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명절 당과류 세트 공급 대상 축소 영구적?
-“벽돌과자라도 선물 달라”
-명절 물자 가격 10배 올라
질이 나빠 주민들의 원성을 샀던 명절 당과류 세트 선물, 지금은 공급 대상이 절반으로 대폭 줄어 그 원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당과류 선물과 함께 저렴한 명절 물자를 기다렸던 북한 주민들, 그러나 그 가격이 10배나 올라 살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강매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알아봅니다.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이예진: 북한 당국이 매해 명절 어린이들에게 선물했던 당과류 세트 공급 대상을 대폭 축소했다고 합니다. 문성휘 기자, 선물 공급 대상을 줄인 게 이번 김일성 생일이 처음이 아니라고요?
문성휘:네, 지난 2월 16일, 김정일 생일에도 7세 이상, 12세 이하의 소학교(초등) 어린이들은 당과류 세트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합니다. 당시까지 주민들은 소학교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세트 선물을 주지 않은 원인에 대해 수입한 재료가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는데요.
그런데 이번 김일성의 생일, 4월 15일에도 소학교 어린이들을 당과류 세트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한 데 이어 앞으로는 소학교 나이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세트 선물을 공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주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과정이 매우 어설펐는데요. 이를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은 당과류 생산을 책임진 간부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해마다 선물 당과류 생산을 하다 보니 재료가 얼마나 필요한 지를 훤히 파악하고 있다는데요. 하지만 이번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에 공급할 당과류 재료 역시 지난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일과 꼭 같았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공급받던 재료의 절반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인데요. 결국 북한 당국이 직접 주민들을 상대로 “앞으로 소학교 어린이들은 당과류 세트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한다”라고 공식적으로 알려준 것이 아니라 당과류 선물 생산자들의 입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주민들 속에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다 이번 한번이 아니고 앞으로 소학교 어린이들은 영구적으로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가 매우 컸다는 거죠. 앞으로 당과류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된 7세 이상 12세 이하의 어린이들, 그런 자식을 둔 학부모들은 그래서 김정은을 ‘선물도둑’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겁니다.
이예진: 김정일 생일에는 설탕 수입이 늦어졌다는 이유라도 밝혔는데, 앞으로 영구적으로 소학교 어린이들을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한다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었다는 건가요?
문성휘:네, 앞으로 영구적으로 소학교 나이 어린이들을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하게 된 이유에 대해 북한 당국은 지금껏 아무런 설명도 없다고 합니다. 다만 주민들은 나라에 돈이 없고 경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나라에 돈이 없고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데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북한이 김일성의 생일에 당과류 세트를 선물로 주기 시작한 것은 1979년 4월 15일부터였습니다. 북한이 그야말로 전성기의 정점에 있던 시절인데요.
이후 1980년부터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에도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선물을 주었고요. 1982년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 70돌이 되던 해에는 12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당과류와 함께 6년근의 개성인삼까지 선물로 주었습니다. 또 2013년부터는 김정은의 생일인 1월 8일에도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세트 선물을 주기 시작했는데요.
북한은 그렇게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소학교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세트 선물 공급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 화폐개혁으로 경제가 완전히 멈추었던 시기에도 소학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었고요. 코로나 사태로 주민들 속에서 아사자가 나오던 때에도 소학교 어린이들을 선물공급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코로나도 이겨내고, 지난해 농사도 잘 되었다고 하는 지금에 와서 소학교 어린이들을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하냐는 거죠.
북한은 지금껏 당과류 세트 생산에 필요한 사탕가루(설탕)와 밀가루, 분유를 전부 중국에서 수입해 들여왔습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1살 이상,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약 360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360만명에게 1kg의 당과류 세트를 선물하려면 사탕가루와 밀가루, 분유를 다 합쳐 한번에 3천6백톤 정도를 수입해야 하는데요. 한해에 생일 선물을 세 번씩 주니까 지금껏 북한 당국은 해마다 10,800톤의 당과류 원료를 중국에서 수입해 들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소학교 대상 어린이들은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해마다 당과류 세트 선물을 위한 재료 수입의 양도 10,800톤에서 대략 5,400톤으로 확 줄게 되었고요. 그걸 줄인다고 북한의 경제가 좋아질 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지방공업공장들을 살려 주민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김정은 정권이 소학교 어린이들에게 생일 선물로 주던 보잘것없는 당과류마저 빼앗아 내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예진: 사실 과거에는 선물 당과류의 질이 너무 낮아서 아이들도, 부모들도 좋아하질 않았다고 하죠.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 보이는데요. 지금 북한 주민들에게 당과류 선물은 얼마나 절실한 겁니까?
문성휘: 1980년대 중반까지 당과류 세트 선물의 질이 좋았습니다. 나이 많은 북한 주민들을 조사해보면 "1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이 북한을 망쳤다" 이런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요. 1980년대 말 북한의 경제는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북한에서 '벽돌과자'라는 말이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자의 단단함이 벽돌과 같다고 하여 '벽돌과자'라고 불렀는데요. 1980년대 말 경제난에 이어 19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북한의 경제난은 가속화되었고요. 결국 북한의 경제난이 시작된 1980년대 말부터 명절 선물로 주는 당과류 세트의 질도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엔 당과류의 질이 말할 정도가 못되었는데요. ‘고난의 행군’이 끝난 1990년대 말부터 ‘벽돌과자’가 사라지고 선물의 질도 조금 나아졌는데요. 그러던 2014년, 김정은이 당과류 선물의 질을 높일 것을 지시하면서 지금과 같은 상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시 김정은은 국산품을 애용할 것을 주문하면서 국산품의 가짓수와 질을 높일 것도 강조했는데요. 이때부터 북한은 당과류와 술, 담배의 질이 비약적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맞춰 당과류 선물의 질도 높아졌고, 양도 1kg을 맞추었고, 가짓수도 지금과 같은 7가지로 늘게 되었습니다.
이번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부터 소학교 나이 어린이들을 당과류 세트 선물 공급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소식은 북한 주민들, 특히 북한의 가난한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는데요. 현재 어린이들에게 선물로 주는 당과류 세트를 장마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북한 돈으로 2만3천원대(2.64달러)라고 합니다. 노동자의 월급이 3만원(3.44달러)이니 월급의 76.6%에 해당되는 돈이죠. 서민들의 주식인 강냉이로 계산해도 6kg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식량이 없어 끼니를 건너 뛰는 서민들은 어린 자식들에게 당과류를 사서 먹일 꿈도 못 꾼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어린이들에게 주는 당과류 선물은 가난한 서민가정의 자식들이 어쩌다 당과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합니다. 그 기회를 김정은이 빼앗아 갔으니 주민들은 원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예진: 북한 주민들, 이번 김일성 생일에는 실망만 컸을 것 같습니다. 당과류 공급 연령을 줄이더니 이번엔 명절 물자 가격까지 높아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는 소식입니다. 손혜민 기자, 이번 명절 물자는 국정 가격이 아니었다고요?
손혜민:네, 그렇습니다. 사실 북한 주민들이 국가에서 공급하는 명절 물자를 기다리는 이유는 가격이 싸기 때문입니다. 장마당에서 술 한 병 사려면 2천원을 줘야 하거든요. 반면 국가에서 정한 술 한 병 가격은 200원 정도입니다. 가격 차이가 10배죠. 그래서 살기 힘든 주민들이 국가에서 공급하는 술을 장마당에 넘겨 부식물을 사는 것인데요.
그런데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으로 국가에서 공급하는 명절 물자 가격이 장마당과 같아 주민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보자면 용천군 읍 식료 상점에서 주민 세대별 공급한 술 한 병 가격이 2,500원(미화 0.28달러), 두부 한 모에 1,200원(미화0.13달러), 콩나물 1킬로 1,000원(미화0.11달러)이었다고 합니다. 이 가격은 장마당과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명절 물자 가짓수는 늘어났습니다. 작년에는 세대별 술 한 병만 공급했는데, 올해는 명절 음식에 필수인 두부도 주고 콩나물도 주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공급가격이 장마당과 같으니 반갑지 않은 겁니다. 장마당에 가면 더 좋고 큰 두부가 있는데, 누가 같은 돈을 주고 상점에서 공급하는 두부를 사겠나요. 이 소식을 전한 용천군 소식통도 명절 물자를 사려고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며 ‘누가 흥정도 못하는 국영상점에서 물품을 사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예진: 문제는 명절 물자 가격이 장마당과 같아서 국영상점에서 살 생각이 없는 주민들에게 강매를 했다는 겁니다. 이번에 당과류 공급 연령까지 대폭 낮추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한층 더 커졌을 것 같은데요.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명절 특별 공급, 이대로라면 별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손혜민:저도 강매를 했다는 소식에 조금 놀랐습니다. 북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싸면 안 사면 되지 무슨 불만이냐' 장마당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간 물건 가격 흥정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중 언어거든요. 개인과 개인 간 상품을 거래하는 장마당에서 강매는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운영하는 식료상점에서 명절 물자를 강매하도록 인민반을 통해 조치한 건데요.
김정은의 인민애를 선전하면서 당국이 공급한 명절 물자 부작용이 불가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정책과 현실이 괴리되고 있는 북한 사회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당국의 선전처럼 명절 물자 효과가 주민들의 충성심으로 이어지려면 국가 예산이 투자돼야 합니다. 그런데 지방 식료공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원료와 자재를 자체로 조달하니 운영 자체가 장마당과 연결되어 작동하고 있거든요. 생산원가를 뽑으려면 장마당 가격으로 유통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입니다.
그런데 김정은 정부는 올 초부터 지방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지방정부 역할만 다그치고 있는데요. 할 수 없이 지방정부 간부들은 명절 물자를 세 가지 이상 공급했다는 실적 보고에만 급급하고, 주민들은 가격이 비싸 명절 물자를 외면하는 상황, 즉 정부와 주민이 대립하는 구조가 발생하는 겁니다. 이에 지방당국은 강매 조치까지 실행하고 있으니 민심이반 현상을 김정은 정부가 자처하는 모양새입니다.
이예진: 이런 상황 속에서도 평양에서는 국정 가격으로 원활하게 명절 공급이 이뤄졌다고 하죠. 지방과 평양의 차이는 여전히 큰 것 같습니다. 올해 김정은 총비서가 지방경제 살리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지방 공장을 돌리는 데에도 기본적인 국가 자재 공급이 우선되지 않으면 악순환만 계속될 것 같은데요. 손 기자, 다음 명절 물자 가격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손혜민:결론부터 말씀 드린다면, 지방 주민들에게 명절 물자가 국정 가격으로 공급되는 현실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단 북한 정부가 금융개혁을 단행한다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식량과 고기 등 장마당 가격을 국정 가격으로 현실화하고, 국제시장과 국영기업과의 자유무역을 허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 경제 안에서 지역마다 자리한 국영기업들이 주민들의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현실화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북한 당국이 식량 가격과 공장 노동자 월급을 장마당 가격으로 인상하는 조치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조치로 평가되는데요. 하지만 아직 시범 도입했다는 가격 현실화가 일반화되도록 혁신적인 정책으로 발표되지 않고 있는데, 정부의 고민도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제를 개혁하면 민생이 나아지겠지만, 체제 기반이 불안한 것도 김정은 정부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밀착되는 북-중-러 관계도 주목해야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변수는 북한 경제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봅니다. 중국이든 러시아든 자국의 이익에 북한을 이용하는 것 아닙니까. 식량과 연료를 북한에 조금씩 지원해봐야 북한 핵개발만 계속될 것이므로 이는 북한과 가까운 한국과 일본에 자극을 줄 것이고, 결국 한미일 동맹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합니다. 김정은 정부가 진심으로 인민생활 향상을 희망한다면, 보다 큰 그림으로 정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예진: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이예진,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