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인들의 소비생활 (2)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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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러시아 여성이 모스크바의 대형 국영 백화점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한 러시아 여성이 모스크바의 대형 국영 백화점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REUTERS

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지난 시간에는 소련의 60-70년대에 소비품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자동차는 구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인민들이 얻기 힘든 것이 자동차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란코프 교수: 흥미로운 질문이십니다. 소련 역사를 보면,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별로 변화가 거의 없는 시대였습니다. 브레즈네프 시대입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바로 제 어린 시절 그리고 대학생 시대입니다. 그래서 저의 입장에서 당시에 소련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심하지 않았지만 있었습니다. 잘 사는 집이면 자신의 성공을 당연히 보여주면 좋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부자가 된다면 조용히 소박하게 자신의 성공을 즐기는 것보다, 이웃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합니다. 당시에 소련에서 성공을 보여주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전: 북한에서는 고급 간부들이 고급 외제 시계 찬 모습이 외부세계에 보도돼 주목을 끌 곤 했었는데요, 혹시 고급 시계도 출세의 한 상징이었을까요?

란코프: 아닙니다. 당시에 소련에서 고급 손목시계가 있기는 했는데 오늘날 자본주의나라들처럼 중요한 상징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 성공을 제일 잘 표시하는 상징물은 당연히 자가용 승용차였습니다. 둘째는 소위 말하는 협동주택인데요. 협동주택은 국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허락을 받은 다음에 자기 돈으로 구입하는 주택입니다. 보통 국가가 공짜로 주는 주택보다 수준이 높았습니다. 셋째는 시골에서 좋은 별장이 있는 것입니다. 세 가지
다 있다면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집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잘 사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와 같은 대도시라고 해도 이와 같은 출세의 상징물이 있는 집은 20개나 30개 중에 하나뿐이었습니다.

전: 협동주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원래 사회주의 국가에서 집은 국가가 공짜로 무상으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란코프: 조금 다릅니다. 소련에서 1930년대말부터 1950년대말까지 주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1958년에 소련 내각과 당중앙의 결정에 따라서 협동주택 건설이 허락되었습니다. 협동주택은 주로 수십호, 가끔 수백호까지 같이 사는 규모가 큰 다층 건물이었습니다. 희망자들은 등록을 받고, 돈을 냈습니다. 사람들은 한번에 돈을 내지 않았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나중에 15년이나 20년동안 받은 돈을 은행에 갚아야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자본주의 나라와 매우 비슷한 구조인데요.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협동주택 후보자로 등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있는데, 제일 중요한 조건은 바로 신청할 때 살고 있는 주택입니다. 지금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협동주택에 가입하지 못 했습니다.

전: 자본주의 국가의 주택구매 융자와 비슷하다니 흥미롭습니다. 협동주택은 당시에 어느 정도나 비쌌나요?

란코프: 1980년을 전후하여 방1개 집, 즉 1-2명이 살 수 있는 작은 집이면 가격이 3000-4000루블이었습니다. 보다 더 큰 집은 5000-7000 루블입니다. 흥미롭게도 지금 서방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당시에 집은 자동차보다 조금 쌌습니다. 그래도 작은 돈이 아닙니다. 당시에 평균월급은 180루블정도인데요. 일반인들이 2,3,4년 정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자동차는 비싼 고급 제품이 있는가 하면 중급이나 싼 것도 있게 마련인데요 아무래도 비싼 게 출세 과시에는 적격이었을 것 같습니다.

란코프: 당연히 그렇습니다. 물론 인기가 많은 승용차는 당연히 수입차입니다. 하지만 소련에서 80년대 말까지 수입차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고급간부도, 돈을 잘 버는 작가도, 비법적으로 장사를 하는 돈주도 수입차를 거의 못 탔습니다. 최고지도부가 독일 수입차를 아주 좋아하는 북한과 달리, 소련 지도부는 국산 고급차를 탔습니다. 소련 국산차 가운데 제일 인기가 높은 차는 ‘볼가’인데요. 지금도 북한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볼가의 가격은 당시에 10000루블 이상입니다. 일반 노동자가 5년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돈입니다. 보다 조금 더 싼 차는 지굴리입니다. 라다라고도 부릅니다. 가격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는데, 1980년대 7000-8000루블 정도였습니다. 경차도 있었고, 주로 자포로저츠라고 불렀습니다. 인기는 조금 있었는데, 가격은 3000-3500루블 정도인데, 나중에 아주 유명해진 사람도 젊은 시절에 자포로저츠를 탔습니다.

전: 그랬습니까? 그 유명해졌다는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하네요.

란코프: 1972년에 좀 어렵게 사는 레닌그라드의 서민 가족에서 믿기 어려운 행운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30코페이카로 산 복권이 당첨되었습니다.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었는데요. 복권의 경품은 바로 자파로저츠 경차입니다. 그 복권을 산 중년 여자는 당시에 대학생 아들에게 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학생은 자파로저츠 경차에 아주 자부심이 많았습니다. 그 대학생의 이름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었습니다.

전: 그렇군요. 지금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바로 대학생 시절에 자파로저츠를 탔었군요. 당시 소련에서도 복권이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란코프: 네 있었습니다. 사실상 몇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매월마다 전 소련 복권이 있었습니다. 당첨되면 돈을 주기도 하는데, 주로 경품을 주었습니다. 제일 비싼 경품은 얼마전에 언급한 지굴리입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볼가 자동차를 경품으로 받을 수 있는 복권도 있었습니다. 제가 벌써 말씀 드린 것처럼 몇 개의 복권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매년 몇 번씩 볼가 자동차 1대를 경품으로 주었습니다.

전: 보통 자본주의에서는 복권에 당첨되면 엄청난 금액의 돈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당시 소련에서 복권 당첨 때 돈은 주지 않았나요?

란코프: 돈을 주는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로 경품을 주었습니다. 돈을 주는 것은 너무 자본주의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가끔 당첨된 사람들은 경품을 팔기도 했지만, 대부분 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동차는 돈이 많다고 해도 얻기 아주 어려운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자동차나 별장, 주택이 성공을 상징하는 재화였던 것 같은데요, 집안 꾸미기는 어땠을까요? 외제 가구들도 부의 한 상징 아니겠습니까?

란코프: 가구는 흥미롭습니다. 남 부럼 없이 잘 사는 집이면 수입가구가 있었습니다. 주로 동독, 체코 등에서의 수입가구입니다. 또 70-80년대 매우 비싼 고급 녹음기, 가끔 고급 수입 녹음기, 가끔 수입 텔레비전까지 잘 사는 집에 있었는데요. 당시에 고급 수입 일제 녹음기는 미친 듯이 비쌌습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 잘 사는 집에서 책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 책을 많이 읽을지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방문객에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전: 교수님, 당시 소련 사회에서는 가정집에서 깡통을 전시하는 유행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란코프: 그렇습니다. 잘 사는 집에서 수입맥주 병이나 캔이 전시되었습니다. 이유는 그 사람들이 고급 외국 술까지 마실 수 있다는 암시입니다. 돈을 주고 수입 술병이나 맥주병까지 전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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