을 절량세대에 풀어주고, 연말 분배에서 공제하거든요. 이것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풀어주라는 얘깁니다. 또 산성화로 인해 비농경지로 분류되어 놀고 있는 땅을 절량세대에 나누어 주어 개인 농사를 짓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은데요. 특히 농민들이 기르는 돼지를 군대지원용이라며 공짜로 뺏지 말고 국가가 시장가격으로 사 주기만 해도 농촌지역에서의 아사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문성휘:김정은이 정말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하루가 멀다 하게 비싼 미사일을 바다에 처박지 말고, 그런 걸 만들 돈으로 식량을 사라는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얼마든지 식량을 살 수 있고, 주민들의 굶주린 배를 달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정부패도 따지고 보면 식량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군인들이 탈영을 하고, 군 지휘관들이 병사들의 쌀을 떼어먹고, 이게 다 식량 때문이죠.

그러니 김정은은 무엇보다 식량의 질에 앞서 양을 늘리기 위한 대책, 평양과 지방, 도 소재지와 군 소재지의 차별을 줄이고, 식량으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할 대책부터 내놓아야 합니다. 지난해 2월, 농업발전을 위한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조직하고, 이 회의에서 김정은이 알곡 생산을 늘리기 위한 대책으로 무엇을 내놓았습니까? 그 대책이라는 게 농기계의 현대화였습니다.

북한이 여태 농기계가 없어서 농사를 망쳤나요? 농기계는 기름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밀, 보리 농사를 늘리고 2모작 농사를 앞세우면 농사가 저절로 잘 되는가요? 농사는 농민들 자율로 맡겨두고 농민들이 알아서 지으라고 하면 됩니다. 농사의 주인인 농민들의 손발을 사사건건 묶어 두니 농민들이 어떻게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겠습니까? 농사는 농사의 주인인 농민들에게 맡겨두라, 이것이 북한에서 식량난을 해결할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