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힘들 때 친구가 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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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네, 안녕하세요.

기자: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지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잖아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이때까지는 얇은 외투나 코트를 입고 다니던 사람들이 갑자기 롱패딩처럼 두터운 겨울 잠바를 입고 다니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겨울 목도리도 목에다 두르고 다니고 바지도 두꺼운 거 입고 다녀요. 저도 출근할 때 예전에는 얇은 잠바를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겨울 잠바로 바꿨거든요.

기자: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오늘은 종교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해요. 제가 남한에 처음 입국해서 국정원을 거쳐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을 돕는 기관인 하나원에 입소했을 때 일이 떠오르네요. 그때 인천 비행장에서 국정원 합동 심문실로 올 때 버스에서 거리를 내다보니, 제일 높이 선 건물들에 십자가를 건 건물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도 느끼는 바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고 멋진 건물 중에는 종교시설이 많은 것 같아요.

기자:남한에 정해진 국교는 없지만 기독교인의 비율이 가장 큰 만큼 교회도 부쩍 많아졌는데요. 교회 건물에는 비단 십자가가 걸려있다 보니 더 눈에 띄는 것 같아요. 그럼 남한에서 종교 생활도 해보신 건가요?

이순희:네, 저는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종교를 가진 건 아니었어요. 그러나 행사와 봉사를 다니면서 여러 종교 생활을 체험해 봤어요.

기자:처음으로 종교 집회에 가보신 건 언제였나요?

이순희:하나원에 입소하자마자 처음으로 가보게 됐어요. 하나원에 입소한 후 첫 주말이었는데 전 교육생들을 모아놓고 하나원 선생님이 "종교 단체에서 왔는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쪽에,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저쪽 방에, 그리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저 선생님을 따라가세요"하는 거예요. 그 당시 중국에서 몇 해를 살다 오신 탈북민 중에 기독교나 불교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하던 분들이 계셨더라고요. 그분들은 그 소리를 듣고 거침없이 따라가는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어떤 종교가 있는지도 몰랐고 각 종교의 이름을 들어도 감조차 안 오던 터라 그냥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같은 호실에서 생활하던 또래 친구가 "너 왜 그러고 섰니?" 하길래 "난 뭐가 뭔지 모르겠어"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아! 너 종교가 없구나"라고 저를 본인이 다니던 기독교 예배당으로 데려가더라고요. 그래서 따라갔더니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저를 따듯하게 맞아주시더라고요.

기자:종교 생활은 처음이라 좀 당황했을 것 같은데요. 심지어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 외에는 어느 것도 숭배하지 말라고 교육받았을 테니까 더 낯설었을 듯싶네요.

이순희:네 맞아요. 북한에서는 "이 세상에 하느님이 있다고 한다면 허황한 얘기고, 만약 있다면 위대한 김정일 부자가 하느님이다"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처음에 어정쩡했어요. 그런데 저를 맞이해 주시던 목사님이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화가 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순간 "하나님이라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북한에서는 "하느님이 곧 김일성 3부자뿐이라고, 이 세상에는 하느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교육받은 저로서는 좀 혼란스러웠어요. 북한은 그 어떤 외부 세력으로부터도 종교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엄벌하고 있거든요. 그런 세뇌 교육을 받던 저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기자:그럼 그 이후에 종교 집회에는 안 나가게 되신 건가요?

이순희:아뇨, 그렇지 않아요. 외롭고 기댈 것 없이 홀로 새로운 세상으로 온 저로서는 종교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치고, 힘들고, 외로울 때 의지하고 마음속 고충을 다 터놓을 수 있어서 힘이 됐거든요. 타지 생활을 하게 되면 가족이나 오랜 친구들이 없어서 힘든 것도 힘들다고 얘기할 수 없고, 도와달라고 할 곳도 없을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용기를 낼 수 있던 원천 중 하나가 종교 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되돌아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일요일마다 은근히 그 목사님 일행을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 후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기자:남한에는 기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나 유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존중받는데요.

이순희:그렇죠. 기독교 외에 유교, 불교도 있는데 탈북민들은 저마다 자기가 가고 싶은 종교를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고 휴식의 시간도 가지고 있어요. 또 그곳의 도움도 받고 반대로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생활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각종 종교 단체에는 탈북민들을 도와주는 사회봉사자들이 있어서 계절마다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탈북민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관광지들을 견학시키기도 하고, 맛있는 식당도 데려가고, 선물도 안겨주곤 하면서 마음의 휴식을 갖게끔 조건을 조성해 주곤 해요.

기자: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하는 종교단체들이 많죠. 정기적으로 후원을 한다던가 어려운 이웃 혹은 외국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곳들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어떤 종교를 망라하고 좋은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단체들은 존경받을 만한 것 같아요.

이순희:맞아요. 그래서 꼭 종교가 다르다고 미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의 선택에 의해 자유롭게 종교 생활을 할 뿐이잖아요. 한 종교를 다니다가 다른 종교로 옮기는 사람도 많고요. 국가 지도자들과 정치가, 대통령, 대기업 회장, 일반 직장인, 주부, 대학생, 초중고 학생들까지 모든 국민이 다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거든요. 아이, 어른, 늙은이 할 것 없이 본인이 선택한 신앙을 믿고 따르고 의지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통해서 용서와 너그러움과 남을 돕는 것도 배웁니다. 앙숙이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용서하는 법도 배우는 거예요. 어려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신도들의 성금으로 도와주고 있고요.

기자:종교 생활을 통해 봉사나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해 본 적도 있으신 건가요?

이순희:전에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 봉사를 했고요. 이번 주 일요일에는 집 근처 불교 단체에서 탈북민들을 나눠주기 위해 다 같이 모여 김장한다길래 저도 일손을 도우러 가요. 앞서 저는 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했듯이 불교 신자는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종교를 떠나서 좋은 일을 하고, 남을 돕는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제가 이따금 도우러 가는 절에 법륜 스님이 계시는데 이분은 남북한에서 잘 알려진 분입니다. 법륜 스님은 북한의 굶주리는 동표들을 돕기 위해서 쌀을 북한에 보내시는데요. 그 외에도 대북 구호단체에서 항상 앞장서시면서 북한에 방문하기도 했던 분이거든요. 저도 남북한 통일이 되면 꼭 우리 고향 분들을 돕는 종교활동에 적극 나서고 싶네요.

기자: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종교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