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무너진 무상치료제도, 캐나다의 무상치료제도(1)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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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옥류아동병원 간호원의 모습.
북한 옥류아동병원 간호원의 모습.
사진-AP 제공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바로 건강입니다.   의료문제는 항상 국민들의 첫번째 관심사였고 수많은 정치가들의 정치공약으로 번번히 등장하지만 지금도 지구상에서 국민들의 의료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나라는 없습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지만 모든 국민들에게 실제로 무상치료제도를 실시한 나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캐나다 입니다.

사실 무상치료제도라는 말은 북한주민들에게 가장 익숙합니다.

60년대부터 시작해  북한은 인민학교 교과서에서 부터 중앙텔레비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무상치료제를 실시했다고 선전하고 있었기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시기 유격근거지와 해방지구에서 병원을 세우고 유격구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무상치료를 실시한 것이 그 첫 시작이며  1945년 해방이후 북한의 헌법 기초가 되는 20개조 정강에서 첫 무료보건에 대한 내용을 넣었다고 강조합니다.

실제 북한은 1947년부터 노동자 사무원과 그 부양가족들에게 국가사회보험에 따른 무상치료제를 실시했는데 이때 북한의 간부급이나 국가공무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보았습니다.

한국전쟁당시인 1952년 북한은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실시할데 대하여”라는 내각결정을 채택하는 데요.

1953년 1월 1일부터 “전반적무상치료제”의 실시를 선포합니다.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후 한동한 전후복구건설로 숨을 돌린 북한은 1960년에 이르러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 7차 대회에서 기존에 실시되던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로 발전시킬데 대한 법령”을 채택합니다.

이것만 보면 북한이 얼마나 전국민의 무상치료제에 대해 관심을 돌리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보입니다. 실제 북한이 초기에 내세우고 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건설에 부합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전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이상향을 실현하는데 보건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첫번째 조건 이었기때문입니다.

사실 북한이 가장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던 60년 70년대에 북한의 무상치료 제도는 비교적 운영이 제대로 된 역사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각 군, 리 단위에 진료소 병원을 설립하고 각 시, 군 병원마다 산부인과와 소아과 병동을 설치했으며 도시부터 농촌에 이르기까지 의사담당구역제를 실시했습니다.

실제로 의사는 담당구역을 다니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봤으며 당시 의사들이 들고 다니는 왕진가방이 “인민들을 위한 무상치료”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각 도에 의학대학과 의학전문학교를 설치하고 제약공장 의료기구공장, 등을 지역마다 설치해 무상치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북한은 헌법에서 북한의 의료정책은 “의사담당구역제”와 “예방의학제도”를 강화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북한은 주민들에게 그나마 월급을  정상적으로 주던 시기에도 사회보장비라는 명목으로 월급의 1%를 공제하고 매달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10%를 공제했습니다.

무상치료제도가 그나마 잘 운영된다고 하던 70년대 80년대에도 북한에서 의사들에게 개별적으로 뇌물을 주는 행위는 성행했고 큰 병원에는 간부들만을 위한 “진료과”가 따로 존재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 북한의 경제가 악화되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북한의 무상치료제도는 말그대로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졌는데요.

국가에서 의사들에게도 식량과 월급을 주지 못하게 되자 의사들은 환자들에게서 대신 뇌물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는데요, 환자들은 약품명목으로 사탕가루, 항셍제 등 각종 의약품을 장마당에서 사서 의사에게 바치고 의사들은 환자들이 바친 약품중 나머지는 장마당에 되팔아 사는 기이한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마취제가 없이 수술을 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병원에 입원하면 부식물부터 소요되는 일체를 환자 가족이 사서 가져가야 합니다.

맥주병을 링게르 병으로 쓰고 소독은 다시 삶아서 쓰는 것이 현재 북한병원의 실상인데요.

결국 현재 북한주민들이 가장 의지하는 것은 국가가 이름한  “무상치료제도”보다  민간요법입니다.

다음시간에는 캐나다가 어떻게 실질적인 무상치료제도를 완성하고 운영해나가는 지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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