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국가들의 외국 침공
2020.06.30
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주인 6월 25일은 바로 한국전쟁 개전일이었습니다. 6월 25일을 맞아 북한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해외 침략에 대해 살펴보면 어떻겠습니까?
란코프 교수: 네 좋겠습니다. 북한은 오늘날도 자신들이 1950년 6월 15일에 남한과 미국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물론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미 1990년대에 공개된 소련문서에는 북한이 남침을 준비하는 자료가 아주 많습니다. 흥미롭게도 얼마 전에 제 제자는 러시아 기록보관소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수십년전 소련공산당 중앙 문서입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문서는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한국전쟁 개전 이후에 소련외교부, 그리고 당중앙일꾼들은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들을 위해서 극비 참고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자료는 매우 체계적으로 북한이 남침을 준비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한국전쟁의 시작을 교과서처럼 아주 잘 정리한 문서인데, 이러한 문서는 매우 드뭅니다.
기자: 그런데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늘 자신들이 세계 평화를 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일까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강조해야 하는 것은 당시에 공산국가들은 자신들이 침략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해방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산주의사상은 혁명사상입니다. 기본 목적은 처음부터 세계혁명입니다. 흥미롭게도 소련 국가가 생겼을 때, 레닌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그저 제정러시아를 대체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혁명을 위한 전진기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몇 년 이내에, 몇 십년 이내에 세계국가들 모두 다 소련에 가입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공산당 비밀 문서가 아닙니다. 레닌과 고급 간부들이 공개적으로 주장한 내용입니다. 한기자님은 혹시 소련 국장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자: 없습니다. 아마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물론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데요. 낫과 망치 밑에는 지구가 그려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소련의 목적은 세계를 통치하는 국가를 만드는 목적입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 이러한 결정을 한 사람들은, 이러한 세계통치 주장을 창피한 일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1920년대 소련의 공식자료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매우 공개적으로 있었습니다. 당시에 소련공산당 사상가들도, 다른 나라 공산당 사상가들도 이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계혁명을 통해서 세계를 구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그런데 교수님, 소련공산당의 세계통치 주장은 다른 나라들을 속국이나 식민지로 만든다는 생각이 아니었습니까?
란코프 교수: 당시에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얼마 후엔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도 1920년대 공산주의자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습니다. 소련이 전세계를 통치한다면, 전세계 인민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1950년 6월 남한을 공격한 김일성 국가 주석도, 스탈린과 모택동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나중에 할 이야기인데, 소련지도부는 갈수록 세계통치와 세계인민 해방에 대한 관심이 작아졌습니다. 1950년 스탈린 대원수는 아주 냉정한 국제정치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모택동 주석은 처음부터 그냥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입니다. 하지만 김일성, 박헌영은 자신들을 해방자로 믿었습니다.
기자: 다시 1920년대로 돌아가지요. 소련은 무력으로 직접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세계를 해방시킬 계획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소련은 1920년대 초부터 군대를 동원하기 시작합니다. 첫 대상은 캅카스산맥 지역입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즈음에 캅카스산맥 지역에서는 3개의 독립국가가 생겼습니다.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입니다. 이 지역 모두 러시아제국의 영토인데, 하지만 이들 지역에서 슬라브계 러시아인은 거의 살지 않았습니다. 1917년 이후에 이들 국가는 독립선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1920년에 소련은 그루지야와 수교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아직 소련의 국명은 러시아연방공화국인데, 곧 바뀝니다. 하지만 1921년에 소련군대는 이들 국가를 공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련 공작원들이 이들 국가 내부에 침투해서 폭동, 파업을 많이 부추겼습니다. 물론 주민들 가운데도 소련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련공작원들의 활동은 대성공입니다. 하지만 역시 핵심은 이 지역으로 들어간 소련군대입니다. 이 국가들은 결국 불과 4년만에 독립을 뺐기고 소련에 합병되었습니다.
기자: 소련은 1920년에 그루지야와 수교까지했는데 불과 1년만에 침공했습니다. 당시에 국제사회는 무엇을 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시에 국제사회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 많은 나라들은 캅카스 산맥 지역을 소련 영향권으로 보았습니다. 소련공산당은 민족자결권을 주장했지만, 러시아제국 지역은 자기 영향권이라는 태도입니다. 예외는 발틱3국과 핀란드 그리고 폴란드입니다. 당시에 소련은 이들 지역도 공격했는데, 힘이 부족해서 합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소련공산당은 러시아제국 시대 국경을 회복하려 싸웠습니다.
기자: 교수님, 1920년대 소련공산당이 점령하지 못한 지역은 소련군대가 싸워서 이기지 못한 지역입니다. 1950년 남한을 침공한 북한 노동당도 힘이 부족해서 남한을 점령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당연히 군대와 무기가 필요합니다. 냉전시대에 세계 어디든지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친 국가들은 충분한 군대가 있거나 아니면 외국의 지원을 받은 국가들입니다. 하지만 외국을 침략하는 것은 공산당 뿐만이 아닙니다. 국가들은 가끔 외국을 침공하고는 합니다.
기자: 1920년대 소련공산당은 옛날 러시아제국 영토를 회복하려 외국을 많이 침공했는데요. 하지만 소련이 아니었던 지역을 침략한 적도 있습니까?
란코프 교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미 말한 것처럼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은 이것이 침략이 아니라 해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식민지가 되었는데요, 하지만 두 개의 독립 왕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히바 왕국과 부하라 왕국입니다. 이들 왕국은 러시아제국의 간섭을 많이 받았지만 독립국가였습니다. 하지만 1920년에 소련군대는 이 지역으로 들어가서 왕국들을 합병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공산당은 왕국들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고 유격대 활동을 부추겼습니다. 그래도 역시 핵심은 소련군대의 활동이었습니다.
기자: 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