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심리상담]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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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분수대에서 한 모녀가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
사진은 서울 광화문 분수대에서 한 모녀가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에서 가난을 못 견디고 탈북한 나래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지금은 남한에서 엄마, 동생과 함께 먹고 살만 하지만 엄마의 또 다른 기대가 나래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과 함께 탈북 대학생 나래와 수연이를 만났습니다.

김나래(가명): 제가 7살 때부터 밥을 하고 불을 때고 그랬어요. 다른 집 엄마들이 부러웠죠. 그 때부터 그런 것들이 많이 쌓여있었어요. 지금 엄마한테 못 받은 사랑 같은 걸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지만, 또 이해는 하지만 아직도 엄마를 챙겨야 한다는 게 힘든 거죠.

<찾아가는 심리상담, 전진용 선생과 함께 탈북 학생들이 평소 좀처럼 말하기 어려웠던 마음 속 이야기를 터놓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대학생 나래는 북한에 있을 때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하며 묵묵히 맏이 노릇을 했습니다. 지금은 몸이 편찮으신 엄마를 돌봐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어 마음속 얘기를 엄마와 나누기 힘들어 했는데요. 수연이는 자신에게 기대치가 높은 엄마와 대화하다 부딪치기 일쑤여서 상담을 받으러 가보자고 했지만 엄마는 펄쩍 뛰었답니다.>

이수연: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요. 엄마를 정신병 환자로 아느냐는 거죠. 그래서 말도 못 꺼내요. 엄마의 상처를 알지만 제 아픔도 줄어들지 않는 거예요.

이예진: 우리 친구들 고민들이 비슷하네요. 과거 엄마의 삶 자체가 힘들었으니까요.

전진용: 남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엄마가 아팠거나 형제가 많은 아이들이 자라면 비슷한 것 같아요. 엄마도 돌봐야 하고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못 하는 거죠. 엄마도 알고는 계실 거예요. 표현이 미숙한 거죠. 어른들의 문화가 원래 좀 그렇잖아요. 표현을 잘 못하는데 요즘 여자들은 엄마와 같이 공연을 본다든지 옷을 사러 다닌다든지 하지 않나요?

김나래: 전혀 없어요.

이수연: 저는 시도해봤어요. 그 땐 정말 좋았어요. 엄마랑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엄마도 ‘네가 어쩐 일로 이렇게 효도를 하느냐’고 좋아하셨어요. 저는 효도를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워낙 무뚝뚝 하시니까요.

전진용: 엄마도 마찬가지로 알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게 있거든요. 한국 정서상 표현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편이잖아요.

김나래: 저희 엄마는 아프시니까 자식들의 관심을 더 받고 싶어 하시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엄마의 관심을 받기도 전에 제가 관심을 줘야 하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엄마는 분명히 어려서 사랑을 줬다는데 제가 기억을 못 하는 거죠. 이제는 제가 엄마를 챙겨줘야 하는 입장이 됐지만 저도 바쁘니까 엄마를 돌봐줄 경황도 안 되고 더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애정표현으로까지 가진 않는 거죠. 동생은 엄마한테 신경을 많이 쓰는데 맏이는 왜 신경을 안 쓰냐고도 하세요. 마음은 무거운데 잘 안 되는 게 있어요.

전진용: 삼형제라고 했죠? 둘째, 셋째는 살갑게 할 수 있지만 맏이는 엄마를 챙기는 역할이었으니까 바뀌기 쉽지 않을 거예요.

이예진: 책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도 힘들어 하는 거잖아요.

전진용: 그렇죠. 기대라는 게 그렇거든요. 남한에서도 엄마가 아프거나 어려서부터 어른스러운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그런 성향을 갖기도 하고 엄마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아이에게 이루게 할 때도 힘들어하거든요. 화가가 되려했던 엄마가 아이에게 ‘내가 못한 걸 네가 해라’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아이는 껍데기 인생이 되는 거죠. 아이에게 미술도 가르치고 이것, 저것 시키다보면 아이는 표현을 못 하거든요. 엄마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다보면 표현을 더 못하고 겉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예진: 엄마를 이해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드는 생각은 사실 다르잖아요.

전진용: 역할이 바뀌는 거죠.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그 역할이 바뀌게 되면 아이에게 큰 혼란이 오는 거죠. 엄마가 만든 모습대로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도 엄마에게 의지하기보다 엄마를 걱정하게 되고요. 그러다보면 엄마에게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기 어렵게 되는 거죠.

이예진: 이제까지의 엄마와 자신의 역할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커서는 이제 부담스럽다는 거잖아요. 힘들기도 하고요.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전진용: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하고요. 금방 바뀌진 않을 거예요.

김나래: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의 반응이 어떨지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굳이 말을 안 하게 되는 거죠. 엄마 세대와 사는 게 다르니까 대화가 더 안 되더라고요. 사회 활동을 하신 엄마라면 대화가 되는데 그렇지 않고 엄마도 아프시니까 속 얘기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차라리 인터넷의 도움을 받는 거죠.

이수연: 그래서 대화가 없어지는 거죠.

이예진: 하지만 대화가 이제까지 없었고 안 통하더라도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전진용: 네. 다시 시작하는 상태로 가야죠.

이수연: 서운하다는 것도 말할 필요가 있죠?

전진용: 서운하지만 잘 지낼 수 있으면 괜찮지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서운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거잖아요.

이수연: 네.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전진용: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천천히 접근하는 게 좋죠.

김나래: 저희 엄마는 힘들게 북한에서 우리를 데려왔기 때문에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거죠. 하나의 개체로 보는 게 아니라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잘 되라는 거지만 강요를 하세요. 여기에 와서 잘 키우고 싶었는데 잘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밖에서 제가 칭찬을 듣고 오고 잘 한다 소릴 들어도 집에 오면 엄마는 ‘네가 뭘 한다고’ 이러시면 ‘이건 뭐지’ 하면서 한숨이 나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엄마는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눈물)

<스튜디오>

이예진: 아까 한 친구가 엄마와 관계가 썩 좋지 않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잖아요. 눈물의 의미는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답답함도 표현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전진용: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도 있겠고, 그동안 자신이 너무 틀에 매여 살았던 거죠. 나는 힘든데 외부에 말 못하고, 어머니에게도 말 못하고,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그것도 어렵고 그렇다보니까 결국 안에서 쌓인 게 슬픈 감정으로 터진 거죠.

이예진: 눈물을 흘릴 정도면 너무 많이 쌓인 게 아닐까요?

전진용: 네. 어쩌면 풀어가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예진: 북한에서 힘들었던 일까지 마음속에 응어리로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쉽게 풀릴 일은 아니겠지만 꼭 풀어야 할 일이겠죠. 모처럼 마음 속 얘기를 털어놓았던 탈북 대학생들과 만나본 찾아가는 심리 상담, 다음 이 시간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