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공산주의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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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스티노 네토 앙골라 초대 대통령.
아고스티노 네토 앙골라 초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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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사회주의 건설 의지 선언했지만, 일반 공산주의와 거리 멀어

- 가능한 해외 원조나 지원 목적으로 공산주의 선호

- 지원 떨어지면 다시 민주주의로 갈아타기도…외교적 선택

- 오늘날 사회주의∙공산주의사용 안 해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면 흔히 옛 소련이나 중국, 또는 동유럽 국가들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하지만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 가운데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격은 조금 달랐다고 하는데요. 사상과 이념보다는 현실적인 면에서 공산주의를 좆은 면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공산주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교수님, 우리가 공산주의를 이야기할 때 주로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이야기했는데요. 하지만 냉전 시대에 발전도상 국가들도 적지 않은 공산주의 성향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운동이 바로 ‘쁠록불가담운동’인데요. 발전도상 국가들 가운데 공산주의 국가가 어느 정도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이 문제에 대해서 역사학자들 가운데 논쟁이 많습니다. 1960-70년대 새로 생긴 나라들이 독립을 선언한 이후 사회주의 국가를 언젠가 건설할 의지가 있다고 선언한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이러한 나라가 많았는데요. 예를 들어 앙골라, 모잠비크 등입니다. 그러나 이들 나라를 공산주의 국가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습니다.

- 스스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나선 나라들을 공산주의 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가요?

[란코프 교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산주의와 거리가 멉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은 사회주의라고 말했을 때, 당시에 인기가 매우 높았던 말을 그저 입버릇처럼 반복했을 뿐입니다. 이들 국가에서 국가 사회주의식 경제나 사회구조를 볼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들 국가 대부분에서 대기업을 국유화했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개인 자산이고, 농업 집단화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이들 나라는 말로만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아마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일당제 정치구조를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공산당식 정치체제를 만들지 않아도 독재정권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60-70년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말은 독재와 주민감시를 정당화하기 위한 매우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당시에 사회주의를 운운했던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외교 때문에도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 외교 때문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야기를 했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가요?

[란코프 교수] 대부분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은 해외에서 지원이나 원조를 가능한 한 많이 얻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냉전 시대를 매우 환영했습니다. 특히 소련과 중국이 서로 다투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아프리카 독재자들에게 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필요만큼 지원이나 원조를 받지 못하자, 소련으로 갔습니다. 소련에서 지원을 못 얻으면, 중국으로 갈 수 있다는 암시를 줬습니다. 당시에 1970-80년대 미국과 중국은 외교적으로 사실상 거의 동맹 관계에 있어서, 둘 다 소련에 크게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지원과 원조를 얻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운운하고, 중국에서 지원을 얻기 위해 모택동 사상을 극찬했습니다. 강대국이 듣고 싶은 말을 하면, 아주 쉽게 막대한 지원을 그냥 얻을 수 있었습니다.

- 그러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어떤 나라들이 사회주의를 운운해서 소련이나 중국에서 지원을 받고, 다른 국가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운운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 지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2개 진영, 중국까지 고려하면 3개 진영이 생겼다고 할 수 있나요?

[란코프 교수] 대체로 말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첫째로 이와 같은 외교공작을 하는 나라들은 아시아에서 별로 많지 않았고, 압도적으로 아프리카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은 수많은 경우 미국 측에서 소련측으로, 소련 측에서 중국 측으로 넘어갔습니다. 매우 대표적인 사례는 소말리아입니다. 소말리아는 원래 친미, 친서방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소말리아 정권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와 관계를 맺고, 소말리아 독재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큰 소리로 운운했습니다.
그러나 1977년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소말리아는 이웃 나라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 소말리아도 에티오피아도 소련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하는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진짜 열심히 싸웠습니다. 소련은 에티오피아와 관계가 더 가까웠습니다. 그 때문에 78년에 소말리아는 소련과 단교하고, 소련은 수정주의이고 사회주의의 배신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때부터 중국에서 지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소말리아는 얼마 후 중국에서 필요만큼 돈과 지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얼마 후 민주주의를 선언하고 미국과 다시 관계를 맺었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 교수님, 소말리아는 원래 미국을 찬양하고, 그 다음에 소련을, 중국을 그리고 다시 미국을 찬양했습니다. 진짜 양심이 없는 무원칙정책으로 보이는데요. 놀라운 일이 아닐까요?

[란코프 교수] 당시에 아프리카 기준으로 보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벌써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대부분의 경우 사회주의 이야기이든 민주주의 이야기이든, 그저 돈을 쉽게 얻기 위한 놀음이었을 뿐입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한 나라들이든, 소련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한 나라들이든 사실상 정치구조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경제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한 나라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나요?

[란코프 교수] 1970년대 들어와서 사회주의라는 말과 이념에 대한 실망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련은 미국보다 잘 못살아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만큼 많은 돈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소련식 사회주의를 모방했을 때 좋아진 것이 없지 않았지만, 나빠진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1970년대 들어와 누구든지 볼 수 있는 사실은, 소련이나 중국을 모방하고 공업을 국유화한 발전도상국 대부분은, 시장경제를 선택한 발전도상국에 비해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당시에 시장경제를 개발하려 노력한 발전도상 국가 대부분도 실패였습니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1990년대까지 좋은 발전을 이룬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볼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를 시도한 나라이면 경제실패가 더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공산주의에 대한 의심과 실망감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 교수님, 그렇다면 지금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아프리카 나라들이 없나요?

[란코프 교수] 대부분의 경우 사회주의 이야기를 90년대부터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헌법에서 삭제했으며, 삭제하지 않더라도 사회주의 이야기를 거의 안 합니다. 이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네. 그렇군요. 오늘은 란코프 교수님과 함께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공산주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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