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원주민들의 삶과 인권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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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시내 광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북 치는 모습이나 춤추는 모습.
토론토시내 광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북 치는 모습이나 춤추는 모습.
RFA PHOTO/ 장소연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소연기자가 전합니다.

북한사람들에게 아메리카 하면 사실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 입니다. 사실 이곳 캐나다나 아메리카 다른 지역에서는 현재 이곳의 원주민을 북한에 알려져 있는 “인디언”이라고 거의 부르지 않는데요.

14세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이곳이 인도의 서쪽인줄 알고 불러서 생겼다는 “인디언”이라는 명칭은 오류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실제 인도사람들도 좋아하지 않고 또 인종차별의 여지가 있어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추세입니다.

현재 캐나다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통칭은 퍼스트네이션 즉, 선조민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즉 원래의 아메리카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북한이 이렇게 태평양 건너 멀리 있는 인디언에 대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게 된 것은 전형적인 북한의 미국증오 정책 때문인데요.

벌써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아메리카는 인디언의 머리가죽과 해골 위에 세워졌다고 아이들에게 교육합니다. 북한사람들에게 아메리카 인디언은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든든한 밑받침자료로 많이 이용되는 데요.

사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메리카의 지나온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 번영을 누리고 있는 캐나다나 미국사회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자가성찰을 요구하는 교훈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캐나다 원주민은 유럽인들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캐나다 전 지역에 분포해서 살고 있었는데요. 이들은 캐나다 해안에서 살면서 어업에 의지해 살다가 음식과 옷과 도구를 위해 버팔로, 즉 들소 떼를 쫓아 오는 동안 캐나다 대평원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유럽인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캐나다 원주민들과 협정, 혹은 조약을 맺었는데 이런 조약으로 해서 거의 헐값으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살고 있는 땅의 권리를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선진기술을 가지고 있는 백인들은 점점 이 땅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고 원주민들에 대해 더는 경쟁상대나 교역상대가 아닌 동화해야 할 상대로 여기게 됩니다.

1883년부터 캐나다정부는 원주민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전국 곳곳에 기숙학교를 세워 원주민 어린이들을 수용해 백인교육을 강요했습니다.

처음부터 기숙학교가 원주민들을 학대하기 위해 세워진 것은 아니었는데요. 원주민들에게 읽기 쓰기, 산수 등 기본 학습능력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백인우월주의는 철저히 원주민 문화를 무시했고 심지어 그들의 언어, 가정까지도 파괴해버렸습니다. 백인문화를 잘 따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구타와 학대가 뒤따랐습니다.

아이들은 문명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 문화, 언어, 정체성을 버리는 훈련을 받아야 했고요, 1996년 사회적 여론에 밀려 기숙학교가 폐교할 때 까지 70%가 넘은 원주민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질병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하거나 정신적 불구로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2008년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원주민동화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는데요. 지난날의 잘못된 캐나다정부의 원주민정책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서 수십억 달러를 지원 해 원주 민들의 생활, 의료 주거 등에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정부의 정책과 더불어 원주민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이 캐나다 전 사회적으로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데요. 다음 시간에 캐나다 원주민들의 삶과 인권, 그리고 문제점을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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