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북 금지 꽃, 남쪽에선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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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요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지난주에 벚꽃 구경을 다녀왔어요. 해마다 3~4월이 되면 벚꽃이 만개해서 전국 곳곳이 환상적인 꽃 향연으로 가득 차죠. 제가 근무하는 회사 대로변에도 벚꽃이 만개했다가 바람에 날려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기자: 남한의 올해 벚꽃은 좀 늦게 폈다고 들었어요. 얼마나 늦은 거죠?

이순희: 네, 맞아요. 3월 말쯤이면 벚꽃이 하나둘 피었던 것 같은데 올해에는 4월 돼서야 폈더라고요. 작년보다 7일 정도 늦었다고 해요. 그래서 서울, 김해, 강원도 등에서 벚꽃축제를 열었는데 축제 1일 차에는 벚꽃이 하나도 피지 않았다네요. 다행히 꽃이 피기 시작해서 축제 기간을 조금 연장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다들 벚꽃 구경 많이 다녀왔어요.

기자: 벚꽃에도 종류가 많은데요. 진한 분홍색부터 거의 하얀색을 띨 정도로 옅은 색의 꽃까지 있죠. 색깔에 상관없이 벚꽃이 한 번에 가득 폈을 때 정말 장관이었겠어요.

이순희: 환상적이죠.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나무 전체가 온통 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또 그 나무가 길을 따라 쭉 이어져 있으니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왔어요.

기자: 북한에서는 벚꽃은 일본의 꽃이라고 베어버리는 등 금기시하지 않나요?

이순희: 네, 그렇죠. 북한에서는 "벚꽃은 사쿠라꽃 다시 말해 일본 국화"라며 배척하고 있어요. 더군다나 북한 사람들은 반일 감정이 강하잖아요. 벚꽃이 새겨진 그림이나 자수도 볼 수 없고요. 제가 살던 고향에서 김일성∙김정일 사적지 옆에 큰 벚나무가 하나 있었어요. 딱 한 그루가 서있었는데요. 하루는 기니까 벚꽃이 한창 피는 나무를 베는 거예요. 제가 "나무를 왜 베느냐"고 물으니, 그분이 "사쿠라는 일본 꽃이기 때문에 벤다"더라고요. '그래서 베는구나!' 이해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던 기억이 나요.

기자: 일제 강점기에 벚꽃이 일본영토 확장의 상징으로 여겨져 이를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있죠. 그러나 "벚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에 와서는 벚꽃 자체를 미워하는 여론은 줄어든 것 같아요. 그럼 벚꽃 구경은 어떤 경로로 가게 되신 건가요?

이순희: 제가 참여하고 있는 자원봉사단체 사람들끼리 다 같이 갔어요. 북한에서 온 탈북민들이 모여 자원봉사 단체를 조직했는데, 조직한 지도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복지관으로 자원봉사를 나가서 어르신들의 무료 급식을 돕기도 하지만, 봉사가 없는 날에는 단체 사람들끼리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고향 이야기도 하는데요. 벚꽃도 만개했으니 다 같이 꽃구경을 가자는 의견이 나온 거죠. 그래서 다 같이 모이는 봉사하는 날에 봉사 끝나고 바로 벚꽃 구경을 갔어요.

기자: 벚꽃 구경은 어디로 가신 건가요?

이순희: 청도 쪽으로 갔는데요. 제가 사는 대구에서는 차로 30~40분 정도밖에에 안 걸려요. 벚꽃도 활짝 폈고 날도 따뜻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왔어요.

기자: 4월이면 벚꽃뿐 아니라 다른 꽃들도 피어날 시기인데 혹시 다른 꽃들도 함께 구경하신 건가요?

이순희: 벚꽃 구경하기 바로 전주에는 경주로 꽃구경을 다녀왔거든요. 경주에 목련이 예쁘게 피었길래 사진도 많이 찍고 왔죠. 그때는 날이 아직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해서 그런지 벚꽃은 활짝 피지 않았더라고요. 그 대신 잔잔한 호숫가에 핀 개나리나 목련들을 보면서 산책하고, 불국사와 첨성대 등 여러 유적들 구경도 하면서 휴식의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는 청도에 벚꽃 보러 갔을 때보다 날이 더 좋아서 꽃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봄이라 그런지 다들 예쁜 옷을 입고 나왔더라고요.

기자: 호숫가 근처였으면 물 위에서 탈 것도 있었겠네요?

이순희: 호숫가에 오리배가 있어서 연인이나 가족들이 삼삼오오 타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비도 안 오고 바람도 거세지 않아서 잔잔한 호숫가를 여유롭게 떠다니더라고요. 또 남한 호숫가 근처에는 산책로를 잘 정비해 둔 곳이 많아요. 그래서 그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로 중년 부부들과 신혼부부가 산책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연인들은 벤치에 앉아 어깨를 맞대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하고요. 보면서 참 평화로운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 봉사단원 분들과는 어떻게 시간 보내셨나요?

이순희: 저희도 신나서 술래잡기 같이 서로를 툭 치고 달아나며 놀기도 하고 물 위 다리에 올라가 사진도 찍으며 놀았죠. 그리고 잔디밭이 있어서 다 같이 앉아 하트를 그리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어요. 이렇게 한창 돌아다니며 노니까 배가 출출해져서 점심시간에는 뷔페식당에 갔는데요. 처음에 제가 남한에 왔을 때는 뷔페가 뭔지 몰랐어요. 뷔페는 부패를 다르게 발음한 줄 알고 '남한에서는 부패한, 썩은 음식을 파나'하고 생각했거든요.

기자: 뷔페를 보고 부패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생각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뷔페는 다른 말로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가져다 먹는 식당이라고 할 수 있죠.

이순희: 네, 북한에는 뷔페식당이 아예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죠. 뷔페식당은 메뉴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한 40~50가지 음식을 제공해 주면,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만 가져다 먹는 거예요. 예를 들면 고기류를 좋아하는 사람은 갈비, 삼겹살, 치킨 등 각종 고기를 왕창 가져다가 먹을 수 있고요.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연어회, 고등어구이, 오징어찜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요. 다 먹은 접시는 옆에 놓고 새 접시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음식을 담아와요. 그러면 식당 종업원이 다 먹은 접시를 다 걷어가거든요. 또 국수나 호박죽, 전복죽 같은 것도 먹고요. 그다음 디저트까지 준비돼 있어서 여러 가지 과일이나 각종 음료, 빵, 케이크 등을 담아서 먹을 수 있어요. 돌아다니며 노느라 힘을 많이 썼으니 뷔페 가서 배부르게 먹게 되죠.

기자: 아직 피지 않은 꽃들도 많은데요. 또 꽃구경 가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이순희: 튤립이라는 꽃이 피고 있어요. 보통 3월에서 5월이 개화 시기인데요. 태안군에서 세계튤립꽃박람회가 4월부터 5월까지 열리거든요. 작년에는 봉사단체가 아니라 민주평통이라는 단체에서 갔는데요. 올해에는 봉사단원들끼리 꽃구경을 갔다 돌아오면서 또 시간 내서 태안으로 튤립꽃 구경을 가자고 얘기했어요. 남한에는 지역마다 특성에 맞는 꽃으로 공원을 조성하고 해마다 철이 되면 축제를 열곤 해서 특히 봄철에는 심심할 틈이 없는 것 같아요.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에서의 벚꽃놀이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