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의 이름과 그들의 정체성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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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이름과 그들의 정체성 탈북민들이 캐나다 한인 2세들과 함께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RFA Photo-장소연

“저의 한국이름은 황기선 입니다. 이제부터 제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지난 5월 25일 캐나다 국영 방송인 CBC의 홈페이지에 실린 한 한국계 기자가 쓴 글의 제목인데요. 3살때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기자는 30여년동안 한국 이름대신 영어 이름을 써온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서 더는 자신의 한국 이름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말해 캐나다 한인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황 씨는 캐나다 북부지역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그곳 원주민들이 영어 이름 대신에 자신의 조상들이 쓰던 이름을 찾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한국 이름을 정식으로 쓰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캐나다에 이민 온 한국 사람 대부분은 영어 이름을 새로 만듭니다. 영어 이름을 쓰는 이유는 새로운 사회에 동화되어 새롭게 그리고 차별을 받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탈북민에게도 많이 나타나는데요.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을 때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이름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한때 북한에서 옥자, 정자 등 여자 이름 뒤에 “자”가 붙은 이름은 다 국가에서 바꾸게 한적이 있는데 현재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도 원래는 이름이 고용자였습니다. 이는 일본에서 살다가 온 귀국자들이 주로 쓰던 이름자 뒷말인데 일본 어투 이름이라고 모조리 고치게 한 것입니다.

그러던 북한 주민들은 탈북민이 되면서 즉 북한을 탈출해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넘는 순간부터 이름을 바꿉니다. 중국에서 자신의 진짜 이름을 쓴다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게도 위험하게 됨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간난신고를(온갖고난) 거쳐 한국에 들어온 때부터 탈북민들은 드디어 자신의 본 이름을 찾게 됩니다. 한 달이나 혹은 몇 달간의 국정원 조사를 거치면서 자신의 이름이나 이력이 소상히 기록되거나 또 다른 증인으로부터 대조가 되어 이름을 숨기거나 바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정원이나 하나원 교육기간을 마치고 나온 탈북민들은 대부분 정식으로 이름을 고치게 되는데요. 이때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주요하게 신변보호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가지고 있던 이름을 계속 쓰는 것이 같은 탈북민들을 만났을 때 혹은 언론에 노출이 되었을 때 북한 쪽에 쉽게 알려져서 가족이나 친척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 지은 이름을 캐나다에 와서 또 다시 바꾸게 됩니다.

우선은 다른 한인들처럼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영어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고 또는 지난 과거를 지우고 싶어서 혹은 이민문제 때문에 등 여러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조용히 북한에 알려지지 않고 살려는 작은 소망이 더 많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중에는 몇 안되기는 하지만 북한에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소중히 간직하고 바꾸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이곳 캐나다에서는 신분증에 써있는 이름보다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아 이를 다행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요즘 캐나다도 한류의 영향으로 많은 캐나다 사람들이 한국문화를 좋아하게 되고 한국 이민자이나 그 2세들도 점점 이렇게 황기선 기자처럼 캐나다에서 자신의 한국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살아가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이름보다 먼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탈북민 이민자들에게는 이 캐나다 땅에서도 태어날 때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산다는 것이 아직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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