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탈북민, 남북경기 어느편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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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네, 안녕하세요.

기자:요즘 날이 참 좋은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얼마 전에 남한 경상북도 예천에서 '현대양궁월드컵대회'가 진행됐어요. 예천이면 제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차로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거든요. 세계 여러 선수가 남한에 와서 치열한 경기를 펼쳤는데, 이번 예선과 본선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고 결승도 선착순으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어요. 아쉽게도 저는 근무 때문에 다녀올 시간은 없어서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경기 장면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는데요. 남한은 또 양궁에서 세계적으로 알아주잖아요? 남한 선수들이 연전연승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기자:말씀하신 이번 대회에서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 혼성전에서 1위, 그리고 남자 단체전에서는 은메달을 따냈죠. 실시간으로 이 경기를 지켜보셨다고 하셨는데, 당시 분위기도 전해주시죠.

이순희:경기가 아주 치열했어요. 개인전 결승에서 미국 선수들이 얼마나 실력이 좋던지, 만점인 10점짜리를 계속 맞추면서 도무지 승부가 안 날 것 같더라고요. 남한 선수들도 너무 잘해주고 있었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어떡하나?' (마음 졸이면서 보고 있었는데요) 한 미국 선수가 9점짜리에 두 번 화살을 꽂고, 남한 선수들은 10점짜리를 맞추는 상황이 벌어져 결국 남한 선수가 극적으로 1등을 차지했거든요. 그 선수가 자랑스럽게 금메달을 두 손에 번쩍 치켜들고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덩달아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기뻐했어요.

기자:그 치열한 현장을 경기장에서 직접 봤으면 그 감동이 배가 됐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도 국제 대회가 한국에서 진행돼서 그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또 좋은 점이겠죠?

이순희:그렇죠. 그만큼 남한이 국제 경기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적, 경제적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겠죠. 특히 남한 사람들한테는 2002년 축구 월드컵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남한 축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한다"는 평가는 못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해에 세계 다른 쟁쟁한 나라들을 제치고 남한 축구팀이 4강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어요. 남한 국민들은 그때 월드컵 경기장 앞과 거리에 모여서 남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징인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열렬히 응원했어요. 다 함께 응원가도 부르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요. 심지어 한 사람이 자동차 위에 올라타서 너무 열렬히 응원하다가 차가 망가트렸는데도 자동차 주인이 "괜찮다"며 변상을 요구하지 않았던 사례도 있었어요. 남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를 전설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기자:남한에 오셔서 직접 참관하신 국제 경기도 있었나요?

이순희:있었죠. 제가 대구에서 직접 본 국제 경기가 있었는데요. 대구 국제 육상 경기장에 가서 우사인 볼트 선수의 달리기를 본 적이 있어요. 우사인 볼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전설적인 자메이카 육상 선수잖아요. 2011년 경기가 있던 날 담당 형사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우사인 볼트 선수 경기 보러 갈 수 있겠어요?"라고요. 담당 형사님은 탈북민의 신변 안전 담당관이에요. 생활에 어려운 게 없나, 무슨 도움 줄 게 없나 살피기 위해 자주 오는 분이었는데 그분한테 전화가 왔거든요. 우사인 볼트 선수의 달리기를 직접 볼 수 있다니 만사 제쳐놓고 달려갔죠. 또 마침 대구 육상 경기장이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거든요. 버스로 두 정거장이면 갈 수 있었어요.

기자:직접 가서 보신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는 어땠나요?

이순희:우선 넓고 웅장한 육상경기장의 자태에 놀랐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의 경기를 본다는 것에 가슴이 설렜어요. 우사인 볼트 선수가 주특기인 100m에 참가했는데 안타깝게도 부정 출발로 실격했어요.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윗옷을 벗어젖히면서 안타까워하더라고요. 그런데 200m에 참가하더니 금메달을 차지하고 또 400m 남자 릴레이, 북한 말로 하면 이어달리기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와서 1등을 거머쥐었죠. 우사인 볼트 선수가 빠르게 질주하는 모습에 놀라고 또 우승했을 때는 함께 손뼉 치며 고함을 지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날 경기장에 간 걸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고요. 정말 보람찬 하루였고 즐거운 시간이었거든요.

기자:국제 대회에서 종종 남한 선수와 북한 선수가 만나곤 하는데요. 남북한 선수들의 경기도 본 적 있으신가요?

이순희:제가 직접 경기장에서 본 적은 없지만 남한 방송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해 준 경기를 본 적은 있어요. 생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면 중요한 장면은 다시 반복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상황인지 해설도 해주니까 그 맛도 있더라고요. 2017년에 태국에서 남북한이 여자 배구 경기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요. 남한 중계팀을 통해 그 경기를 시청했어요. 남한 선수들과 북한 선수들이 경기를 진행하는데 (북한팀이 남한팀에게) 상대가 안 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북한 선수들이 공격에 성공하면 저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오더라고요. 그때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직장 동료들이 "선생님은 도대체 어느 편이에요?" 하면서 놀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쩔 수 없네요" 하면서 한바탕 웃었거든요. 아쉽게도 북한 선수들이 경기에서 졌지만, 함께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보면서 응원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북한에서는 국제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없었거든요.

기자:북한은 역도와 기계체조에서 두각을 보이잖아요? 그 경기들을 전 국민이 직접 혹은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면 감동이 남다를 텐데요.

이순희:저도 그 점이 아쉬워요. 북한은 올림픽 경기도 녹화 방송으로 전해주거든요. 그러니까 경기가 다 끝난 후에야 그 경기를 볼 수 있는 거예요. 북한은 역도와 기계체조 그리고 또 여자축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아주는데요. 그 경기를 북한 주민들도 함께 지켜보면서 숨죽이고 응원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 남북한 선수가 합동 출전해 1등 한 기록영화물을 본 적이 있는데요. 당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하고, 우승했을 때 남북한 감독과 선수들이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고 저도 가슴이 너무 벅찬 거예요. 만약 북한에서도 이 방송을 생중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의 감동을 북한 주민들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남북한 선수가 또다시 한 팀이 되어 국제 경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염원해 봅니다.

기자: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국제 경기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