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선물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춘 만세> 이 시간 진행에 김인선 입니다.

오늘 휴대 전화로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누나!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오늘도 힘내!'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요. 커피매장에 가서 동생이 휴대전화로 보내준 쿠폰 그러니까 물건을 살 수 있는 전자 상품권을 보여주고 커피 한 잔을 받아왔네요.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보답으로 저도 남동생에게 영화표를 휴대전화로 보내줬습니다.

남쪽에선 스마트폰 그러니까 타치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선물 주고받는 방식도 이렇게 다양해졌습니다.

오는 3월 14일은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마음을 전하는 화이트 데이 기념일인데요. 그래서인지 선물 고민하는 남성들이 많이 보입니다. 오늘 <청춘 만세>에서도 선물 얘기 한번 해보겠습니다.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정민, 김재동, 김강남, 최철남 씨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 남한에서의 선물의 의미와 북한에서의 선물의 의미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먼저 그것부터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여러분에게 선물의 의미는 어떤 거죠?

김재동 : 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요, '내가 너를 좋아해' 하는 호감을 표시하고 싶어서 선물을 줬던 것 같아요. 남한에서는 관계 개선이랄까요?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에도 선물을 주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철남 : 북한에서도 마음의 표시였던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선물을 남한처럼 많이 주는 것 같지는 않고요. 생일에 그 사람이 좋아할만한 것을 사다주거나 군대에 가는 친구에게 당원증을 넣을 수 있는 지갑을 사주는 것처럼 마음의 표시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많이 주긴 하는데요, 대단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머리핀이나 볼펜을 사주는 정도입니다. 남한에서 가장 놀랐던 게 선물의 크기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청년들 같은 경우에는 소박하지만 돈 많은 청년들은 차 한 대씩 선물로 주더라고요. 또 반지 선물도 금으로 된 것을 주는 모습을 보고 사치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놀랐어요.

김강남 : 제가 한국에 와서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안 하니까 마음이 좀 찝찝하더라고요. 왜냐하면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북한과 다르게 기념일이 되면 무조건 선물하는 문화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선물은 해야겠다 싶어서 고민하다가 편지를 썼어요. 원래 글을 잘 못쓰지만 편지를 썼던 건데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더라고요. 사실 여자 친구도 같은 탈북자인데도 '고마워' 라는 인사 후에 뭔가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었어요. 여자 친구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먼저 알고, 적응 해버렸던 거죠. 하지만 학생 신분이었던 저는 돈이 없어서 제대로 선물을 못해줬었는데 그땐 '왜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 친구도 변하는 모습은 놀라웠고요.

김재동 : 맞아요. 요즘 한국에 기념일이 무척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남자가 인터넷 상에다가 여자 친구에게 뭘 선물할까 하는 고민의 글을 올리기도 해요. 그렇게 해서 다들 받는 선물이 생겨나고 여자들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만 가죠. 또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받게 되면 그 이상의 선물을 해줘야 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남자들이 많아요.

이정민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몇 백만 달러짜리 선물보다도 받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그 선물의 가치를 따져야 한다고요. 북한에서는 선물을 받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나한테 누군가가 선물을 준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뜻밖에 받게 되면 거기에 대한 감동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물건에 대한 가격이나 쓰임새 비교보다는 마음에 감동했었는데 남한에 와보니까 여자가 남자를 사귀게 되는 경우 선물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라고요. 그리고 매번 선물을 받을 때마다 기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 선물의 의미는 계속 덜해진다고 생각돼요.

[내레이션 : 우리가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이유는 그 선물에 담겨있는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 선물을 고르기까지의 노력이 더해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요. 선물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생각은 남북이 비슷하지만 남쪽의 경우엔 경제적 풍요가 오히려 선물의 가치를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

최철남 : 북한에서는 남한처럼 꽃을 선물로 주는 경우가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북한은 남한처럼 꽃 파는 상점이 드물기 때문에 선물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남한은 쉽게 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꽃 선물을 많이 하더라고요.

김재동 : 꽃이라는 게 참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데 요즘 남한 여성들에게는 번거로운 존재가 된 것 같아요. 꽃이 시들게 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볼품이 없어지니까 기피하는 것 같은데요, 저부터도 꽃을 선물로 잘 안주게 되더라고요.

최철남 : 네, 어느 순간부터 꽃 선물을 잘 안준다고 하더라고요. 기념일에 꽃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돈을 꽃 모양으로 접어서 주는 사람도 있고, 남한에는 '빼빼로'라는 과자가 있는데 과자 모양대로 말아서 주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모습을 보고 너무 황금만능주의가 된 것 같고 선물의 의미가 퇴색된 것 같아서 많이 놀랐어요.

이정민 : 저도 남편이 꽃을 선물해 준적이 있어요. 저는 그 선물을 고를 때 남편의 마음, 그런 게 더 소중한 것 같아서 항상 말을 해요. 가격보다는 선물을 고를 때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소중하다고요. 선물은 그래야 진심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김강남 : 제가 어릴 때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고아원에서 먹을 것이 많이 없을 때라서 뭘 하나줘도 진짜 소중할 때였거든요. 옥수수 하나를 생일날에 선물 받았어요. 그때 제가 울면서 먹었던 생각이 나요. 그런데 그 친구가 죽었어요. 거의 굶어서 죽다시피 했는데 옥수수를 저한테 준거죠. 그래서 옥수수를 볼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나고 그 옥수수 선물이 저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뜻 깊은 선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나가 말한 것처럼 선물의 가치보다도 선물의 무게를 생각하는 게 옳은 것 같아요.

이정민 : 남한의 여자들은 선물 받은 것으로 남자를 많이 평가하는 것 같아요. 선물을 주는 방식, 선물의 가치에 따라서 평가하고 헤어지고 하니까요. 너무 당연하게 선물을 받아요. 계속해서 이런 식이 반복되면 마음을 전달하는 선물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을까 걱정돼요.

[내레이션 :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줬다는 그 자체에 설레고 감사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요즘 남한 젊은 세대들은 선물에 대해 기성세대와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데요. 마음을 담긴 선물을 하되 그 방식은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

이정민 : 북한 여자들은 남자가 선물을 해줄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해요. 대신 작업반에서 일할 때 내 앞의 과제를 해주는 남자... 이런 게 사랑의 표현이었어요. 그러니까 노력이 선물인거죠. 그런 것들을 받거나 거름 생산 주간에 내 것까지 몰래 해주는 남자... 이런 게 굉장한 감동이었거든요? 작업을 할 때 내 줄이 못나갔는데 그 남자가 자기 줄을 먼저 하고 내 줄로 마중 나올 때. 이런 걸로 감동을 받고 저 사람과 평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저는 20살, 어린 나이에 탈북을 하다보니까 그런 것을 못 느꼈죠.

김재동 : 계속 말씀해 주셨듯이 받는 것과 기대는 것에 익숙한 남한 여성들도 있지만 요즘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꽤 있어요. 동등하게 주고받는 경우도 있어요. 이성 친구 얘기만 계속 나왔는데 절친한 동성 친구들과 선물을 주고받기도 해요. 한, 두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지금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달라고 해요. 이러다보니까 주는 사람도 좋고 받는 사람도 유용하게 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더라고요.

[내레이션 : 이렇게 되면 선물 받을 때의 두근두근 기대감은 줄어들지만 주는 사람 편하고 받는 사람도 유용하니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어떤 선물이 기억이 남으십니까? 출연진들에게 최고와 최악의 선물을 물었습니다.]

최철남 : 저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은 제가 태어난 것 자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주신 선물인데 그 선물을 받고 있는 지금, 생애에서 가장 최악의 선물이 있어요. 그건 바로 북한에서 태어난 거예요. 왜냐하면 북한에서 살 때는 몰랐지만 남한에 와서 보니까 너무 힘든 나라였더라고요. 솔직히 최악의 나라가 안 될 수도 있지만 몇 명 때문에 최악의 나라가 되다보니까 그곳에서 태어난 것이 최악의 선물이 된 것 같아요.
최고의 선물은 북한을 떠나서 한국에 온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가고 싶은 나라를 맘대로 가볼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요. 자유라는 선물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남한 사람들은 잘 몰라요. 하지만 저처럼 북한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자유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잘 압니다.

김강남 : 저는 마음과 사랑이요. 한국에 오면서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은 것 같아서요. 북한에 있을 때는 사람의 마음, 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 대한민국에 오면서 옆집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빈 방에 혼자 외롭게 있을 때는 스스로가 굉장히 슬프게 느껴지니까요. 마음, 정 같은 게 너무 그리워요. 그럴 때는 눈물도 나거든요.
그래서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나 최악의 선물이라는 것은 철남이랑 같아요.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최악의 선물입니다. 그곳에 가족을 두고 온 것도 그렇고... 생이별을 했기 때문에 선물이라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요, 하필이면 이 넓은 지구 땅 중에 왜 북한에서 태어났을까? 싶어요.

김재동 : 올해 들어서 저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 모두가 많이 아파요. 그렇다보니까 최악의 선물은 잃어버린 건강인 것 같아요. 최고의 선물은 제가 몇 년 전에 안 좋은 일이 계속되면서 침체기를 겪었어요. 그 당시엔 굉장히 단조로운 삶을 살았는데요, 그러던 중 생일이 다가왔고 아무 의미 없이 보낼 뻔 했는데 친구가 집 앞까지 갑작스런 방문을 해줬어요. 저희 집하고 그 친구의 집은 한 시간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찾아온 거죠. 그때의 그 방문, 그 격려가 참 좋았습니다. 힘들 때 함께 해 줄 친구가 있다는 것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지금까지 최고의 선물로 기억됩니다.

이정민 : 제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태어나게 해 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태어나보면 힘든 것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생명을 얻은 것은 복이라고 생각해요. 최악의 선물은 한 때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선물해 줬던 것들을 헤어지면서 다 버렸거든요. 남녀 사이에는 그게 최악의 선물이 되는 것 같아요. 헤어졌을 때 그 사람의 모든 것까지 다 지우고 싶은 마음이 저는 항상 있거든요. 지우려면 아주 끝까지 마지막 잔재까지 다 지워버리고 기억 속에 남기고 싶지 않다는 발버둥을 많이 하는 편이라 제 건강을 더 해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내레이션 : 북쪽에서 태어난 것이 최악의 선물이라는 강남 씨와 철남 씨의 말이 참 서글픈데요. 어쨌든 이 두 사람, 최악의 선물은 어쩔 수 없지만 인생 최고의 선물은 계속 바뀌겠죠? 이들은 앞으로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을까요? ]

최철남 : 앞으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통일이 돼서 북한 형제들과 고향 사람들 모두가 자유라는 선물을 같이 받고 싶어요. 여행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그런 자유요.

김강남 : 결혼 선물을 받고 싶어요. 어떻게 되든 빨리,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부엌에라도 서있던가 누워있어도 괜찮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까 사람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서 그런 선물을 받고 싶어요.

김재동 : 받고 싶은 선물은 저와 제 가족의 건강인데요, 여기서 조금만 더 욕심을 내 보면 제가 좋아하는 영국 축구팀의 우승이요! (웃음)

이정민 : 건강, 재산, 권력 등 다 있는데 그것보다도 요즘 멋있는 말이 있어서 그 얘기를 좀 할게요. 18금보다 더 좋은 게 24금이고, 24금보다 더 좋은 게 지금이라네요. 그래서 오늘,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오늘 선물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고... 이제는 제가 몸이 무거워져서 당분간은 못 올 것 같은데 돌아올 때 더 분발해서 풍부한 경험과 내공으로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는 결심도 함께 전해드리면서 저는 당분간 쉬도록 하겠습니다.

[내레이션 : 정민 씨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남북의 청년들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던 <청춘만세>가 여러분에게 선물로 여겨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저도 이 시간을 끝으로 인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는 윤하정 기자가 진행을 맡아 이어가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춘만세>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