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옷차림 단속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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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_women_lesson_b 소령의 농촌 여성들이 읽기와 쓰기를 배우고 있다.
ASSOCIATED PRESS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1920년대 소련, 옷차림에 대한 단속 시작

- 특히 당원이나 간부들은 복장 기준 엄격

- 일반 국민은 1950년대 말부터 옷차림 단속 시작

- 스탈린 사망 이후 서양문화 확산, ‘스틸야기’운동 시작


최근 북한에서는 비사회주의 요소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포고문까지 발표하면서 자본주의적 경제 현상을 포함해 복장과 머리 모양 등을 엄중히 단속하고 있는데요. 이는 한국에 대한 동경심과 자본주의가 좋다는 사상적 동요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지로 풀이됩니다. 그렇다면 옛 소련에서 옷차림에 대한 단속은 어땠을까요?

- 교수님, 최근에 북한에서 나오는 보도들을 보면, 여성동맹 규찰대가 많아지고,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단속한다고 합니다. 소련이나 사회주의 진영의 역사를 볼 때 비슷한 일이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없지 않았지만, 북한만큼 심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처음 권력을 장악했을 때 자유로운 세계를 건설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와 소련에서 옷차림에 대한 이런저런 제한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 올바른 옷차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이 아니라 공산당 간부나 당원, 그리고 청년동맹 맹원들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마음대로 인기가 있는 옷을 입을 수 있었지만, 당원이나 맹원, 특히 간부라면 봉건주의, 부르주아계층의 냄새가 나는 옷을 입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 교수님, 당시에 당원이나 간부가 입지 말아야 하는 반동적인 옷은 무엇이었나요?

[란코프 교수] 여자 간부의 경우 유행하는 옷, 인기가 있는 옷차림을 하는 것은 공산당 간부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화장품은 조금 쓸 수 있었는데 화장을 많이 하면 비판 대상이 됐습니다. 또 보석이나 금은과 같은 것도 착용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남자 간부들이 양복을 입는 것은 조금 의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소련의 창시자인 레닌을 비롯해 혁명 당시 공산당의 고급 간부들은 양복을 입었습니다. 또 레닌은 코트를 늘 입었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말 들어와 양복은 조금 의심스러운 옷이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당시에 간부들이 입으면 좋은 옷차림은 무엇이었나요?

[란코프 교수] 북한 청취자 여러분들이 잘 아는 옷차림, 바로 인민복입니다. 지금까지 김정은도 많이 입고 있습니다. 북한 밖에서 인민복은 주로 중국의 모택동복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이것은 모택동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구소련에서 1910년대, 즉 제1차 대전 때부터 많이 입은 옷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양복을 거의 입지 않았고, 군복 아니면 인민복을 주로 입었습니다.

- 교수님, 1920년대 말부터 소련에서는 간부들의 옷차림에 대한 통제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평범한 인민들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교수] 1950년대 말까지 소련에서 공산당 간부나 당원이 아니면 옷차림에 대한 통제가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 말 들어와 공산당 당원이나 간부들이 입은 옷차림에 대한 통제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말해 1950년대 말까지 소련 사람들은 사실상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좋은 옷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통제와 규칙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1950년대 말까지는 옷차림에 대한 통제가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1950년대 말에는 어떤 일이 생겼나요?

[란코프 교수] 진짜 흥미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소련은 훨씬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이것을 ‘수정주의’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옷차림 부문에서는 통제가 갑자기 강화됐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당시에 소련에서 외국문화, 서양문화가 점차 확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스틸야기’라는 운동이 시작됐고, 그 운동에 참여하는 젊은 사람들은 북한처럼 규찰대의 단속 대상이 됐습니다.

- 교수님, ‘스틸야기’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여기 참가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란코프 교수] ‘스틸야기’라는 이름은 러시아말로 ‘유행에 따라가는 사람’, ‘옷차림의 형식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러시아말에서 스틸이라는 말은, 유행이나 옷차림 문화를 말합니다. 또 1950년대의 스틸야기 사람들은, 주로 대도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서양 영화나 잡지를 보고 거기에 나온 유행을 모방했습니다. 특히, 당시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이들이 매우 좋아했던 옷차림을 흉내 냈습니다. 당연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어렵게 사는 집의 아들,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옷을 주문 제작해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맞춤옷입니다.

- 교수님, 그 사람들은 단속 대상이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들을 단속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구소련에서 여맹 규찰대가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여맹 규찰대는 없었습니다. 여맹, 즉 여성동맹 자체가 소련에 없었습니다. 스틸야기를 단속한 사람들은 주로 청년 학생 규찰대입니다. 그들은 북한 여맹 규찰대만큼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스틸야기가 많이 가는 장소를 알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순찰했습니다.

- 규찰대에 단속된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란코프 교수] 북한보다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별로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냥 집으로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옷차림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규찰대가 옷을 가위로 찢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발된 젊은 사람이 속한 청년동맹 조직에도 통보할 수 있었습니다.

- 교수님, 청년동맹 조직이 이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스틸야기인 젊은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큰일이 아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별로 큰 일이 아니었지만, 신경을 조금 썼습니다. 1950년대의 소련에서 조직 생활, 특히 청년동맹 조직 생활은 북한보다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생활 총화와 같은 것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판을 받는 일은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닙니다.

- 교수님, 1960년대 들어 스틸야기는 어떻게 됐나요?

[란코프 교수]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스틸야기에 대한 단속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당시 소련에서 경제가 빠르게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입은 옷차림이 점점 좋아지고, 서양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1960년대부터는 아예 단속을 안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스틸야기들은 나중에 반공 운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고, 훗날 공산당 간부들 가운데 스틸야기로 지내던 사람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 단속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소련에서 청바지를 입는 것은 어땠나요?

[란코프 교수] 제가 자라난 1970-80년대의 소련에서 청바지를 입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소련의 섬유공업은 소련식 청바지까지 생산했습니다. 당연히 수입품만큼 품질이 좋지 않아서 돈이 있는 사람이면 수입산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렇군요. 오늘은 옛 소련에서 있었던 옷차림 단속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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