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북한군, 포로되면 반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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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러시아에 파병군으로 갔다가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 병사들의 소식이 매일 들려오고 있어요. 탈북민의 입장으로서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 병사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을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그려지거든요.

기자: 1월 11일 우크라이나군 측에서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군인 2명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전했죠. 이순희 씨께서는 그럼 남한 뉴스 채널을 통해 이 기사를 접하신 건가요?

이순희: 네, 맞아요. 남한에서는 그래도 한 민족이라며 생포된 북한 군인들, 현장에서 사망한 북한 군인들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주고 있거든요. 제가 처음 그 북한 군인들 소식을 접한 건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였어요.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러시아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해서 싸우던 북한 병사 두 명이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혀서 심문을 받는 장면이었는데요. 한 명은 전투 중에 얼굴을 다쳐 턱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손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더라고요. 우크라이나군 쪽에서 크게 겁박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도 공포에 질려서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나서 다 볼 수도 없었어요. 심지어 러시아군 편으로 싸우는데 통역관도 없어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못 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우크라이나군 쪽에서 심문할 때는 통역관으로 국정원과 협력하는 한국인 통역사가 있었더라고요.

김정은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언급하면서 남한을 멀리하려는데도 불구하고 다행히 남한에서는 북한 정부는 미울지언정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어요. 특히 전쟁에 파병된 어린 북한 군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기자: 이번에 생포된 북한 군인들은 각각 1999년생과 2005년 생으로 굉장히 젊은 청년들이었죠. 각각 2016년, 2021년부터 군에서 복무했다고 하는데요. 남한 청년이었다면 약 1년 6개월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학업 생활 혹은 사회 초년생으로 사회활동을 할 나이죠?

이순희: 네, 그럼요. 남한에서 20살, 26살이면 대학에 다니던가 직장에 취업해서 젊음을 만끽할 나이죠. 북한에서는 새파랗게 젊은이들을 데려가서 5년에서 10년이 넘게 군복무를 시켜요. 젊은 청춘 다 보내는 거죠. 남한에서는 1년 반 군사훈련을 시키면서도 밥도 잘 챙겨주고 월급도 주는데 북한에서는 나라에 헌신한다는 명분으로 자기 인생을 거의 갈아 넣는 거예요. 그런데 이 와중에 영문도 모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에 끌려갔을 어린 병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죠.

기자: 그런데 특히 그 병사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신 이유가 있었다고요?

이순희: 네, 순간 그 북한 병사들의 얼굴을 보는데 둘 중 한 명이 제 동생과 비슷하게 생긴 거예요. 그래서 그 사진을 봤을 때 가슴이 막 떨렸어요. 제 동생이 20살쯤 모습과 비슷한 거예요. 그리고 제가 북한 살 때 그 억양과 말씨를 그대로 쓰는 거 보니 '북한 군인이 맞구나'하며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많이 여의고 겁에 질린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히더라고요.

기자: 정작 북한군 병사의 부모님들은 파병 소식을 모른다고 병사들이 증언했는데요. 오히려 북한보다 남한에서 파병 북한군들의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소식이 가장 눈에 띄었나요?

이순희: 생포된 북한 군인들뿐 아니라 북한군 시신에서 '조국에 대한 노래' 등 애국심을 고취하는 내용이 담긴 수첩이 발견됐대요. 그 내용까지도 공개됐는데요. 빽빽하게 적힌 생활총화 내용이 담겨있었어요. 제가 북한에서 군에 복무하면서 생활총화 할 때 방법과 형식이 너무도 판박이여서 어이가 없었어요. 4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거죠. 심지어 한 병사는 우크라이나군이 그를 붙잡고 차로 데려가려고 할 때 갑자기 콘크리트 전봇대로 막 달려들어서 머리를 부딪혔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죽으려는 듯이요. 이것도 제가 군에 복무하던 시절과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조선인민군 규정에는 "절대로 적에게 포로가 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저도 그렇게 교육받았거든요. "위대한 장군님을 위하여 한목숨 바쳐 싸우자", "총폭탄", "자폭 정신"이 군인들에게 주입하는 사상교육이에요. 생포된 북한 병사들은 이대로 잡혀가면 본인과 가족이 무사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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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남한 정부에서는 "귀순 요청을 하면 우크라이나 측과 협의하겠다"며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두명을 남한으로 송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번에 송환되면 6∙25 이후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다만 우크라이나 측에서 전략적 활용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는 만큼 귀순이 쉽지는 않을 거로 예상되고 또 북한군 병사들도 귀순 의사를 밝히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특별히 북한 군인들이 남한에 귀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순희: 네, 맞아요. 예전에 한국 전쟁에서 남한군에게 포로가 됐다가 북한으로 돌아온 조선인민군 군인 중 심지어 몇 달 동안 잡혀있던 사람들까지도 생에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 대접도 못 받은 분들이 많았어요. 포로 군의 자식들도 간부나 당원도 될 수 없었고, 평생 꼬리표처럼 (포로가 됐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겼어요. 남한에서는 그런 분들을 "참전용사"라고 부르면서 나라에서 혜택도 주고 대우를 해주려고 하는 거랑 전혀 다르죠. 그걸 보면서 자랐을 테니 포로가 된 순간부터 참담했을 거예요.

그러니 저는 그런 대우받을 바에 남한으로 와서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생포된 북한 군인이) 우크라이나 군인들한테 “남한 로맨스 드라마를 볼 수 있는가?”를 물어보더래요. 이걸 보고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어디로 갈 것인가 물어보면 남한으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 두 명의 북한 군인들의 입장은 얼마나 난처하겠어요? 남한으로 가면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가 되고, 그렇다고 북한으로 돌아가도 조선인민군 규정을 어기고 포로가 됐으니 그것 역시 처벌받을 일이거든요. 또 남한으로 혼자 가면 북한에 남은 가족들도 걱정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거죠. 아마 그 두 명은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 거예요.

그래도 남한에 오게 되면 남한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요. 정착할 때까지 생활비도 지원해 주고 필요한 생활 정보도 주고, 교육도 해주고, 원하는 대학 진학도 도와주고요. 북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자유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이 망명을 원하기만 한다면, 꼭 남한이 아니더라도 절대로 북한에 돌아가지 말고요. 북한에 가면 개돼지보다 못한 굴욕을 당할 건데 (다른 나라에서는) 북한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꽃다운 나이의 20대 청춘들이 이제라도 광명을 찾고 새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생포된 파병 북한군 병사들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