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시대의 민간항공(2)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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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지난 1991년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AP Photo

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 교수님, 지난 시간에 우리는 소련시대의 민간항공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인구 수천 명이나 수만 명 정도인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들에도 비행장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것은 국가로 봐서는 이익이 없는 사업이 아닐까요?

란코프: 솔직히 말해서 답변하기가 약간 복잡합니다. 당시에 국가사회주의경제이니까 모든 가격은 간부들이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시에 간부들이 설사 원한다고 해도 적절한 비행기표 가격을 정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둘째로 물론 국영 민항 회사는 보이지 않는 손실이 많지만, 지역 주민들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까지 얻은 게 많았습니다. 1990년대 들어와 소련이 무너진 다음에, 지방 비행장은 거의 다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비행장이 남아있는 마을이나 도시도 비행기표 가격이 옛날보다 비싸졌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소련시대 비행기 문화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일수록 그렇습니다.

전: 그렇군요. 그럼 그 당시 항공권, 그러니까 비행기 표 값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합니다. 기차표값 보다는 비쌌을 것 같은데요.

란코프: 노선별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비행기 표 값은 보통 기차표보다 2배 비쌌습니다. 예를 들면 1970년대말 기준으로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비행기를 타면, 요금은 130루블 정도였습니다. 기차표 값과 비교하면 조금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기차에서 당시에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네 개의 열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급수에 따라 가격이 달랐습니다. 그래도 대체로 말하면 비행기표는 기차표보다 2-3배 정도 비쌌습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련의 광활한 지리를 감안하면, 대체로 비행기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전: 그런데 교수님, 지난번에 소련 인민들의 70년대 말 평균 월급이 150루블이라고 하셨는데요. 월급을 감안하면 비행기 표 값이 결코 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는, 매우 땅이 넓은 나라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입니다. 예를 들어 당시에 모스크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흑해로 여행할 경우 비행기표 값은 20-30루블이었습니다.

전: 기차 값이 비행기 값보다는 두 세배 싸다고 하셨으니까 그렇다면 모스크바에서 흑해로 기차를 타고 가면 10루블 정도가 되나요?

란코프: 아마 조금 더 비쌀 것 같습니다. 15루블이나 17루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당시에 흑해로 여행을 많이 갔는데, 거의 매년 갔습니다. 우리는 노동자집이어서 비행기를 많이 안탔습니다. 돈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비행기를 타고 흑해로 가는 것은 좀 돈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차를 타고 간다면 남러시아 철도역에서 싼 값에 맛있는 과일을 많이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장사를 하는 아줌마들은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로 가는 기차 승객들에게 과일을 팔려고 철도역으로 갔고, 그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나 배, 살구, 호두 등을 아주 싸게 팔았습니다. 흥미롭게도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승객을 대상으로 한 이런 과일 판매행위가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전: 그런데 교수님, 조금 전에 기차는 4개 등급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비행기는 어땠을까요?

란코프: 소련 국내선 여객기는 모두 다 같은 좌석이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모두 일반석입니다. 물론 국제선 비행기는 세계기준에 따라서 일반석도 있었고 보다 훨씬 더 비싸고 편리한 비즈니스석, 그리고 제일 비싼 일등석도 있었습니다. 국내선에도 일부 노선에서는 비즈니스석과 같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모스크바에서 흑해지역으로 가는 비행기는 이러한 구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행기는 등급이 없는 모두 일반석입니다.

전: 그렇다면 지체 높은 간부든 말단 공무원이든 같은 일반석에 앉아 갔다는 말이네요.

란코프: 그렇습니다. 당시에 고급 당 중앙 간부이든 유명한 배우이든 비행기 안에서는 아무런 특권이 없었습니다. 비행기 좌석 배치는 진짜 평등한 사회주의 비행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높은 간부들이나 유명 인사들은 대체로 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좋은 대우를 받기는 했습니다.

전: 소련 사람들은 비행기를 많이 탔다고 하셨는데요, 어느 정도였습니까?

란코프: 1970년대 기준으로 연간 5000만 명이 비행기를 탔고, 1990년에 거의 1억명의 승객들이 있었습니다. 소련이 무너진 다음에 소련 민항도 많이 도산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와서는 러시아에서 옛날 소련보다 더 많이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항공에서 어려운 과도기는 다른 분야보다 더 어렵고 더 길었습니다. 기본 이유는 소련시대 비행장, 비행기, 여러 가지 시설 모두가 절약형으로 제조되지 않았고, 국가사회주의에서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자 다 무너져 버렸고, 사실상 거의 모두 새로 개발해야 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련시대 비행기는 순수한 기술적 입장에서 1960년대 중엽까지 미국이나 유럽 비행기를 능가하는 훌륭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름 낭비가 너무 심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에 소련에서 비교적 기름을 절약하는 비행기로 생각된 TU-154를 생각해 봅시다. TU-154 비행기는 한 시간당 5400kl의 기름을 썼습니다. 같은 시기에 개발된 미국 보잉727은 규모도 승객 숫자도 대체로 비슷하지만, 한 시간당 연료가 절반밖에 안 드는 2600kl였습니다.

전: 오늘날에도 비행기 사고는 가끔 발생합니다. 아까 소련 비행기는 폭격기를 개조한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기술적인 문제로 추락하는 일은 없었습니까?

란코프: 당연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소련 비행기 대부분은 당시 기준으로는 나쁜 비행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1950-60년대 비행기는 우리가 볼 때 너무 위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나 당시에 비행기 추락 사건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폭격기를 개조한 여객기도 가끔 아주 위험했습니다. 1960년대의 낮은 안전 기준으로도 위험했습니다. 예를 들면 TU-16를 기반으로 개조한 TU-104형은 참 위험한 비행기였습니다.

전: 얼마만큼이나 위험했을까요?

란코프: tu-104호는 200대 정도 생산되었는데, 그 중에 37대가 추락사고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소련 비행기들은 당시 기준으로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어쨌건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는 1970년을 전후하여 tu-104 비행기 운항을 중지했습니다.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테러 때문에도 가끔 추락이 생겼습니다. 한편으로 tu-104형은 폭격기를 개조한 것이어서, 내부가 좁았고, 매우 시끄러웠고, 승객 입장에서 매우 불편했습니다.

전: 교수님, 소련 민간항공의 승객에 대한 서비스, 봉사 수준은 어땠을까요? 공산국가 대부분에서는 봉사 수준에 문제가 있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항공사는 국영항공사, 즉 아에로플로트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항공사는 승객을 확보하겠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비행장도 매우 불편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불편합니다. 음식도 좋지 않았습니다. 승무원들은 예절을 잘 지켰지만, 대체로 봉사수준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당시에 소련 어디에나 비슷했습니다. 소련사람들은 외국의 봉사수준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사실상 이런 낮은 수준의 봉사를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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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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