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처형 처형 당일 오전 긴급하게 내려온 지시
“17세부터 60세까지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다 참석하라”
주민들 "북한에서 6년 동안 소 2천 100마리 잡아서 유통? 불가능하다"
“올해 알곡 생산량 미달에 대비한 보험으로 키운 사건 아닌가?”
지난달 30일, 양강도 혜산 비행장에서 불법 소고기를 유통한 9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소식입니다. 무려 2만 5천여 명의 주민들이 이 장면을 지켜봤다고 하는데요. 김지은 기자, 처형 방식도 유례없이 잔인했다고요? 주민들 속에서도 얘기가 많이 나왔을 것 같은데 어떤 상황입니까?
김지은 기자 : 네, 무척 잔인했고 목격한 주민들이 그날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 현대 사회, 지구상 어디서도 소를 잡았다고 그 벌로 사람을 죽이는 나라, 그것도 국민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국가는 북한 외엔 없을 겁니다.
공개 폭로 모임을 주최한 조선인민군 특별재판소는 처형 현장에서 읽은 판결문에서 ‘이 자들은 우리나라의 하늘에도, 땅에도 묻을 곳이 없는 대역죄인들로 3대를 멸족해도 부족하다’며 한 명씩 총살한 뒤 다시 사신 고사총으로 사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처형 장면을 지켜본 소식통에 따르면 뼈 조각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또 죄인이 아닌 지켜보는 주민들도 공포에 질릴 정도로 살벌한 광경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끔찍한 장면을 2만 5천여 명이 지켜봤다는 얘긴데… 당국이 주민들에게 반드시 참석하라고 지시를 내린 거죠?
김지은 기자 : 네, 그렇습니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17세부터 60세까지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다 참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또 공개 총살은 사전에 이미 예고를 했는데요. 당국은 예고된 날짜를 두 번이나 미뤘습니다. 그러다 30일 아침 7시에 낮 12시까지 공개 처형 현장에 모이라고 긴급 포치된 것입니다. 당일에는 공장도 세우고, 농장 일을 멈추게 하고 장마당을 휴장시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인민반마다 안전원이 배치됐고 도로의 차량 이동도 금지됐다고 합니다.
남한에서는 이렇게 모인다는 게 별일 아니게 느껴질 수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총살 현장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2시간 걸리는 사람도 있고 또 먼 곳에 사는 주민은 아예 점심밥을 준비해 떠나는 등 공개 총살을 보기 위해 하루를 날리는 셈입니다.
특히 소식통은 당일 현장에는 공장, 농장, 인민반 별 대열 사이마다 안전원들이 배치되는 것은 물론, 모인 사람들을 빙 둘러 안전원, 보위원, 정치학교(경찰양성학교) 학생들이 3미터 간격으로 배치되는 등 감시가 심했다고 전했는데요. 당국도 돌발 상황을 우려한 듯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감시하는 사람이 많으면 아무리 잔인한 장면을 봐도 주민들을 감정을 표출할 수 없습니다. 울지도 못하고 ‘악’ 하는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했을 겁니다.
감정을 너무 격하게 표현하면 당국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 처형 현장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 압박감이 클 것 같습니다.
김지은 기자 : 네, 그걸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요. 주민들에게 처형하는 장면을 보게 해 경고와 위협을 하는 거죠. 또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공개 처형은 공개폭로모임이라고 모이게 하고는 현장에서 죄목 발표, 재판, 처벌에 처형까지 한번에 이뤄진 것인데요. 이렇게 공개폭로모임에서 바로 처형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또 공개 처형이 이뤄진 곳은 혜산 비행장인데 이곳은 과거 비행장으로 만들었지만 사용하지 않는 공터입니다. 공개폭로모임 중 누군가 재판 결과에 불복할 경우 군중 폭동으로 이어질 것을 당국도 상당히 우려해 이 장소를 선택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한동안 공개 처형이 좀 줄어 들었던 것 같은데 , 코로나 이후로 다시 부쩍 늘어난 것 같네요.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간부들에 대한 처형과 숙청을 일삼는 대신 일반 주민에 대한 공개 총살은 금지했습니다. 사형 판결을 받은 죄수들은 대부분 지하에서 은밀히 처형당했습니다. 공개 총살을 금지한 뒤 김정은은 어느 정도 잔인한 독재자의 아들의 이미지를 벗는 듯 했습니다. 또 중국과의 무역 교류가 늘어나고 장마당을 통한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공개 총살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발생하고 국경이 봉쇄되자 경제는 악화됐고 공개 총살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총체적인 경제난, 식량 상황 악화로 출렁이는 민심을 공포 정치로 잡아보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소를 잡았다고 주민들을 모아서 공개 처형을 한 시기도 역시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였습니다.
북한 당국은 범인들이 2017년부터 올해 2월까지 국가 소유의 소 2천 100여 마리를 잡아 팔았다고 밝혔습니다. 일년에 350마리 정도를 팔았다는 얘긴데요. 양강도 한 개 군이 보유한 소가 기껏해야 500여 마리 정도로 알고 있는데, 유통시켰다는 소의 숫자가 터무니없이 많은 게 아닌가 싶은데요. 김 기자, 북한 당국이 밝힌 범인들의 죄목과 그 실상이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고요?
김지은 기자 : 저도 소식통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협동농장들에는 소가 부족해 봄철에 밭갈이를 제때에 하지 못하는 실정이거든요. 실례로 협동농장의 한 개 작업반에 소가 4마리 있는데 분조는 6개입니다. 봄철 씨뿌리기를 할 때는 소를 어느 분조에서 먼저 차지할 지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로 소가 부족하다는 건 북한 사람,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가 부족하지만 개체 수를 늘리는 일도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일단 소를 먹일 여유가 없습니다. 일은 많이 시키고 조건은 열악하니 소가 폐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소를 불법으로 유통시킨다고 해도 6년만에 2,100마리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농사가 안 된 원인을 소 유통업자에게 들씌우기 위해 죄를 키웠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2017년 북한에서 가축 전염병이 돌았다는 것입니다. 조선인민군 특별군사재판소가 밝혔듯 2017년 북한에는 소, 양, 염소, 돼지 등 두족 동물의 전염병(구제역)이 크게 돌았습니다. 약이 없는 북한에는 일단 전염병이 발생하면 손 쓸 사이 없이 동네마다 마구 퍼져 나갑니다. 병에 걸려 죽은 고기는 헐값에도 팔기 힘듭니다. 따라서 일단 전염병이 발생하면 너나 없이 병에 걸리기 전에 키우던 양과 염소, 돼지를 도축합니다. 돈이 없으면 가을에 갚으라며 외상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이게 2017년의 상황인데요. 따라서 사법 당국이 소 뿐 아니라 당시 급하게 도축된 양, 염소, 돼지까지 모두 합해 숫자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건을 의도적으로 부풀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공개 총살은 이례적으로 잔인했고 , 대규모로 진행됐습니다. 북한 당국이 의도하는 바는 뭘까요?
김지은 기자 : 올해 북한의 최우선 과제는 알곡 증산이었습니다. 올해 초부터 보도마다 관련 소식을 전했는데요. 다행히 올해 북한은 자연재해를 크게 입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국 입장에서는 이 때문에 알곡 생산량이 목표에 미치지 못해도 핑계거리가 없습니다. 바로 이번 사건을 부풀리고 공개 총살까지 잔인하게 한 중요한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한 가지 주목해서 봐야할 보도가 있습니다. 지난 8월 중순,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간석지 배수 구조물 설치공사 중 제방이 붕괴돼 560정보가 물에 잠긴 것인데요. 이 논은 군부에 소속된 토지로, 국가알곡수확고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북한은 자연재해에 의한 대형사고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김정은이 직접 물에 잠긴 논밭에 들어간 영상을 내보내고 야단법석을 떨었죠. 내각총리나 관련 간부들을 마구 질타한 내용을 보도했지만 사실상 그 지역은 군부 영역이어서 그 책임도 군무력의 총사령관인 김정은이 져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그 지역의 주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보도 역시 소 불법 유통 총살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요. 알곡 생산이 목표에 미치지 못해도 적당한 핑계가 없으니 김정은이 직접 남포간석지 제방이 무너진 논밭에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하며 일종의 보험을 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소를 많이 도축했기에 농사가 안 되었다는 쪽으로 몰고갈 갈 수도 있게 만든 것이죠.
북한 주민들은 공개총살형을 받은 9명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얘기합니다. 올해 알곡 고지의 총사령관을 자처한 김정은의 무능함을 덮어보려고 사법당국이 작은 사건을 크게 날조한 것으로 보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남한 사회의 화두 , 교권 문제
9월 5일 북한의 교육절 맞아 짚어보는 북한의 교권은?
남한 소식에 관심 있는 청취자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 요즘 남한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게 교육문제입니다. 특히 낮아진 교권에 대한 우려와 교원들의 가르칠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높죠. 북한도 얼마 전 교육절(9.5)이었는데요. 관련 소식 알아봅니다.
손혜민 기자 , 교육절 체육 대회에서 목재 모형 핵미사일로 적을 공격하는 경기가 등장했다고요? 올해는 특히 전쟁 관련 종목이 많았다면서요?
손혜민 기자 :우선 북한 학생들의 체육대회는 주로 가을에 진행되어 왔습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10월 10일, 그러니까 당창건 기념일이 초고급중학교 학생들의 운동회 날이었거든요. 그러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생활난으로 학교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는 사례가 증가하며 교사의 역할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스승의 날'로 볼 수 있는 교육절을 부각하자는 의미에서 학생들의 가을 체육대회를 교육절(9.5)에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창건 기념일에서 교육절로 바뀐 학생들의 가을 체육대회 종목은 기존에도 전쟁 훈련 비슷한 경기종목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류탄을 누가 더 멀리 던지는가에 따라 경기 승패가 좌우되는 경기 같은 것인데요. 이뿐 아니라 유사시 공습을 피해 위장물을 쓰고 달려가다가 장애물을 넘는 경기 또한 전쟁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죠.
그저 해맑게 뛰어노는 게 정석인 아이들의 운동회 , 북한에선 아주 살벌하네요
손혜민 기자 : 그렇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올해는 더합니다. 올 체육 대회는 핵과 미사일 모형을 가지고 미국과 한국을 없애 버리거나 무찌르는 경기가 등장했는데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개최한 체육대회에 이러한 경기가 등장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신냉전 시대 등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코로나 생활고로 예민해진 민심을 외부로 돌리려는 고육책으로 핵과 미사일로 적국을 없애야 한다는 등 전쟁 분위기를 고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체육대회에는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전부 참석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과 교사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강도가 높은 전쟁 경기를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분단체제 특성상 학생들에 대한 계급교양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세계관과 인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핵과 미사일로 사람을 죽이는 경기 종목은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특히 사람의 생명을 경시 여기는 폭력적 교육은 범죄 사건으로 연결되기에 북한의 학부모들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 대상 폭력 노출 정도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 차이도 큰 것 같습니다 . 김주애가 김정은과 함께 미사일 발사 시험장에 나타났을 때 남한에서는 어린 자녀를 그런 곳에 데려간다 비판의 목소리가 컸지만 북한에서는 주애 양의 옷차림에 더 관심이 컸잖습니까? 당국은 오히려 호전적, 폭력적인 교육은 부추기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문제의식은 없어 보이는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개인적인 주관으로 평가한다면, 문제의식이 없다기 보다 김정은 위원장의 딸의 등장에 주민들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일성의 후계자나 김정일 후계자로 공식매체로 등장한 대상은 아들이 아닙니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러한 수순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였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이례적이고 파격적이었죠. 후계자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딸의 손목을 잡고 나온 자체가 주민들의 관심사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김주애 얼굴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고 뽀얗지 않습니까. 왕족의 딸로 호강하며 성장한 모습이거든요. 당연히 주민들은 김주애 얼굴 색과 서양식 패션의 옷차림에 쏠리면서 감정이 상합니다. 그 어느때보다 주민들의 삶이 팍팍해 제대로 먹지 못한 자녀들의 얼굴은 핏기가 없는데 갑자기 등장한 김주애는 뽀얀 얼굴에 좋은 옷을 입었으니 말이죠.
반면 북한 지식인들은 물론 의식이 깨어있는 일부 주민들은 이러한 배경에 문제 제기를 합니다. 왜 미사일 발사 시험장에 김정은 위원장이 딸의 손을 잡고 나타났는지를 나름대로 평가하는 건데요. 일부 주민들 속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 교원은 직업적 혁명가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 북한도 과거보다는 교원의 권위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엔 교원을 우대, 존중하라는 선전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북한의 교권, 어떤 상황입니까?
김지은 기자 : 네, 북한에서도 1980년대 말까지 교육자들을 선생님, 스승으로 높이 존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교원이 학부형을 불러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면 공손하게 인정하고 시정하는 분위기였죠. 당시는 교육자의 위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공급 시대 이후 교육제도가 변질됐습니다. 학교에서 운영 비용을 자체로 해결해야 하면서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부담시켰습니다. 자연스럽게 학교가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는 돈 많고 권력 있는 집의 아이를 교원들은 편애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져 돈 있고 힘있는 학부형들은 자기 자식이 조금만 학교와 선생에 대해 불평해도 학교에 찾아가 떠들고 난리 치며 망신을 줍니다. 돈 많고 권력이 있는 학부형의 주도로 여러 학부형들이 떼로 몰려가 교원을 몰아 세우고 머리채를 잡아 뜯고 많은 학생들이 보는 운동장에서 집단폭행을 한 참담한 사례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자 당국은 ‘교원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세우자’는 선전선동물을 최근 전국에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교원들의 로임이 너무 적죠 ? 교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북한의 선생님들이 원하는 해결책이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 너무 적습니다. 교원들은 한달 학교에 근무해도 고작 로임은 북한돈 2천5백원에서 3천원(0.3달러) 정도를 받습니다. 지금 북한 장마당에서 강냉이 500g정도를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여기에 식량 배급은 전혀 없습니다. 교원들이 불법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돈 있고 힘있는 학부모들에 의존하게 됩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경력에 준하는 호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최하 200만원 중후반, 매달 2천달러 이상은 받습니다. 시중에서 질 좋은 입쌀 20kg이 한국 돈 6만원 정도입니다. 교원이 한달 로임으로 입쌀 20kg짜리 포대 30개를 사고도 남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교원들은 북한처럼 학부모에게 빌붙어 도움을 받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원의 의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당국이 아무리 교권을 회복하자고 해도 교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식량문제, 그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원을 존중하고 우대하라는 교권 회복의 해답은 없어 보입니다.
남한에는 야쿠르크 아줌마 , 북한에는 콩산유 배달 총각?
국영 식료품 공장도 뛰어넘는 북한 개인 콩산유 판매자 이야기
손 기자 , 김 기자 두 분도 음식 배달 가끔 시켜 드실 것 같은데요. 별의별 것이 다 집 앞으로 배달되는 남한에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집 대문 앞까지 배달하고 있는게 있는데요. 바로 요쿠르트, 산유입니다. 손 기자, 북한에서 콩산유를 가정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새로 등장했다고요? 부잣집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떤 서비스 입니까?
손혜민 기자 : 콩산유를 배달해 소비하는 계층이 부잣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북한에서 생산되는 산유 종류는 젖산유와 콩산유가 있는데요. 우유로 만든 젖산유는 중국에서 수입되거나 평양식품공장에서 생산되거든요. 수입산이든 국산이든 젖산유 가격은 원가가 싸므로 판매가격도 비싸, 소비자 역시 부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두부콩을 원료로 생산되는 콩산유는 젖산유에 비해 원가가 적어 가격도 싸서 일반 주민들이 주요 소비층입니다.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코로나 이전에는 국경무역으로 중국에서 젖산유를 수입했지만, 코로나 봉쇄로 젖산유 제품 역시 수입이 막혔죠. 우유 가루도 수입이 막히다 보니 평양에서 생산하던 젖산유 제품도 줄어들었습니다. 젖산유 원료를 국산화한다며 전국적으로 염소목장 확대를 장려하고 있지만 풀판 조성이 원활하지 않고 목장 노동자의 식량공급 미달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젖산유가 아직 대중제품으로 소비할 수 없는 주요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도를 보면 콩산유를 판매 , 배달하는 업자들 모두 개인이네요. 개인 집이나 상점에서 만들고 판매하는 망을 갖췄다는 얘긴데요. 어떤 식으로 제조, 판매됩니까?
손혜민 기자 : 일단 콩산유 원료인 두부콩을 조달해, 이것을 다시 물망으로 갈아 콩산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업자 등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지역의 식료공장에서도 콩산유를 만들어 공장 자금 해결에 나섰다고 하는데요. 이 소식을 전한 함경북도 소식통의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개인도 만드는 콩산유를 식료공장이 못 만들겠는가, 그래서 단천식료공장에서 콩산유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흥미 있는 것은 설비를 구축한 공장에서는 개인보다 콩산유를 생산하는 공정에서는 유리하겠지만, 판매에서는 개인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직접 소비자에게, 즉 각 가정에 배달을 해주니까요. 국영공장의 경영구조로는 개인 집집마다 매일 아침 신속하게 콩산유를 배달할 수 없습니다. 배달 비용을 로임으로 준다고 해도, 로임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가정배달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 겁니다.
따라서 식료공장에서 생산한 콩산유는 상점과 식당 등에서 판매되지만, 개인이 만든 콩산유는 상점과 식당 등 상업망은 물론 가정배달 서비스로 매상고를 올리는 데 우의를 차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맛도 궁금합니다 . 남한은 콩산유보다는 소젖으로 만든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장마당에서 팔거나 배달이 되는 북한의 콩산유는 좀 다른 것 같네요. 특히 기업이 나서서 대규모로 하는 배달은 아니라도 이런 서비스를 북한의 개인들이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특별해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의 콩산유를 먹어보지 못해 정확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요. 새콤하고 고소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단백질이 많아 어린이 키 크기 식품으로 인기 많은 콩산유를 제품으로 개발하느라 고심했을 주민들도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콩산유는 보관이 중요한데, 냉장기가 없는 개인은 물탱크를 만들어 지하수로 자주 갈아주면서 자전거를 타고, 혹은 손수레를 끌며 신속 배달에 나선 것을 보면 국가 공급 대신 자립으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지혜가 잘 느껴집니다.
각자도생의 사회 . 각자 스스로 살기를 꾀하는 사회라는 말인데요. 국가도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응원을 전하며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해주신 김지은 ,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예진 , 제작에 서울지국이었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새로운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고 정리, 제작, 에디터 : 이현주
웹팀 :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