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역사의 개혁주의자, 흐루쇼프 서기장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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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쇼프 서기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 주석을 배웅하고 있다.
흐루쇼프 서기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 주석을 배웅하고 있다.
AP Photo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흐루쇼프 서기장, 국가의 이익보다 인민의 이익 더 중요

- 해외 식량 수입해 인민들 배불리 먹이기도

-사회주의 이론을 진심으로 믿었던 인물

-흐루쇼프 서기장 이론, 북한 체제에 큰 위협


소련의 공산주의 역사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입니다. 그는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권력 남용, 재판도 거치지 않고 진행된 집단 처형 등을 비판한 개혁주의자인데요. 그의 생각은 소련뿐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북한의 김일성도 흐루쇼프 서기장을 비난하며,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는데요. 오늘은 흐루쇼프 서기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교수님, 북한의 역사가들이 소련 역사의 인물 가운데 흐루쇼프 서기장만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죠. 그들은 흐루쇼프 서기장이 수정주의자이고, 그가 수정주의의 우두머리라고 주장합니다. 우선 수정주의가 무엇인가요?

[란코프 교수] 일단 제가 볼 때 북한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학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결코 학자가 아닙니다. 학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학자는 다른 무엇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진실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역사학자 중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가끔 고대역사나 중세역사를 공부하는 사람 중에 어느 정도 학자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노동당과 정부의 명령에 따라 민족주의를 아주 많이 강조하고, 조선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주장 외에 다른 주장을 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민족주의 때문에 생긴 거짓말과 왜곡을 제외하면 고대나 중세 역사를 배우는 학자들은 학자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나 현대 역사를 다루는 사람들은 결코 학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한 사람, 정부와 특권층의 지시에 따라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선전일꾼들일 뿐입니다. 그들을 만약 학자라고 부른다면, 세계 곳곳에 있는 수백만 명의 학자들에 대한 큰 모욕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로 위장한 북한 선전일꾼들이 수정주의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흐루쇼프는 북한에서 권력을 세습한 지배계층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 교수님, 어떤 사람들은 흐루쇼프 서기장이 1953-64년까지 사회주의를 위협하는 정책을 펼쳤고, 사회주의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는데요. 이 말이 사실인가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스스로 역사학자라고 말하는 북한 선전일꾼들이 떠드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자신의 권력과 국가의 힘만 생각했던 스탈린과 달리, 흐루쇼프는 어릴 때부터 혁명운동에 참여했고, 사회주의 이념을 신실하게 믿었습니다. 제가 볼 때 이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믿던 사회주의 이념은 미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주의식 중앙계획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만큼 잘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흐루쇼프는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된 다음에 스탈린 시대에서 심각하게 왜곡된 사회주의를 고치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가의 이익보다 인민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 교수님, 흐루쇼프는 국가이익보다 인민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란코프 교수] 소련의 도시를 가보면 모스크바가 아닌 시골 도시에는 스탈린 시대에 지은 살림집이 아예 없습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공장이나 국가 기관들, 중고급 간부들과 특권계층만 살 수 있는 사치스러운 주택만 지었습니다. 하지만 흐루쇼프 시대에는 수천만 명의 소련 공민이 잘 살 수 있는 주택 건설이 대량으로 이뤄졌습니다.
지금까지도 러시아에서는 흐루쇼프 시기에 소련이 해외에서 식량, 특히 곡물 수입을 시작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인민을 위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소련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을 때에도 스탈린은 중화학 공업의 발전을 위해 식량을 해외로 많이 수출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흐루쇼프 시대에 소련은 해외로 지하자원과 공업 설비를 수출하고 이렇게 얻은 수입으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수입했습니다.

- 교수님. 흐루쇼프 시대에 소련의 농업 상황은 여전히 어려웠고, 식량도 수입했습니다. 왜 흐루쇼프 서기장은 1980년대 초 등소평의 중국처럼 포전담당제를 도입하지 않았을까요? 또 왜 콜호스와 같은 협동농장을 해체하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이유가 있습니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사회주의 이론을 정말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개인 농사가 반동적인 줄 알았습니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콜호스가 매우 사회주의적인 생산 형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1970-80년대 중국 경제를 살린 등소평의 세계관은 흐루쇼프와 사뭇 달랐습니다. 등소평은 흑묘백묘론을 믿었는데, 흑묘백묘론은 무엇인가요? 흰 고양이이든 붉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흐루쇼프 서기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붉은 고양이만 쥐를 잘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흐루쇼프 서기장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흐루쇼프 서기장은 가능한 강한 국가보다 인민의 생활을 더 중요히 여겼습니다.

-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흐루쇼프 서기장은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데 북한당국은 왜 흐루쇼프 서기장을 싫어하나요?

[란코프 교수] 김일성은 인민들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강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인민 생활을 개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민 경제보다 중화학 공업을 훨씬 더 중요시했습니다. 반면, 김일성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흐루쇼프 서기장의 정책에 대한 지식이 1950-60년대 북한에 많이 확산됐다면, 김일성 1인 독재체제에 대한 도전을 불러왔을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교수님, 흐루쇼프 시대에 소련은 여전히 끔찍한 독재국가가 아니었나요?

[란코프 교수] 물론 당연히 독재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스탈린 시대보다 많이 자유화됐습니다. 스탈린이 죽었을 당시,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사람은 120만 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64년에 흐루쇼프 서기장이 퇴직했을 당시 정치범의 숫자는 1천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10년 동안 정치범수용소, 즉 북한식으로 말하면 관리소 수감자 전체의 99.9%가 석방됐습니다.
최고지도부의 구조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스탈린은 모든 국사를 혼자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흐루쇼프 서기장은 집단지도원칙을 주장했습니다. 당 중앙 정치위원, 즉 10~20명이 모여 국가의 원칙을 결정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독재이지만, 북한처럼 1인 독재가 아니라 집단독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김일성은 북한 고급간부들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에게 정치란 바로 자기 자신의 독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김일성과 선전일꾼들은 흐루쇼프 서기장과 수정주의자들이 북한 모략, 비방, 중상한다고 열심히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 네. 오늘은 란코프 교수님과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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