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간호조무사가 되기까지
2023.11.24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제가 남한에서 어떻게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할까 해요. 남한에 정착하기 전까지 저는 의료 전문가도 아니었고 관련 경력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남한에 정착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자격증을 딴 끝에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었어요.
기자: 간호조무사로 종사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이순희: 올해까지 하면 한 9년째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자: 한국에 정착한 지는 15년 가까이 됐는데 간호조무사로 일한 지는 10년 가까이 되는 거니까 남한 정착 생활의 3분의 2가량을 간호조무사로 일하신 거네요. 그러면 어떤 이유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이순희: 처음에는 ‘남한에서 무엇을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잖아요? 그래서 직업도 스스로 정해야 하는데, ‘어떤 직업을 잡을 것인가’ 생각하다가 생활정보지를 보니까 간호조무사는 나이가 있어도 뽑는 자리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생명을 돌본다는 의미에서 참 좋은 일이고 신성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간호조무사가 한번 돼보자’ 하고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닐 생각을 했어요.
기자: 간호조무사는 의사나 간호사를 보조해서 간호와 진료 업무를 돕는 사람을 뜻하는데요. 간호조무사가 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요?
이순희: 우선 이론 공부도 해야 하고, 병원에 실습도 나가야 해요. 이론과 실습의 교육 기간을 거치면 자격시험을 볼 수 있어요. 간호조무사 공부하는 기간이 1년인데요. 8달 동안 이론 공부를 하고 4달 동안 실습을 나가야 해요. 이론과 실습의 교육 기간을 거치면 국가자격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요. 이 자격시험까지 통과하고 나면 자격증이 주어지고 그 자격증을 토대로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거죠.
기자: 그럼 자격증을 따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이순희: 간호조무사가 되려면 간호, 해부, 약리, 영양, 치과 등 범위가 꽤 넓은데요. 환자를 돌볼 때 필요한 기본적인 건강과 치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요. 그리고 아동과 노인 등을 간호할 때 알아둬야 하는 원칙들도 있고요. 또 의료관련법이 있잖아요? 간호조무사로서도 의료 관계 법규도 알고 있어야 하고, 공중 보건학도 공부해야 해요.
기자: 그럼 자격증을 위해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이순희: 공부하는 방식으로 저는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교수님이 설명할 때 제 교과서는 새까매져요. 메모지보다 교과서 본문 옆에 필요한 걸 메모했거든요.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해요. 그 시간에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한 문제는 선생님에게 자주 질문했거든요. 그래서 그날 배운 거는 그날로 어떻게든 소화하려는 습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자: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위한 학교 다니셨던 건가요?
이순희: 간호 학원이 있어요. 그 1년제 학원에 다녔어요.
기자: 정부에서 학원 지원비도 나왔나요?
이순희: 그렇죠. 학원비로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내야 해요. 1년이니까 240만 원 정도 내야 하죠. 그런데 직업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 고용지원센터에서 거의 공짜로 배우게 해주는 거예요. 오히려 교통비와 식비를 받으면서 공부했어요. 교육비와 식비가 그 당시에 16만 7천 원 정도였는데 제가 내는 돈은 7만 원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거의 10만 원 돈을 받으면서 공부했다고 볼 수 있죠.
기자: 실습 때 기억나는 일화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이순희: 실습할 때 실수라면 실수고, 교훈이라면 교훈인 일이 있었는데요. 간호조무사의 첫 업무가 환자들의 혈압, 맥박, 체온을 측정하는 일이거든요. 실습 첫날부터 실습하는 내내 4달 동안 매일매일 해야 해요. 제가 집과 가까운 병원에 실습을 나갔어요. 매일 쳇바퀴처럼 돌듯이 환자들의 혈압과 맥박을 확인하다가 한 번 어느 어르신이 몸을 떠는 거예요. ‘이 어르신 왜 이러지’ 생각에 달려가서 간호사한테 보고하니까 간호사가 씩 웃더니 귤 주스를 한 병을 딱 주면서 환자한테 주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 병을 따서 그 어르신한테 드리고 2~3분 있으니까 그 떨림이 딱 멈추는 거예요. 그래서 간호사 보고 “이게 뭐예요?” 물어보니까 저혈당 쇼크 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환자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간호사들은 다 파악하고 있던 거예요. 그때 저는 그 일을 통해서 ‘저혈당 환자에게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구나’라는 지식과 함께 교훈을 얻게 됐어요.
기자: 그럼 간호조무사가 된 이후에 예상과 달랐던 점에는 어떤 게 있나요?
이순희: 간호조무사 학원 다닐 때는 책상머리교육이었잖아요? 그리고 실습 나가도 주동이 아니고 피동이어서 시키는 일만 했는데, 직접 해보니까 모든 걸 주동적으로 해야 하더라고요. 환자가 아프면 “저 환자 이런 상태인데 의사 선생님께 보고 드려야 하지 않아요?” 먼저 제의해야 하는 게 좀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 더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요. ‘이 환자는 내 환자다’, ‘이 환자를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는 직업의식이 더 생기는 것 같았어요.
기자: 직업에 종사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순희: 어느 날 제가 담당했던 사실이 환자가 퇴원했어요. 병원에서는 입원과 퇴원이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금방 잊거든요. 그런데 제가 백화점에 볼일이 있어서 겨울옷을 사려고 나갔는데 그 옆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저를 붙잡고 “아이고 선생님” 하는 거예요. 누구신가 보니까 제가 병원에 다녔을 때 입원했던 할머니인 거예요. 그러면서 그 할머니가 딸이랑 같이 지나가다가 딸 보고 “얘야, 인사해라.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나를 살펴주던 선생님이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딸도 저에게 깍듯이 인사하면서 “우리 어머니를 잘 간호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인사하는 거예요. 그때가 가장 뿌듯했던 것 같아요.
기자: 혹시 간호조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탈북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순희: 우선 남북한 통틀어서 간호조무사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 내서 도전하라는 말과 함께 봉사 정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 직업을 택하라고 말하고 싶고요. 북에서 온 분들은 남한 분들보다 영어가 좀 약해요. 그래서 탈북민들은 “(공부해야 할) 영어가 많던데”라며 피하는 현상이 있는데, 영어 공부 힘든 거 아니에요. 제가 50대에 공부했는데 60대에 공부한 어르신도 다 자격증을 땄거든요. 그러니까 열심히 하면 길이 열려요. (자격증을 딸 때 필요한) 영어가 뭔가 하면 바이털 (활력 징후)이라든가, bid (하루에 두 번), tid (하루에 세 번), im (근육 주사), iv (혈관주사) 이런 것만 잘 알면 그렇게 힘든 게 아니니까 용감하게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기자: 사실 이순희 씨께서도 북한에서부터 의료상의 지식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남한에 정착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건데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부터 배우고 그 일을 10년 가까이 꾸준히 해오셨다니 정말 뿌듯하실 것 같네요.
이순희: 남한에 와서 첫 직업을 간호조무사로 지고 꾸준히 해오는 것과 직업에 대한 긍지가 있어요.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이순희 씨가 겪은 간호조무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