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실험의 결과 (2)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0.09.15
break_wall_peep-620.jpg 서독 사람들이 구멍난 장벽으로 동독 경비대를 들여다 보고 있다.
Photo courtesy of Wikipedia

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진지 거의 30년 되었습니다. 앞서 교수님은 공산주의진영의 붕괴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보다 풍요로운 소비생활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고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진영의 붕괴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란코프 교수] 오늘날 서방국가들의 상식은 공산주의진영은 인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때문에 무너졌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상식은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열심히 지지한 사람들은 지식인들이나 청년학생들입니다. 공산주의진영 인민 대부분이 사회주의에 적대감과 실망감을 느낀 기본이유는 경제입니다. 이들 국가에서 간부들은 서민들이 외부생활에 대해서 잘 알 수 없도록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인민들은 시장경제 나라에서 평백성들이 사는 생활을 갈수록 많이 알게 되고, 많이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세월이 갈수록 자본주의나라 인민들은 공산주의진영 인민들보다 더욱 더 잘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공산주의 진영 국가의 사람들은 공산당 독재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하면 잘 살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흥미롭게도 소련과 동유럽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한 사람들도, 민주주의만 도입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 보면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원래 약속했던 인민생활 수준 향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인민들의 지지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공산국가의 경제실패는 공산주의 붕괴의 유일한 이유가 아니지만 핵심 이유입니다.

기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란코프 교수] 민주주의와 정치자유에 대한 열망이 생각만큼 높지 않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지식인들은 선거를 통해서, 자유언론을 통해서 나라의 정치를 움직이길 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마음대로 최고지도자에 대해서 농담을 하거나, 고급간부를 비판하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누구든지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유화를 원했습니다. 해외 여행 자유도 비교적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풍요로운 소비생활에 대한 열망만큼 크지 않아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기자: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공산주의 진영 붕괴의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란코프 교수] 민족주의입니다. 수많은 동유럽 나라에서 벌어진 반공산당 운동은 사실상 민족해방 운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동유럽에서 사회주의는 소련이 강제적으로 부과한 정치체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 공산주의체제를 별로 반대하지 않았던 나라들, 예를 들면 체코나 불가리아와 같은 나라들의 태도입니다. 이들 나라에서 나중에 공산주의에 대한 실망감이 커진 다음에,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소련 제국주의가 강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는 사실상 하나가 되고, 반소 반공 민족주의 운동이 많아졌습니다.

기자: 공산주의진영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서방의 전문가들은 1980년대 말까지 소련체제가 아무 문제가 없고, 2000년대에도 소련의 깃발이 휘날릴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소련의 붕괴를 예측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소련과 공산국가들이 국내정보를 잘 통제해서 중요한 정보가 해외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외부 사람들이 사회주의국가 인민의 마음을 제대로 알 지 못했습니다. 저는 소련에서 자랐었는데, 벌써 1970년대 말부터 소련이 얼마 후에 무너질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기자: 교수님, 이미 1960년대 말부터 불만이 많아지고, 70년대 말에는 체제에 대한 의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왜 90년대초까지 공산주의진영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진영 집권계층, 즉 간부들의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동구국가에서 사람들은 공산당에 도전할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정권을 공격한다면, 곧 소련 탱크가 도착해 반정부 운동을 참혹하게 진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유럽에서 민주화 운동이 생긴적이 있지만 결과는 실패 뿐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소련에서 나이가 많은 다수의 간부들은 1970년대말까지 아직 사회주의를 믿거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간부계층이 강철 같은 단결을 유지하면 체제가 무너지기 어렵습니다.

기자: 그러면 소련 간부들의 단결은 1980년대 들어 갑자기 무너진 건가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기자: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문인가요?

[란코프 교수] 아닙니다. 당시에 구소련 간부들 중 많은 사람들,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인민들처럼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사회주의를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흥미롭게도 소련에서 많은 간부들은 소련연방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는 것까지 인정했습니다. 러시아인이 아닌 다른 민족이 사는 가맹공화국에서 현지 민족들은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기자: 그러나 간부들은 특권계층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얻는 것이 많았는데, 체제가 무너진다면 특권을 잃어버리지 않습니까?

[란코프 교수] 두려워 한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다수는 체제가 무너지면 얻을 게 더 많았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진영이 무너진 다음에, 옛날 간부, 보위원, 당일꾼들만큼 얻은 게 많은 사회계층이 없습니다. 그들은 별로 믿지 않던 공산주의사상을 헌옷처럼 벗어버리고, 하루아침에 사업가나 민주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체제를 지킬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기자: 하지만 중국에서도 윁남, 베트남에서도 아직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란코프 교수] 물론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공산당은 거의 간판 수준일 뿐입니다. 중국이든 베트남이든 사실상 19세기 자본주의와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이들 국가에서 자본주의가 도입된 논리는 소련, 동유럽과 같습니다. 중국 간부들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얻을 게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진압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도입 발전시키고, 자기들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공산주의는 거의 듣기 좋은 말들 뿐입니다.

기자: 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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