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혁명과 코민테른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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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tern_trotsky_b 1921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에서 트로츠키가 연설을 하고 있다.
AP Photo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공산주의 이론가, 전 세계의 공산주의 혁명 꿈꿔

- 최초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세계 혁명 발생하지 않아

- 공산주의 혁명 지원 수단 ‘코민테른’

-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원칙, 1920년대 각국에 공산당 창립에 큰 역할

최초 공산주의자들은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하고, 나라마다 공산당이 창립되는 세계혁명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되지 않았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교수님, 공산주의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 구호는 당연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구호는 북한에서도 많이 쓰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공산주의 운동 어디에서나 많이 쓰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공산주의 이론은 왜 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을 이처럼 강조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공산주의 역사는 1848년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기본원칙을 소개한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자를 발표했습니다.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굳게 믿었던 것은 조만간 오게 될 공산주의 혁명은 확실히 세계혁명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공산주의 이론가와 지도자들은 하나 같이 공산주의 혁명이 선진국에서 먼저 생기고, 이후 몇 년 이내에 전 세계로 확산할 줄 알았습니다.

- 그런데 역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은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했습니다. 또 러시아 혁명은 세계혁명이 되지 않았고, 프랑스나 영국, 미국에서도 혁명은 생기지 않았잖아요. 또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고요.

[란코프 교수] 물론 그렇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정권을 장악한 볼셰비키, 즉 러시아 공산당은 러시아에서만 혁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매우 당황했습니다. 당황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시 러시아는 발전된 나라, 즉 선진국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고, 절대군주제 나라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공산당 이론, 즉 하나님처럼 생각했던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사뭇 다른 일이었습니다. 맑스는 공산주의 혁명이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발전된 나라에서 생길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주장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두 번째 이유는, 러시아혁명이 생겼지만, 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고, 또 생길 조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 공산당 최고지도자인 레닌도, 그다음으로 중요한 지도자 트로츠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 트로츠키와 레닌이 당황했다고 하셨는데요. 스탈린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교수] 솔직히 말해서 당시에 스탈린의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은 정권을 장악한 다음 자신이 레닌과 거의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파렴치한 거짓말입니다. 그는 아직 10명이나 20명의 고급간부 중 1명에 불과합니다.

- 러시아 공산당은 예측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했는데요.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시에 논쟁이 아주 많았습니다. 레닌은 일시적으로 한 나라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탈린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했을 때도 가까운 미래에 세계혁명이 발생할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계혁명을 도와주고 촉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들은 세계 노동자들이 매우 어렵게 살고 있기 때문에, 세계혁명이 여러 나라의 피지배 계층을 구해줄 줄 알았습니다. 특히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완전히 부정했고, 자신의 국가 이익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러시아에서 지도 세력이 된 공산당도, 자기 나라인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

[란코프 교수] 이상한 말이지만, 그렇습니다. 흥미롭게도 러시아는 당시 세계혁명을 위해 자국의 국가이익을 완전히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20년 러시아는 세계혁명을 추진하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러시아는 매우 가난한 나라였지만, 그래도 1920년대 초 국가 예산의 4분의 1 정도를 세계혁명 지원을 위해 썼습니다. 공산당 간부들은 이 사실을 알았고, 이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교수님,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 혁명을 어떤 방향으로,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했나요?

[란코프 교수] 기본 수단은 ‘코민테른’입니다.

- ‘코민테른’이 무엇인가요?

[란코프 교수] ‘코민테른’은, 1919년에 창립된 국제공산당입니다. 코민테른의 기본목적은 몇 년 이내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공산당을 창립하는 것입니다. 코민테른 본부는 모스크바에 있었고, 코민테른 공작원들은 공산당이 아직 없는 나라에 가서 좌파 지식인들과 관계를 맺고, 소련식 공산주의 사상을 설명했습니다. 또 그 나라에 있는 좌익 단체들과 관계를 맺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스크바 본부에서 막대한 공작금을 받았고, 필요하면 인쇄시설과 도서도 지원받았습니다. 그 나라에서 유격대 활동과 무장투쟁을 시작할 계획이 있을 때는 러시아에서 무기도 가져왔고, 심지어 사복 군사 전문가들까지 파견됐습니다. 당연히 다 가명을 쓰고, 위조여권을 썼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1920년대 초 소련의 국가 예산의 4분의 1 정도가 세계 공산화 지원을 위해 쓰였습니다.

- 대단했군요. 그렇다면 교수님, 해당 국가에서 여러 좌익 단체들은 소련에서 공작금과 무기, 교육 등을 받고 혁명 활동을 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조금 그렇지 않습니다. 코민테른은 한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모든 좌익 단체는 하나의 공산당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공산당은 코민테른 본부, 즉 모스크바가 지도적 역할을 인정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일국일당 원칙입니다. 즉 나라마다 공산당이 하나만 있을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따라서 해당 국가의 좌익 단체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치열하고 지저분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서로를 마구 비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때문에 1920년대 중반 들어서는 세계에서 공산당이 없는 나라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코민테른의 활동은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중국공산당과 조선공산당도 소련과 코민테른의 활동으로 창립됐나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그렇습니다. 1925년에 창당된 조선공산당의 창시자들이 소련의 코민테른에서 많은 돈과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조선공산당이 생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국도 비슷합니다. 사실상 중국공산당의 진짜 창시자는, 보이친스키라는 이름의 소련 공작원입니다. 훗날 모스크바에서 중국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됐고, 제 스승님 중의 한 분의 지도교수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공작원의 제자의 제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오늘날 중국이나 북한은 애초 소련에서 받은 지원과 원조를 인정하지 않고, 민족주의에 의한 자신의 위대성만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공산당은 원래 코민테른에서 나온 공작원들의 활동 때문에 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오늘은 세계 혁명과 ‘코민테른’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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