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火葬)된 친구 찾기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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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락공원 납골당을 찾은 한 시민.
부산 영락공원 납골당을 찾은 한 시민.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모두 사람들이 많지 않으면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데요. 가족을 고향에 두고 온 탈북자들은 그런 마음이 더 클 겁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한국에서 장례를 치른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가족이 많지 않은 탈북자들의 장례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요. 제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탈북자 분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묏자리는 혹시 있나요?

마순희: 탈북자들을 위한 납골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서울시만 하더라도 사망하면 납골당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이 됩니다. 남북하나재단에서는 무연고자, 즉 연고자가 없는 분들의 납골당 안치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이예진: 가족이 따로 없는 분들에게는 이런 혜택을 주는군요.

마순희: 네. 무연고 북한이탈주민이 사망하면 장례, 화장, 납골당까지 지원 가능합니다. 무연고 사망자 처리는 관련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집행이 우선이고 거주지 관할 기관인 구청이나 주민 센터 등에서 사전에 공문으로 협조를 하면 검토한 후에 당해 연도 예산 범위 내에서 재단에서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을 지원합니다. 제가 근무할 때에는 시립 벽제 승화원에 안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지금도 이용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승화원에서는 무연고자가 아니더라도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거나 혹은 자녀들이 서울에 거주하더라도 싼 가격으로 납골당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어서 많은 북한이탈주민들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한국에선 사실 유교적인 문화가 점점 줄면서 매장보다는 화장이나 수목장 등 매장 문화도 다양해지고 있거든요. 탈북자 분들 중에 그런 자세한 것까지 생각해본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마순희: 물론 탈북민들은 대개 북한의 매장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한에는 북한처럼 아무 곳에나 산소를 쓸 수 없거든요. 우선 모든 땅들이 다 소유주가 있기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묻힐 땅이라고 하면서 땅을 사놓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합니다만 거의 한국의 화장 문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언니는 간암으로 앓는 딸을 고쳐보려고 딸을 데리고 탈북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병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졌기에 더 손을 쓸 수 없이 사망했습니다. 화장하고 납골당에 유골함을 보관해놓고 한 주일이 멀다하게 찾아가기도 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지금은 자신의 집에 딸의 유골함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살고 계시기는 하지만 어쩌다 방문해보면 책상위에 딸의 유골함을 보관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예진: 집에 유골함을 보관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마순희: 그렇죠. 저희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분들 중에 돌아가신 분들도 여러 명 되는데 다들 추모원에 유골함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추석이나 한식, 그리고 생일 같은 때에 생각나면 들러보기도 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잘 알고 있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캐나다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10년 전에 사망한 친구의 유골함이 제주도의 납골당에 보관되어 있는데 한 번 가봐 줄 수 없는지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제주도의 하나센터나 경찰서든가 아니면 지인을 통해서라도 찾아봐 줄 수 없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84년생이라는데 제주도에 거주지를 받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10년 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혼자 한국에 왔었기에 친구들이 모여서 장례식을 치르기는 했는데 친구들이 모두 외국에 가 있다 보니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이번 추석에는 꼭 찾아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그 지인에게 하나센터나 경찰서에 찾아봐 달라고 하지 말고 그 친구가 살았다는 지역에서 가까운 추모원을 찾아서 연락처가 있을 것이니까 거기에 고인의 이름을 대고 알아보면 더 쉽지 않겠느냐고 알려주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변의 추모원을 찾아서 연락을 했더니 쉽게 어느 곳에 안치되어 있는지를 찾게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그 지인이랑 저도 제주도 회의에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기에 본 행사가 끝나면 함께 추모원에 들러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예진: 대신 가주려고 하시는군요.

마순희: 네. 친구들이 함께 찍은 사진도 보내준다고 하니 납골당에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이예진: 사실 한국의 묘지 면적은 국토의 1%인 10만ha로, 한국 전역 주택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데요. 최근에는 자녀들에게 부담주지 않겠다는 이들이 늘면서 자자손손 관리해야 하는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분위기죠. 지난 2015년에는 화장한 비율이 80%를 넘었다고 합니다. 10명 중 8명은 화장을 했다는 뜻인데요. 관리비용도 저렴하지만 요즘엔 추모원이라는 이름으로 아늑하게 잘 꾸며놔서 좋더라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추억거리가 되는 사진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도 갖다놓고 할 수 있고 말이죠.

마순희: 맞아요. 비록 젊은 친구들이었지만 한국을 찾아오면서 생사를 함께 하던 친구에 대한 의리를 10년 넘게 간직하고 있는 그 친구들의 의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습니다.

이예진: 어떻게든 함께하려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지금은 명절 때마다 고향 땅에 묻히신 조상 묘에 찾아가지 못하는 죄스러움이 있다는 탈북자 분들이 많으신데요.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한국 땅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또 다른 고향이 되는 거니까 먼 후손들은 그런 죄스러움이 줄어들겠죠.

마순희: 그렇겠지요. 아마도 손등이 다르고 손바닥이 다르다는 것처럼 실제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북한에 두고 온 저희들 세대보다 어린 시절의 꿈으로 간직되어 있는 우리 자식들 세대가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는 차이가 있겠지요. 거기에 우리 손자 손녀들 경우에는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상징적으로 그냥 통일을 이루어야 할 한 민족, 아빠, 엄마의 고향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분단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분열의 고통이 더 이상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도 조금씩 식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도 눈 감으면 떠오르는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마을 앞산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조상님들의 묘소에 눈물로 술을 부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예진: 탈북자들의 마음이 다 그렇겠죠. 북한에서와는 다른 한국에서의 장례문화, 그리고 더 늘고 있는 납골당이 어쩌면 많은 시간이 지나서도, 또 오래 떨어져 있어도 사후까지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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