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상 방치됐던 소련군 해방탑, 열사묘 정비
- 주민들 속에서 러시아와 무역길 열리나 기대감 높아져
- 블라디보스토크에 열린 북한 상품 전람회
- 대북 제재 지정 만수대창작사 작품 대거 진열, 판매고 올려
6월 21일, 평양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하던 2000년 7월 이후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했는데요, 푸틴 대통령의 방문은 하루가 채 안 됐지만 그의 방문을 앞두고 각 지방 당국도 러시아 관련 시설을 정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 기자 , 생각보다 지방에도 러시아 관련 시설이 많네요.
안창규 기자 : 네, 우선 북한 수도 평양에 해방탑과 옛 소련군 열사묘가 있습니다.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모란봉 기슭에 설치된 해방탑은 소련군에 의한 북한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30m 높이의 탑입니다. 사동구역에 있는 소련군 열사묘는 대일 군사작전 과정에서 전사한 소련 군인들의 묘입니다.
이외 지방인 원산, 함흥, 청진 신의주, 해주, 의주, 동림 등에도 해방탑 혹은 소련군열사묘, 소련군열사기념비 등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평양에 있는 해방탑에는 소련군이 ‘일본군을 쳐부수고 조선을 해방시킨 해방자’라는 문구가 있지만 지방에 있는 시설에는 이런 문구를 다 없앴습니다.
또 평양을 제외한 지방에 있는 해방탑과 소련군열사기념비 등은 북한 주민들이 즐겨 찾거나 별도의 행사가 자주 진행되는 장소 등으로 활용되지 않으며 시설을 관리하는 성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다 가끔 행사가 있는 경우 러시아 관련 시설이 있는 지역 당국이 가두 여성 몇 명을 파견해 청소하거나 도로를 쓰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과거와 다른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6.12 러시아 국경절을 앞두고 청진시 당국이 근로자 수십 명을 파견해 해방탑과 소련군열사묘 주변을 깨끗이 꾸리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북한 지방도시 중 유일하게 청진에 러시아 총영사관이 있습니다. 매년 전승절, 국경절 등 러시아 주요 기념일에 러시아 총영사관 직원들이 해방탑과 소련군열사묘를 참관하지만 행사 전에 시 당국이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을 파견해 파손된 보도블록과 경계석을 교체하고 도로와 주변 환경 정리 작업을 조직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 보도를 듣고 ‘아 그래서 지금껏 하지 않던 부산을 떨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해방탑, 소련군열사기념비도 청진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방이면 직접 방문하는 것도 아닌데도 주민들을 동원해 정비했습니다 . 그만큼 북한이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또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따라 주민들 속에서 북러 무역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요. 재개 움직임은 감지됩니까?
안창규 기자 : 아직 지켜봐야 하는 단계입니다.
지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북한에서 러시아와 가까운 지역은 나선시와 함경북도입니다. 바로 이 지역 주민들 속에서 최근 러시아와의 관계 밀착에 따른 무역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나선시와 함경북도는 경제난 초기 중국산 물품이 제일 먼저 유입된 지역입니다. 1990년대 초 당시 나선, 회령, 온성, 경원, 경흥 등 중국과 가까운 함경북도 여러 지역에 장마당 2개가 따로 존재했습니다. 하나는 북한 장마당이고 다른 하나는 연변에 사는 조선족들이 북한에 나와 체류하면서 중국 물품을 파는 장마당이었습니다.
경제난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신의주, 혜산 등 다른 국경 지역을 통해서도 중국 물품이 유입되었지만 경제난 초기에는 연변과 마주한 함경북도를 통해서만 중국 물품이 들어왔던 겁니다. 이 물품이 조금씩 전국에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선시와 함경북도는 북한 다른 도에 비해 장사에 대해 제일 먼저 눈이 튼 지역이었던 셈입니다.
향후 북러 무역이 활발히 진행되게 되는 경우 러시아 상품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될 지역도 나선시와 함경북도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지역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 초기 중국 상품을 전국에 유통해 돈을 번 것처럼 러시아 상품으로 돈을 벌고 싶은 욕구도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 북한에 중국산 물품 유입이 이전 같지 않아 각종 생필품이 부족한 만큼 북부 지역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러시아와의 무역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북한과 전통적으로 가까운 국가는 사실 중국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이후 양국의 밀착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주민들 사이에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또 북러 정상회담 이후에는 변화가 감지되는지요.
안창규 기자 : 중국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에 비해 러시아는 비교적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 물품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집니다.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전 북한에 사용되는 각종 자동차와 TV와 냉장고, 전축 등 가전제품은 거의 100% 러시아 산이었습니다. 이외 당과류, 의약품, 가루비누(세제) 등 다양한 러시아산 물품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를 경험한 탈북민들은 당시 러시아 산 구두약의 인기가 높았다고 회상하기도 합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이 중국산 물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제품의 질이 좋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정말 많습니다. 대신 러시아산 물품에 대해서는 신뢰하는 분위기입니다. 겉모양이 투박하긴 하지만 든든해 오래 쓸 수 있다는 인식이지요.
작년부터 북러 간 잦은 선박 왕래로 나선항은 부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러시아와 연결된 북한 동해선의 마지막 철도역인 두만강 역은 그렇지 못합니다. 소련이 망하기 전까지 두만강 역은 북한 전역에서 화물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역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전 소련과의 교역이 활발했습니다.
최근 나선-하산 간 열차 운행이 재개되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향후 해상 및 철로를 통한 북러 간 무역이 활발해지면 북한 주민들에게도 결코 나쁘진 않을 것이란 기대가 팽배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상품전이 개최됐습니다 . 제목은 '2024년 조선상품축전', 6월 26일부터 5일간 열렸는데요, 다음 소식으로 이 내용 알아보죠. 김 기자, 상품은 많이 팔렸다고 합니까? 행사는 어떻게 마무리됐습니까?
김지은 기자 : 네, 30일이 마지막 날이었는데 방문객이 없어서 오전 일찍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시된 북한 상품의 질이 대부분 낮아서 러시아 현지인들의 관심은 별로 끌지 못했는데요. 다만 북한 노동당 39호실 자금 창구의 수익원으로 알려진 만수대 창작사의 예술 작품 유화, 수예품, 공예품 등은 거의 팔렸다고 합니다. 만수대 창작사는 북한 핵개발 자금에 기여한다는 판단으로 대북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기관입니다. 결국 이번 전람회는 김정은 정권의 통치 자금만 불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당 자금 창구로 알려진 북한외화벌이회사들이 대거 참가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은하대성무역회사, 조선봉화총회사, 백호무역회사, 조선번영무역회사, 조선경공업무역회사, 동해식료무역회사, 선호무역회사 등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 디나모 경기장 뒷편에 위치한 전람회 장소는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으로 전람회장 역시 어두운 창고 같은 공간이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이번 전람회에는 현지 구매자 확보를 위해 다양한 상품이 전시됐는데 눈길을 끄는 제품이 많았습니다 . 사진을 보면 식품부터 의류, 마사지 기계 등등이 보이는데 김 기자는 어떤 상품을 눈여겨보셨나요.
김지은 기자 : 제가 주목한 상품은 예술품인데요. 만수대창작사 소속 만수대 해외개발회사그룹의 도록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만수대 해외개발회사그룹은 만수대창작사의 해외 사업 부문으로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명단에 오른 곳입니다.
‘백두산’, ‘파도’, ‘소백수의 호랑이’, ‘숲속의 범’ 등의 그림과 11마리의 말이 그려진 ‘2012년을 향하여’, ‘선녀’, ‘달밤의 기러기’, ‘정물’, ‘무용수’ 등의 유화 작품이 전람회장에 걸린 것을 확인했고 그림뿐 아니라 수예 작품, 도자기, 배지도 전시, 판매됐습니다.
저는 미사일 모양의 물놀이 튜브가 흥미로웠습니다 . 아이들이 갖고 노는 물놀이 상품을 미사일 모양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인가요?
김지은 기자 : 한국 같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군사 국가로서의 북한 또 북한 당국이 얼마나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제가 설명한 예술품 외의 전시 상품 대부분은 러시아 사람들이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손사래를 칠 정도의 상태였습니다. 현지 소식통의 전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시골 장터에 온 것만 못하다’였습니다. 현장 사진을 보면 북측 관계자들은 상품을 전시한 전시대 옆에 앉아 손전화를 보거나 잡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한국식 표현으로는 파리가 날린다고 하죠.
전람회 첫날 참석한 블라디보스토크 연해주 주지사가 축사를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은 물론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 중국 여행사는 북한상품전시장을 필수 관광코스로 정하고 상품구매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막 행사가 있었던 첫날을 제외하면 전람회 일정 중 사진 등으로 확인한 관람객은 하루 10명에서 20명 정도였습니다.
4박 5일 동안 전람회 기간 중 입구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며 한국인의 출입을 막았다고 하죠?
김지은 기자 : 네, 엉성한 전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검문검색을 하여 신분증, 여권을 일일이 보고 한국 사람은 차단했다고 합니다.
일부 현지인들은 북한이 러시아에서 북한상품 전람회를 개최한 것에 대해 북한이 우물 안의 개구리식 정책에서 탈피하여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의 출입을 막는 것을 보면 세계 무대로 나가기는 아직 멀었다고 보입니다.
반면 북한 당국은 북한상품 전시장에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외국인이 많이 투숙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의 한국 롯데호텔 측에 광고 비용을 지불하고 호텔 로비에 전시장 광고를 의뢰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 전람회를 위해 동원된 북한 인원은 170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총 75개 회사에서 2명씩 선발되어 모두 150명의 성원들과 감시 인원이 20명이 포함되어 170명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열악한 경제 실태를 여지없이 드러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평가입니다.
오늘 전해드린 소식 모두 북러의 밀착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앞으로 러시아와의 관계,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요?
안창규 기자 : 북한과 러시아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대북제재로 어정쩡했던 양국의 관계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원동 개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집니다.
푸틴과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대한 밀착을 과시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두 국가 모두 말로만이라도 자신을 지지해 줄 국가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김지은 기자 : 전세계가 러시아의 무력침공을 규탄,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고 전세는 기울자 바빠 맞은 푸틴 대통령은 세습 독재자의 손을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양국의 야합은 전쟁 범죄행위로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또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은 북한의 불안한 내부 정세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 북한 관광을 다녀온 러시아 사람들은 후기가 전해졌습니다 . "과거로 순간 이동한 듯하다", "할머니가 살던 소련 같다"는 평가가 다수였는데요, 자본주의 러시아의 모습은 북한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또 러시아 사람들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북한의 모습도 궁금합니다. 국제적 우려를 불러온 북러의 밀착, 두 나라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도 주목됩니다.
오늘 소식 여기까집니다 . 함께해주신 김지은, 안창규 기자 감사합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 새로운 소식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