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망년회가 언제부터 나라의 식량난을 부추겼나

서울-손혜민, 문성휘 xallsl@rfa.org
2023.12.28
[지금 북한은] 망년회가 언제부터 나라의 식량난을 부추겼나 평양의 만수교 식당에서 여종업원이 맥주를 나르고 있다.
/AP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최강한파 속 비참한 연말 맞은 북한 주민들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 학습 강화, ?

-망년회, 국가식량난 부추기는 행위로 간주

-망년회 금지 올해부터 시작?

 

최강한파 속 북한 주민들의 연말은 그 어느 해보다 혹독하다고 합니다. 이 추위 속에 어린이부터 군인까지 야외로 내몰리고 있는 이유 알아봅니다.

 

북한 주민들이 1년에 한번 마음 편히 먹고 마실 수 있는 망년회가 금지됩니다. 망년회 통제, 그 배경을 분석해 봅니다. 자세한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이예진: 올겨울은 최강한파라 불릴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강추위가 자주 이어진다고 하니 북한주민들의 땔감은 넉넉할까 걱정이 앞서는데요. 문성휘 기자, 올해 북한 주민들의 연말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문성휘: 남한은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와 송년 모임으로 바쁘죠. 직장동료들과 송년모임, 지인들과의 송년모임, 이런 일들로 바쁜데, 북한은 연말이면 연간 인민경제계획을 마무리하느라 고되고 몹시 바쁩니다. 올해 북한 주민들은 예년보다 더 혹독하고 비참한 연말을 맞았다는데요. 무엇보다 연말을 맞는 북한은 외지에 나간 자식들, 남편들 생각으로 몹시 우울한 분위기라고 합니다.

 

인민군 병사들의 나이는 만 17세부터 27세까지이고, 국가적인 건설에 동원된 돌격대원들의 나이는 만 17세부터 35세까지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거의 모든 가정들이 군대간 자식을 두고 있거나, 돌격대에 나간 남편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와 마을에서 젊은 사람이라고 하면 대학생들 내놓고는 찾기 어려울 정도라는 거죠.

 

그런데 군대나 돌격대는 늘 배고픔에 시달리고, 요즘 같은 겨울엔 추위에 떨고 있으니까 연말이면 외지에 나가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층 깊어지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감싸고 있으니까 연말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양강도의 경우 생산을 못하는 공장, 기업소들은 연말을 맞으며 거름 생산과 농촌 현대화 작업에 고되게 내몰리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북한은 12 17일부터 열흘 간을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으로 정해 놓아 주민들이 숨돌릴 여유를 얻는다고 합니다.    

 

이예진: 그런데 하필 올해는 11년 만에 열린 전국어머니대회 여파로 학습해야 할 게 늘어나면서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에도 쉴 틈이 없다고 하죠. 더군다나 올해는 예년보다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 학습을 깊이 있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는데요. 그 이유는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문성휘: 북한의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올해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에 여러 가지 형태의 회고모임을 조직할 데 대해 지시했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회고 모임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김정일의 영도 업적을 우상화 한 영화문헌 학습이 있습니다. 또 김정일의 덕성실기, 김정일의 노작 학습, 김정일의 사상이론에 대한 웅변대회 등과 같은 모임들이 있는데요.

 

여기에 더해 올해 북한의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16,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에자기 고장에 깃든 위인들의 영도 업적을 깊이 학습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따로 내렸다고 하는데요. 북한 당국이자기 고장에 깃든 위인들의 영도 업적을 학습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를 더 폭넓게 진행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싶습니다. 또 해마다 추모 기간이면 고리타분하게 반복되는 학습과 회고모임, 이런 지루한 놀음에서 탈피해 사회에 보다 신선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요.

 

문제는자기 고장에 깃든 위인들의 영도 업적을 학습하라고 하니 자기 고장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일일이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필이면 그동안 좋았던 날씨가 김정일 사망일인 17일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북부산간지대인 양강도의 경우 지난 17일부터 날씨가 영하 22도까지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런 날씨에 어린 학생들까지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돌아보아야 하니 이건 강요된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북한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에겐 자기 고장에 깃든 위인들의 영도업적 학습이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예진: 김정일 사망 추모로 한겨울 추위에 내몰린 건 군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추위에 갑작스러운 야외 훈련이 진행된 것도 전국어머니대회 때문이었다고요?

 

문성휘: , 북한 인민군은 해마다 12 1일부터 다음해 3 30일까지 동계훈련에 들어갑니다. 동계훈련의 1단계는 12 1일부터 다음해 1 18일까지의 전술 훈련인데요. 올해 동계훈련의 일정에 따르면 먼저 전술 훈련의 첫 시작으로 인민군 병사들은 12 1일부터 한주일 간 실내에서 정치사상 학습을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12 8일부터 김정일 사망 전날인 16일까지 부대 내에서 사격 훈련과 진지 점령 및 진지 방어 훈련을 진행하게 되어 있고요.

 

하지만 부대 내에서 사격 훈련과 진지 훈련 계획은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한 김정은의 폐막 연설 학습으로 중단되었습니다. 훈련 일정을 미루고 전국어머니대회에서 한 김정은의 폐막 연설을 집중적으로 학습할 데 대한 지시가 인민군 부대들에 하달됐기 때문인데요.

 

대신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에 유훈 관철이라는 구실로 인민군 병사들에게 야외 사격 훈련과 진지 훈련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에 실내에 머물며 여러가지 회고모임을 가질 것으로 기대했던 인민군 병사들은 예상치 못한 야외 훈련에 동원되며 갑작스런 추위를 모두 겪어야 했다는 건데요. 당연히 이를 예상치 못했던 병사들 속에서는 불만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예진: . 다음 소식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유례 없는 풍년이라며 지역마다 쌀가마를 쌓아놓고 잔치판을 벌였던 북한에서 최근 송년회, 북한식으로는 망년회가 국가 식량난을 부추긴다며 단속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손혜민 기자, 해마다 조직별로 열렸던 망년회를 막는 건 처음 있는 일 아닙니까?

 

손혜민: 그렇습니다. 지난 10월 북한은 올해 농사 작황이 풍년이라며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결산분배 현장을 선전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망년회 통제에 나서는 것도 처음입니다. 연말 망년회가 국가 식량난을 조장한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조치는 지난 10월 초부터 북한이 요란하게 선전하였던 풍년 작황 실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로 농작물 손실이 눈에 띄게 컸던 지난해 알곡생산량은 451만톤, 이에 비해 올해는 482만톤, 31만톤 증가(농촌진흥청)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올해 알곡 생산량이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소할 만큼의 풍년 작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올해 알곡생산량이 482만톤이라고 해도 군량미를 공제하면 주민들에게 공급할 식량은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국가식량배급제를 정상화하겠다며 평양시민과 주요 공장기업소 노동자들에게 선별적 배급을 실시하고 있는데요. 사회주의 제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배급제 부활이 3대 세습 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처음으로 식량 소비를 원천 차단하는 망년회 금지를 실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예진: 1년에 단 한번, 동료들과 한해를 돌아보며 수고했다는 자리가 바로 망년회일 텐데, 이게 얼마나 식량난을 부추긴다고 막는 걸까요?

 

손혜민: 저도 정말 황당하다는 생각입니다. 해마다 진행되는 주민들의 망년회는 한해 쌓였던 설움과 한숨을 술 한잔에 터놓고 직장동료들 간, 친구들 간 회포를 나누는 날인데 말입니다. 이 날을 기다리며 공장기업소 노동자는 노동자 대로, 협동농장 농민들은 농민들 대로 12월이 오면 가난에도 불구하고 쌀과 돈을 모아서 망년회를 해왔던 것입니다.

 

신의주 낙원기계연합기업소의 사례를 보아도 각 직장 산하 작업반별 송년회를 조직했었는데요. 1인당 쌀 500g, 현금 3(0.35달러)원씩 송년회비용으로 부과되어도 누구 하나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참여한 것은 그만큼 망년회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술은 작업반 자체로 모아놓았던 자금으로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당국이 느닷없이 술 생산 원료도 곡물이고, 떡이나 음식도 식량이 소비되므로 먹자판을 벌리는 송년회 자체를 나라의 식량난을 부추기는 행위로 통제한 것입니다

 

그 배경을 본다면 12월이면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망년회 시즌입니다. 떡과 밥, 고기, 술 등을 차려놓고 전국적으로 공장기업소나 협동농장들이 망년회를 한다면 식량 소비량이 급증한다는 게 북한 당국의 인식인데요. 12월 한달 간 1인당 쌀 500그램만 소비해도 북한 인구 2300만명 중 1천만명이 식량 5만톤 정도를 낭비한다고 추정한 것입니다. 국가에서 망년회 비용을 공급하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 자체로 준비하는 것인데, 이것을 국가식량 낭비라고 통제하고 있으니 주민들 속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예진: 사실 연말이 되면 북한 주민들도 연말 총화부터 각종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느라 바쁠 때죠. 그런 북한 주민들에게 망년회는 모처럼 마음 편하게 따뜻한 한끼 먹는 자리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북한 주민들에게 망년회는 어떤 의미, 어떤 자리일까요?

 

손혜민: 1년 내내 허리띠를 조이고 공장에 출근해 노동을 하거나 농사에만 쫓겼던 노동자나 농민들이 다 같이 모여서 서로를 다독이는 유일한 자리가 망년회 아닙니까?

 

물론 국제노동자 명절 5.1절이나 단오날 등에도 집체적으로 모여 체육경기하면서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5.1절이나 단오날은 전국적으로 모내기전투가 진행되는 시기여서 일부 기업소나 기관들에서 해외 선전용 보여주기 식 집체행사가 진행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마음을 터놓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등 즐기는 모임이 아니라는 말이죠. 만약 이런 모임이 적발된다면 비사회주의로 처벌받게 됩니다

 

하지만 1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년회는 북한만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는 연말 문화이기도 하죠. 북한의 망년회가 공적으로 조직되는 모임이라 해도 정치적 행사라는 분위기가 없는 유일한 행사이죠. 그래서 공장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이 망년회 날을 기다리는데요. 망년회 날은 고기와 쌀밥을 배부르게 먹고, 노래와 춤으로 밤을 지새는 즐거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정은 정부가 사회주의 근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식량배급제를 살려낸다며 대중문화였던 망년회 성격을 식량 낭비 성격으로 정하고, 이를 통제하도록 조치한 것은 북한 주민들의 기초적인 인권을 뺏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예진: 김정일 추모 행사 강화부터 망년회 금지까지 연말 북한 주민들 심정이 영 좋지 않겠네요. 손 기자, 문 기자, 북한 당국의 망년회 금지 조치, 앞으로도 이어질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문성휘: 북한은 체제 불안이 고조되면 늘 주민통제를 강화해 왔습니다. 북한 당국의 망년회 금지 조치도 체제 불안에 따른 주민통제 조치로 이해하면 될 것 같고요.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앞으로 계속 이어진다고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체제 불안이 높으면 주민 통제를 강화하는데, 그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과 피로도가 높아지면 또 주민통제를 일정하게 늦출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북한은 늘 그런 방식으로 주민들을 통제해 왔습니다.

 

손혜민: 지난 12 21일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 14 29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인민반조직운영법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인민반은 주민행정말단조직이죠. 세상에 주민세대를 인민반조직으로 묶어놓고 법으로 통제하겠다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와 연장선으로 시작된 망년회 금지 조치를 분석하면, 이는 단순히 식량 낭비를 통제하는 범위를 벗어나 불안정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주민통제 강도를 높이겠다는 공포통치를 선포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나라의 재정을 농업발전에 투자하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 붓는 당국이 식량난을 운운하며 망년회 통제에 나선 배경은 민심 폭발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김정은 정부가 진심으로 식량난 문제를 걱정한다면 군사위성 발사와 ICBM 발사부터 중단하고, 여기에 지출하는 비용의 일부라도 인민경제 회생에 돌려야 합니다. 2024년에는 국제사회와 외교적 대화에 적극 나서서 민생 해결에 개선이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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