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북한에도 ‘무더위쉼터’ 필요해
2024.08.21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폭우로 몸살을 앓잖아요. 제가 사는 대구에서도 무더위가 계속됐는데요. 특히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 열대야가 지속됐어요. 대구뿐 아니라 남한 전국이 폭염으로 펄펄 끓고 있죠.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기온이 39도까지 오르기도 했네요. 이런 날씨에는 야외 활동을 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한반도가 장마전선에 걸쳐있어서 혹시나 홍수가 날까 경계를 늦출 수 없네요. 그래서 오늘은 남한에서 어떻게 이 더위를 식히고 있는지 이야기해 볼까 해요.
기자: 최근 북한에도 폭우가 와서 압록강 물이 넘쳐 자강도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컸죠.
이순희: 북한 신의주에 압록강이 흐르는데 제방 공사가 부실하고, 반대로 중국 쪽은 제방이 높으니 불어난 물이 다 북한 신의주 쪽으로 흘러온 거예요. 그러니 피해가 굉장히 컸죠. 중국과 남한에 비하면 북한 홍수 대비 시설은 열악하기 그지없어요. 남한에도 홍수가 나긴 하지만 북한처럼 가정집 지붕까지 물에 잠기는 경우는 없죠. 강 제방이 잘 설치돼있고 강∙하천 공사도 잘돼 있으니까요. 쏟아지는 빗물 속으로 온몸이 젖어 터덜터덜 걸어가는 북한 주민들 모습을 보니 ‘저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홍수 피해가 난 곳에 찾아갔는데요. 그 장면을 봤을 땐 어떠셨나요?
이순희: 김정은 총비서가 보트를 타고 피해지역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까 “그래도 제 할아버지, 아버지는 홍수로 숱한 이재민들이 생겨도 그 지역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그 지역을 돌아보기라도 하는구나”하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남한 정부가 수해 구호품을 보내겠다고 하니 단호히 거절하는 걸 보고 “역시 김정은의 행보는 보여주기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심한 식량난에 지낼 곳도 없을 북한 동포들에게 구호품을 주겠다는 걸 막는 지도자라뇨? 말도 안 되죠. 하긴 제가 북한에 살 때도 당시 남한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에 소 1,001마리를 보냈을 때도 북한 주민들 대다수는 전혀 몰랐어요. 남한에서 쌀을 보낼 때도 그 쌀이 남한에서 온 것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요. 쌀을 받고는 ‘북한에서 보기 힘든 희고 맛있는 쌀이네’하고 5kg을 배급받았던 기억이 나요.
기자: 남한에서 홍수 피해가 날 경우 북한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이순희: 남한에서도 폭우로 집이나 상가가 물에 잠기는 경우가 있죠. (폭우는) 자연재해잖아요. 이럴 때면 군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달라붙어서 홍수 피해 본 곳을 복구해 주고 청소해 주기도 해요. 또 정부에서는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고 당장 필요한 옷과 생필품 등을 마련해줘요. 피해를 보지 않은 많은 주민이 피해 본 주민들에게 자발적으로 생필품을 보내주기도 하죠. 무엇보다도 홍수 피해에 대한 매뉴얼이 정해져 있어서 재빠르게 대처한다는 점이 북한 정부와 다른 것 같아요.
기자: 오늘 남한이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고 했는데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이순희: 남한은 북한보다도 적도에 가까이 있어서 평균 여름 기온이 더 높은데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은 따뜻해서 제주도나 부산 같은 남쪽 지방은 눈이 한 번도 안 올 수도 있다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여름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 필수인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사는 대구는 분지 지형 때문에 남한에서도 덥기로 유명한 곳이라서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대프리카’라고도 불려요. 아프리카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더운 날씨잖아요. 그래서 대구에서 다양한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들이 여러 가지 시행되고 있어요. 우선 가로수를 많이 심어서 햇볕을 그늘로 가려주기도 하고요. 아스팔트 길에 살수차가 돌아다니면서 물을 뿌려요. 그러면 물이 기화되면서 주변 열기를 뺏어가거든요. 자연히 주변 온도가 내려가게 되고요.
기자: 저도 여름에 대구를 방문했을 때 버스정류장에 커다란 얼음이 놓여있는 걸 보고 신기해한 경험이 있어요. 남한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해 있어서 여름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여름철 밖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국민들을 위한 다양한 냉방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있죠?
이순희: 맞아요. 저도 그 얼음을 본 적이 있는데요. 앞서 말한 살수차와 마찬가지로 열을 뺏어서 주변을 시원하게 만드는 원리에요. 지금도 대구나 몇몇 지역의 버스 정류소마다 큰 대형 얼음들을 몇 개씩 갖다 놔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 얼음에서 나오는 찬 공기로 어느 정도 더위를 피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정류장 천장에서 시원한 안개를 분사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더위를 식혀주기도 해요. 언뜻 들으면 그 안개가 사람들의 옷이나 머리를 적시지 않을지 걱정되겠지만, 실제로는 안개의 물 입자가 굉장히 작아서 금방 젖지 않아요. 또 안개로부터 한 발 나와 있을 수도 있고요. 아이들은 그 안개가 신기해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는데도 와서 만져보기도 하고요. 그뿐 아니라 야외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실내처럼 벽을 쳐서 에어컨을 틀어주기도 하고요. 또 신기하게도 평범한 의자처럼 생겼는데, 앉으면 엉덩이가 시원한 의자를 설치한 곳도 있어요. 얼음장처럼 차가운 게 아니라 적당히 시원해서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가 싫어요. 그런데 이 의자가 겨울에는 따뜻하게 변하기도 해요. 참 신기한 게 많죠.
기자: 39~40도를 치솟는 날씨에는 실내에 시원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상책이죠. 무더운 여름에 실내로 대피할 방법도 있을까요?
이순희: 맞아요. 습하고 푹푹 찌는 더위에는 아무리 그늘 밑으로 들어가고 선풍기를 가지고 다녀도 굉장히 더운데요. 이렇게 더운 날에 어르신들은 건강에 무리가 올 수도 있고 또 젊은이들도 탈수로 쓰러지기도 하잖아요. 최근 남한 정부에서 ‘무더위쉼터’라는 걸 제공해 주더라고요.
기자: ‘무더위쉼터’는 어떤 건가요?
이순희: 무더위쉼터는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는 건데요. 백화점이나 복지관 등을 지정해 두고 국민재난안전포털 웹사이트에서 쉼터를 검색하면 본인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무더위쉼터를 찾을 수 있어요. 이 사이트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지 혹은 회원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지까지 자세하게 나오거든요. 집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위를 지내기 힘든 취약계층이나 어르신 분들에게 정말 좋은 정책이죠.
북한 가정집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런 정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대다수 북한 주민은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는데 더위까지 찾아오면 픽 쓰러지기 쉽거든요. 적어도 에어컨이 있는 곳을 개방해 주거나 혹은 없다면 다 같이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면 북한 주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아요.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여름 나는 법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