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성장 이끈 경제특구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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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nzhen_Rising_b 중국 선전(深圳)의 전자상가 모습.
ASSOCIATED PRESS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모택동 시대에 주장한 자력갱생, 곧 한계에 부딪혀

- 1980년대 개혁개방과 함께 경제특별구역 신설

-중국의 경제특구, 화교 중심으로 대단한 성공 거둬

- 화교들의 성공 지켜본 외국인들 투자 이어져

- 오늘날 중국 전체가 거대한 특구, 자본주의의 대륙으로 변해.


오는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제성장’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려면 완전한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장도 있습니다. 북한의 이웃 나라인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은 북한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데요. 오늘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경제특별구역, 즉 특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교수님, 중국은 1980년대 초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역사에서 전례가 거의 없을 정도의 경제적 성장을 이뤘는데요. 고속성장을 시작할 당시, 중국은 자력갱생 정책을 펼쳤나요? 아니면 외국투자를 유치했나요?

[란코프 교수] 절대 자력갱생 정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북한 사람은 자력갱생이라는 말이 김일성 시대에 나온 북한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은 김일성이 아니라 모택동이 만들었고, 1950년대 대약진운동 당시 중국에서 많이 쓰던 구호입니다. 북한은 자력갱생이라는 말을 중국에서 배우고, 많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북한 구호라고 주장합니다. 또 중국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인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말 들어와 등소평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자력갱생에 아무런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중국과 같은 커다란 나라에서조차 자력갱생 원칙에 따른 경제성장의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등소평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경제를 고속 성장시키고, 인민 생활의 수준을 빨리 향상할 필요를 느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역을 많이 하고 외국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 네. 교수님께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무역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아서 지하자원을 많이 수출한다 해도 누구나 잘 살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중국은 당시에 어떤 물품을 주로 수출했나요?

[란코프 교수] 중국은 당시에 지하자원을 수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중국은 지하자원을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중국 수출품의 기본은 중국 사람의 노력으로 만든 물건들입니다. 또 중국의 기본자원은 석탄이나 철광석보다, 중국 사람의 노동력입니다. 중국인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남한, 일본, 베트남도 비슷한데, 동아시아 사람들은 세계 기준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는 민족입니다. 당연히 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국가사회주의 체제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경제발전을 시작한 중국은 해외에서 재료와 부속품을 수입해 국내공장에서 완성품으로 만들고, 이 물건을 다시 수출했습니다. 이것은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경제 발전, 그리고 경제성장의 전략입니다. 당연히 이 같은 무역을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공업 시설입니다. 이 공업 시설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나온 돈, 즉 해외투자로 구매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당시에 중국은 공장을 지을 충분한 돈이나 기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은 1970년대 말부터 외국인 자본가들이 중국 국내에서 공장을 짓도록 권유했습니다. 당연히 해외 돈으로 지어진 공장이면 번 돈의 일부는 해외투자자들에게 보내고, 일부는 중국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 교수님, 그렇다면 중국에서 외국인들이 아무 때나 어디든지 찾아가서 투자할 수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지금은 가능하지만, 등소평의 개혁개방이 시작됐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사상 오염에 대한 공포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은 경제특별구역, 즉 특구를 만들었습니다. 특구는 주로 중국 동해안에 많이 위치했는데, 1980년에 최초의 특구 4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은 특구에서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 교수님, 당시 중국의 특구는 어떤 지역이라고 할 수 있나요?

[란코프 교수] 당시에 중국 특구는 북한의 라선특구처럼 일반인들이 공안, 즉 중국 경찰의 허락 없이 자유롭게 방문하지 못했던 지역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1980년대 이동의 자유가 없던 지역입니다. 이들 특구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외국인만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체류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구의 법률과 규칙이 중국 대부분 지역과 조금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제한이 별로 없었습니다. 1980년대 중국 대부분은 사회주의 시대였는데, 몇 개의 특구는 사회주의란 대양에서 생긴 자본주의 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렇군요. 그렇다면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특구는 얼마나 성공했나요?

[란코프 교수]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원래 외국인들은 중국 정부를 잘 믿지 않았고 특구에서 투자하는 것도 무섭게 생각했습니다. 첫 단계에서 투자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주로 화교들입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중국 출신 화교들은 정말 부자들입니다. 그들은 중국어도 할 줄 알고, 영어도 구사합니다. 이 때문에 1980년대에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나라, 중국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화교들의 엄청난 성공을 지켜본 다른 외국인들도 중국에 대한 투자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중국 국가기관과 회사들은 약속을 잘 지켰고 외국인 재산을 몰수하지도 않은 데다, 투자자들이 마음대로 돈을 해외로 보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때문에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 더 많은 공장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선전’입니다. 선전은 홍콩 옆에 있는 도시인데, 1980년 선전은 인구가 수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지금 인구가 1천200만 명에 달합니다. 선전은 중국에서 제일 잘 사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 교수님, 지금도 중국 사람은 특구에 마음대로 가기 어려운가요?

[란코프 교수] 물론 아닙니다. 지금은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이사를 통제하기 위해서 주민등록을 매우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 없이 그냥 살 수도 있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전과 같은 도시는 집값이 아주 비쌉니다. 동거, 즉 다른 사람의 집에서 방을 빌려 사는 경우에도 중국 사람 대부분이 방값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큰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중국 젊은이들이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전의 인구는 여전히 늘고 있습니다.

- 지금 중국에서 경제특구의 의미와 비중은 어떤가요? 여전히 중요한가요?

[란코프 교수]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자본주의의 섬이라고 할 수 있었던 특구는 중국 경제발전을 이끄는 기관차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 전체가 커다란 특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섬은, 이제 자본주의 대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군요. 오늘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경제특별구역, 즉 특구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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