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타임머신 타고 온 남한 생활
2024.02.09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가사 부담에서 벗어난 남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해요. 사실 완전히 가사 부담에서 벗어난 건 아니지만 기술 발전으로 많이 편해진 거죠. 북한에서도 1970년대에 김일성 주석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적극 장려하면서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해야 한다며 여러 정책을 내놓은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정책의 일환으로 집마다 수도를 설치해서 더 이상 물동이를 이고 다니지 않게 했어요. 그런데 최근 북한 풍경을 담은 영상을 보니까 여자들이 두만강∙압록강 얼음을 깨고, 물동이에 물을 길어서 이고 다니고,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리는 모습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기자: 남한에서 가사일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느낀 부분은 어디였나요?
이순희: 우선 가장 중요한 밥하는 문제인데요. 북한에서는 아직도 많은 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가마솥에 쌀을 안쳐 밥을 하잖아요. 그러니 그 땔감문제가 식량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부담이죠. 그런데 남한에 와서 전기밥솥을 써보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북한에도 일부 중국에서 들여온 전기밥솥이 있어요. 그런데 있으면 뭐 해요, 전기가 없는데. 또 아궁이에 불을 때려면 냄새와 먼지 때문에 한바탕 청소해야 했는데, 남한에서는 밥 짓는 것을 가스 아니면 전기로 하기 때문에 먼지와 냄새날 일이 없어요. 꼭 3달에 한 번씩 검침원이 가스 시설도 점검하기 때문에 사고 날 일도 없어요.
기자: 남한에서는 가스로 보일러도 피우고,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요리도 하는 등 가스는 우리 생활에 있어 필수 자원이죠.
이순희: 맞아요. 가스로 방바닥도 온돌처럼 따뜻하게 할 수 있고 물도 데워서 사시사철 온수로 목욕도 할 수 있게 해줘요. 특히 매일 해 먹는 요리는 가스레인지가 필수인데요. 그런데 전 인덕션이라고 전기로 된 기계를 이용해요. 인덕션의 버튼만 누르면 화력의 세기와 크기를 필요한 만큼 조절할 수 있어요. 북한에서는 보온이나 밥할 때 필요한 석탄이나 땔감을 살 돈이 없어서 잠깐 밥할 때만 불을 피웠다가 끄곤 했어요. 제가 살던 북쪽 지방은 워낙 추워서 겨울에는 손발이 다 부르터져 피가 툭툭 터지곤 했어요. 이곳에서는 손이 트기는커녕 손 피부가 거칠어질까 봐 크림을 듬뿍 바르잖아요.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면 이북 고향 생각이 많이 나요. 또 한편으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집안일을 하면서 아기를 키워야 하는 고향 사람들 걱정도 되죠. 북한에서 한창 여성들 사회 진출에 관심이 많았을 때는 회사에 탁아소도 만들어주곤 했어요. 탁아소에 아이가 한 명이라도 탁아소가 존재했거든요. 그런데 탁아소도 지금 와서는 다 없어졌다고 해요. 그런 것에 비하면 여기 남한은 아기를 낳고도 직장생활 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죠.
기자: 사실 요즘 남한에서도 젊은 부부가 아이를 키우지 않고 둘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딩크족’이라는 말도 생겼는데요.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이유입니다. 아이를 키울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아이 낳기를 포기하겠다는 건데요. ‘딩크족’이라는 말도 들어보셨나요?
이순희: (딩크족이라는 말을) 당연히 들어봤죠. 옛날에는 결혼하면 무조건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혼자 살든지, 부부끼리만 살든지 다양한 선택지에 눈을 뜨더라고요. 남한은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나라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거나 혹은 10명을 낳는 것도 본인의 선택에 달렸어요. 딩크족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개인의 선택이니 존중하죠. 다만 국가에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 다양한 장려 정책을 펼치니까 그 덕에 아이를 키우려는 부부들에게는 훨씬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되긴 하는 것 같아요.
기자: 특히 어떤 점들이 아이를 양육하기에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셨나요?
이순희: 우선 곳곳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탁아소가 있어서 직장 혹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거예요. 또 인터넷과 정보공유 문화가 워낙 잘 발달해있으니까 ‘1번 어린이집은 아이를 어떻게 놀아주나?’, ‘2번 어린이집은 아이한테 어떤 음식을 제공해 주나’ 다 검색해 보고 선택할 수 있잖아요. 국가에서도 각 기업의 직원들에게 탁아소를 제공해 주도록 지원해 주기도 하고요. 심지어는 양쪽 부모가 모두 직장에 다녀서 아이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면 국가에서 직접 아이를 돌봐주는 정책도 있어요. 국가에서 직접 사람이 나와 아이를 돌봐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하고 놀랐다니까요.
기자: 남한에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정말 많은 정책을 시행 중인데요. 그럼 기술 발전으로 인해 양육이 편해졌다고 느낀 부분은 뭐였나요?
이순희: 신기했던 점은 24시간 아이 걱정뿐인 부모들을 위해 방에 CCTV를 설치해서 살펴볼 수 있다는 거예요. 신생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는데, 또 안 울어도 다른 방에서 재우려면 걱정이 되잖아요. 그렇다고 아이의 독립을 위해서는 계속 옆에 두고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런 부모들은 아기방에 CCTV를 설치해서 혹여 걱정되면 지능형손전화기에 그 카메라와 연동된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서 아기가 지금 잘 자고 있는지, 잘 놀고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요. 이런 것들이 기술 발전 덕으로 양육이 조금이나 편해진 부분인 것 같아요. 유모차도 다양한 종류가 있어서 내리막길에서 부모가 유모차를 놓치더라도 자동으로 멈추는 기능도 있더라고요.
기자: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양하고 기발한 살림 기구들이 참 많은데요. 과일이나 음식 건조기나 고기용 전기 그릴, 또 목욕하고 나와서 서있기만 하면 바람이 나와 자동으로 온몸을 말려주는 기계 등 종류가 많은데요. 그럼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는 가전제품은 어떤 건가요?
이순희: (제가 유용하게 쓰는 제품은) 정말 많죠. 옷을 자동으로 빨래해 주는 세탁기와 옷을 건조까지 해주는 건조기도 있어요. 특히, 이불 빨래하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이불 3~4개 빨래하려면 하루 종일 걸렸는데 세탁기랑 건조기만 있으면 서너 시간이면 끝나요. 제가 할 일은 빨랫감을 모아서 세제 넣고 버튼만 누르는 게 다예요. 또 최근에 가장 유용하게 잘 쓰는 가전제품은 에어프라이어에요. 남한에서 공기로 튀김 요리를 할 수 있는 에어프라이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거든요. 원래 튀김 요리는 기름을 한가득 넣어서 튀겨먹느라 사용하고 남은 기름이 아깝고 처치 곤란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에어프라이어는 치킨, 튀김, 고구마, 생선, 육류 요리까지 기름 없이도 가능해요. 조금 더 바삭하게 먹고 싶으면 겉에만 살짝 기름을 발라주면 되고요. 온도와 시간을 맞춰두면 저절로 요리돼서 나오니 참 편하죠.
기자: 그러면 이처럼 다양한 가전제품으로 인해 삶이 편해지니 여가시간이 늘게 되잖아요. 그런 여가시간에는 주로 어떤 걸 하면서 보내나요?
이순희: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또 방과 거실에는 로봇청소기에 청소시켜 놓고 밖에 나가서 장을 보기도 하고요. 친구들과 집 앞 커피숍에 가서 수다를 떨기도 해요. 또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기도 하고요. 다양한 기술 발전 덕에 여유 시간이 늘어나니까 무엇보다 저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시간이 늘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다양한 가전제품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