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일고 있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곳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생활 소식 그리고 한인사회 소식 등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토론토에서 김계영 기자가 전합니다.
탈북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너무나도 힘겹고 위험한 탈북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더우기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 탈북을 시도 한다는 것은 더 큰 위험이 따르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어머니와 두 아들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해 지난 2월 캐나다 토론토에 정착한 탈북자, 가명을 쓰는 박서연씨와 그의 어머니, 이희숙씨로 부터 박씨의 가족이 북한을 탈출하게 된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북한 평양시에서 살며 단란했던 박씨 가족은 1968년 큰 시련을 맞게 됩니다. 높은 직분에 있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정치범으로 몰리면서 요덕수용소로 수감되었고 그로 인해 나머지 박씨 가족은 모두 평안남도 양덕군으로 보내졌는데요.
요덕 수용소로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는 알 수조차 없었고 남겨진 박씨의 가족과 그때 당시 두살이였던 박 씨는 그곳에서 정치범의 가족으로 낙인찍혀 힘겨운 삶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마을 주민은 모두 박씨의 가족을 정치범의 가족이라 부르며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 감시와 멸시 그리고 가혹한 차별을 견뎌 내야만 했다고 박씨는 말합니다. 학교에서도 늘 친구들의 손가락질과 놀림을 받아야 했던 박씨는 학교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그때의 심경을 전합니다.
박서연
: 학교때 부터 너무 학교 다니기가 힘들었어요. 애들한테 증오의 대상이지… 그러니까 학교를 막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학교 생활이 지옥이었어요. 태어나면서 부터 계속 ‘정치범 반동의 가족이다’ 이런 식으로…
박씨는 이유없이 증오의 대상이 되어 너무나도 힘겹게 살아가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북한을 탈출 할 수 있기를 어렸을때 부터 간절히 원했습니다.
1990년 중반 부터 시작된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으로 박씨의 가족은 또 한번의 시련을 겪게 되는데요. 식량배급이 끊기도 먹을 것도 제대로 구할 수 없게 되자 박씨의 가족은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것조차 너무나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박씨의 어머니 이희숙씨는 큰딸을 포함해 사위와 손자가 굶주림으로 힘없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때의 상황을 박씨의 어머니 이희숙씨로 부터 들어 봅니다.
이희숙
: 워낙 식량도 없고 허약한데다가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에 대장염까지 걸리니까 뭐 살수가 없으니까 병원에 잠깐 입원을 했었는데… 병원에서도 이제 못 고친다, 집에 데려가라 하니까… 다 죽어가는 것을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내 무릎에서 죽으면서도 그저 밥 소리를 하면서 죽었지…
이렇게 가족을 눈앞에서 떠나 보내야만 했던 박씨 가족은 자신들도 그렇게 굶어 죽을 날 만을 기다렸다고 하는데요. 그런 중에 박씨는 중국에 가면 누구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죽기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 탈북을 결심하고 일흔이 다된 어머니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힘겹게 중국에 도착한 박씨의 가족은 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모르고 배불리 밥을 먹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믿겨 지지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박씨 가족은 중국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것을 곧 깨닫게 됩니다.
극도로 지치고 불안감에 떨며 중국에서 숨어 살아가던 박씨의 가족은 중국을 떠나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찾기 시작하는데요. 다음시간에는 박씨의 가족이 어떻게 캐나다로 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박씨 가족의 캐나다 정착생활을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RFA 자유아시아 방송 김계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