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체제하의 이민 (1)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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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49년 러시아인 36명이 미국 뉴욕에 도착한 모습.
지난 1949년 러시아인 36명이 미국 뉴욕에 도착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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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북조선에서는 이민이란 것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민이 허용됐었습니까?

란코프 교수: 당연히 이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은 북한처럼 이민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기나라 사람들이 해외로 가는 것을 무조건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건과 제한이 너무 많았습니다. 국가별, 시대별로 차이가 많습니다.

전: 교수님, 그렇다면 1940년대 말부터 1991년 소련 붕괴 전 까지 소련사람들은 해외로 이민할 권리가 있었나요?

란코프: 대부분의 소련사람들은 1980년대말까지 해외로 이민 갈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비법적으로 소련을 떠나 기타 나라로 망명하고 싶은 사람들이 없지 않았고, 그 사람들이 성공하였습니다. 출장으로 간 다음에 귀국하지 않은 사람들, 60년대부터 가능하게 된 개인여행을 간 다음에 귀국하지 않은 사람들, 배를 타고 해외항구로 나간 선원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 조금 이따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비법적으로 간 사람들뿐만 아니라, 합법적으로 해외로 이민을 갈 수 있는 공민들이 소수이기는 하지만 있었습니다.

전: 어떤 사람들이 이민 갈 수 있었습니까?

란코프: 그들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소련은 북조선과 달리 국제결혼을 허용했습니다. 소련사람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해외로 갈 수 있었습니다. 1950년대 초까지 불가능했지만, 1953년 스딸린의 사망 이후 소련사람들은 외국인과 거의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결혼하면 외국인 배우자가 사는 나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제한이 물론 있었는데, 준비과정이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이나 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소련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남편을 따라서 갈 수도 있고, 부인을 따라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간 사람들이 매년 수천 명 정도씩 있습니다.

전: 이민 가는데 준비과정이 길면 몇 년이나 걸렸다니 절차가 복잡했던 모양이네요.

란코프: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서류도 많았고, 심사도 오래 걸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기밀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출국허락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공산당당원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탈당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떠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스딸린의 딸 스베틀라나는 인도남자와 결혼하고, 해외로 이민 갔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가끔 소련을 방문했지만, 거의 평생 동안 해외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결혼이민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전: 교수님, 소련 내 소수민족들은 자신이나 선조의 고향 땅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이민이 허용됐을 법 한데, 어떻습니까?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사실상 세 개 민족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1970년대 초 들어와 마음만 먹으면 이스라엘로 갈 수 있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유대인 대부분은 이스라엘로 가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사실상 출국한 이후에는 미국이나 여러 유럽국가로 갔습니다. 특히 미국은 소련에서 나온 유대인이면 거의 자동적으로 입국을 허락하고, 미국 국적을 받기도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독일계, 즉 도이췰란드계 소련사람들입니다. 독일계 사람들은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소련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제2차대전 때 강제이민과 여러 차별을 당했고, 1950년대부터 도이췰란드로 갈 허락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동독으로도, 서독으로도 갈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감시도 많고 살기도 어려운 동독보다 자유가 많고 잘 사는 서독으로 간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셋째는 아르메니아 소수민족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고향은 당시에 소련에 속했습니다. 도이췰란드 사람이든 유대인이든 자신의 조국으로 가기 위해서 출국했지만,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계 어디에나 아르메니아 계통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친족이나 가족이 있다면 그들이 사는 나라가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소수민족도 가끔 해외로 아주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규모가 너무 작았습니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초 소련 교포들은 북조선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고려사람보다 주로 사할린 교포들입니다. 수천 명 정도 갔는데, 그들은 북조선의 너무 어려운 생활에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그 때문에 북조선 행을 선택한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근 40년 동안에 이민 간 소수민족의 수는 얼마 정도나 될까요?

란코프: 1948년부터 1985년까지 해외이민을 간 소련사람은 약 45만 명입니다. 그들 중에 절반이상, 즉 29만 명은 유대인들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10만명이 해외로 떠났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5만 명 정도 떠났습니다.

전: 그 소수민족들이 집중적으로 이민 간 시기는 언제였나요?

란코프: 제일 많이 갔던 시기는 1970년대입니다. 당시에 소련과 서방국가들의 사이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 때문에 소련정부는 소련을 떠나서 해외로 가고 싶은 소수민족들이 이민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말 소련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해외로 가고 싶은 사람들이 다시 많아졌습니다.

전: 말씀을 들으니, 거의 50만명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소련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 갔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비합적으로 이민 간 소련 사람들은 얼마 정도나 될까요?

란코프: 확실한 통계가 없는데, 40년대말부터 80년대말까지 비합법적으로 해외로 망명한 사람들은 4-5만명 정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제일 많이 쓴 방법은 해외출장으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도 있었습니다. 소련에서 60년대부터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소련 방식의 조직생활도 잘 하면, 해외여행으로 갈 허락을 받았습니다. 주로 감시가 쉬운 단체여행입니다. 두세 번 정도 사회주의국가로 간 다음에, 자본주의국가로 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에 간 다음에, 귀국하지 않고 그 나라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당시에 대부분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산권나라 출신이면 거의 자동적으로 망명자 보호를 받았습니다.

전: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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