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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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서고 이곳 캐나다는 많이 추워졌습니다. 이번시간에는 이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겨울이 되어 북한에 대해 생각할 때 제일 많이 걱정스러운 것이 “사회적 약자”입니다. 북한에는 없는 말인데 이곳 캐나다에서는 “사회적 약자”라고 하면 여성, 노인, 아동청소년, 장애인 등으로 사회적 약자의 정의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즉 한마디로 힘이나 세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그런 집단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북한에 있을 때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하면 힘쎈 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 하고 약자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으면서 사는 세상이라고 배웠습니다. “자본주의 착취”란 말은 북한과 대비해서 항상 공평한 사회를 주장하는 북한이 내세우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폐점이죠.

하지만 북한을 떠나 이곳 바깥세상에 살면서 사실 착취의 개념은 많이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주 오래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있는데 바로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서는 침몰하는 배에서 남자들이 여성과 어린이들을 가장 먼저 작은 배에 태워 보내는 장면있습니다. 당시 타이타닉의 스미스 선장은 어린이, 여성, 남성 순으로 배에서 탈출 시키도록 했다고 합니다.

영화속의 한장명이 아니어도 여기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볼수 있는 것이 바로 휠체어 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 휠체어는 정말 많이 볼 수 없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거의 본 기억이 없었는데요. 저의 아버지 친구도 전쟁시기 다리를 잃어 불구가 되었는데도, 지팽이 하나밖에 없어 항상 집에서 그냥 창밖을 내다보며 지내곤 했습니다.

딱 한번 휠체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화에서 였는데요. “봄날의 눈석이”라는 영화에서 재일교포이며 장애인인 주인공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휠체어를 타고 평양을 방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 휠체어가 이곳에서는 항상 어디가나 볼수 있습니다. 또 종류도 다양해 전동휠체어, 수동 휠체어 또 크기가 아주 작아 거의 불편 없이 어디로 다닐 수 있게 만든 소형 휠체어 등 종류도 넘넘 다양합니다. 또 이곳 캐나다에는 문을 넘을 때 턱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문지방 같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듯 한데요.

장애가 없이 잘 걸어다는 사람들은 이를 잘 인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다리가 아픈 저의 어머니가 오셨을 때 휠체어로 여기저기를 모시고 다니면서 정말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휠체어가 어디나 다닐 수 있게 문턱이 없는 것입니다.

아파트 현관에도 집안에도 모두 평평하게 되어 있어 어디나 편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특히 버스에 휠체어가 탈때에는 버스의 턱을 낮추어주는 자동장치가 있어서 휠체어가 잘 오를 수 있도록 턱을 바닥까지 낮추어 줍니다.

이때 사람들은 휠체어가 먼저 오르도록 다 비켜서서 기다려 주는데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버스나 기차 또 대도시이던 깊은 산골이든 어디나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지난 여름 한국을 다녀왔는데요. 캐나다에서 지내다 보니 한국도 아직 길이나 아파트 현관에 턱이 있는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휠체어를 몰거나 타고 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 입니다.

한국은 저상 버스라고 장애인들을 위한 버스가 있는데 다 있는 것은 아니고 보통 버스가 오고는 뒤이어 한번씩 중간중간에 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은 쉽지않습니다. 그런데 북한을 말하라면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정말 장애인들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요. 이제 보니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도 많은데 오늘은 시간이 훌쩍 가버렸네요. 다음에 계속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