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소련 국민이 공산주의를 지지한 이유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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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가 지난해 4월 방영한 구소련영화 '사복 입은 사람'의 한 장면.
조선중앙TV가 지난해 4월 방영한 구소련영화 '사복 입은 사람'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제공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1920년대 소련 국민이 공산주의를 지지한 이유>
-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진 이후 혼란스러웠던 시기
- 지주들의 땅을 몰수에 농민에게 주겠다는 약속에 공산당 지지
- 1920년대 말까지 공산당 지지율 상승
- 20년대 말, 토지약탈∙대기근으로 공산주의에 등 돌려
- 독일군 침략전쟁 승리 이후 40년대 말~50년대 초 공산주의 지지율 가장 높아


-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8년을 맞아 교수님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돼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선 란코프 교수님은 구소련 출신이십니다. 러시아 사람이시죠. 구소련은 공산주의의 모국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당시 소련 국민이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은데요. 우선 1917년으로 되돌아가 볼까요? 당시 러시아에서 10월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했을 때 러시아 사람은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란코프 교수] 이것은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1917년에 러시아를 300년 동안 통치해 온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습니다. 당시 매우 심각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1920년대 군벌 시대였던 중국이나, 지금의 시리아 또는 리비아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사람은 공산당도, 그렇다고 백군으로 알려진 반공세력도 별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본적인 소원은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위기가 올 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지요. 그래서 당시에 공산당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산당은 정권을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당시에 미국, 일본, 영국 등이 공산당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러시아로 군대를 파병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과 매우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사실 미국, 영국, 일본은 반공세력을 많이 지원하려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파병부대는 너무 작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공산당 세력은 처음부터 거의 모든 구 제정러시아의 군수공업과 군대 창고 등을 장악했습니다. 이것을 고려하면 공산당의 승리는 기적과 같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 그렇다면 당시에 많은 사람이 공산당을 지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란코프 교수] 이유는 간단합니다. 1917년 당시 러시아에서 농민의 비중은 87%였습니다. 공산당의 기본 약속은 무엇일까요? 지주들의 땅을 다 몰수해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토지개혁입니다. 당연히 농민들은 이러한 약속을 믿었고 공산당을 많이 지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은 제정 러시아의 빈부격차와 전제군주제, 그리고 귀족들의 특권을 보면서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맑스주의자들은 누구든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1920년대 들어 원래 공산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러시아의 애국주의자들도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공산당 정권이 러시아를 빠르게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공산당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공민 전쟁 때 대부분 사람은 숭고한 이념보다 살아남는 방법에 관심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도 공산당에 대한 지지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농민들은 땅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노동자들은 노동계급이 통치하는 사회를, 지식인들은 낙원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1920-30년대 들어와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여전히 공산당을 지지했나요?

[란코프 교수] 1920년대 말까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지지는 계속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1920년대 초 공산당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해외로 많이 도망갔습니다. 물론 공민 전쟁 때 피살된 사람들도 있고, 공산당의 테러로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수는 해외로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국내에는 반공산당 활동을 할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둘째는, 1920년대부터 공산당이 초등교육을 빠르게 확대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소학교에서 어린이들은 공산당이 시키는 데로 사상교육을 받았습니다. 또 소련의 상황은 당시에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기근이 없었고요. 생활 수준이 구라파 국가에 비해서 매우 낮았지만,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당연히 땅을 준 공산당에 대해 농민들은 매우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소련은 극소수 간부들이 정치를 결정하는 독재국가였지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체제를 반대할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 1920년대 말 공산당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럴까요?

[란코프 교수] 공산당에 대한 생각이 바뀐 이유는 간단합니다. 농업 집단화와 집단화가 초래한 기근 때문입니다. 1930년대 초 농민들은 모든 땅을 국가에 바치고, 공산당이 조직한 콜호스, 즉 협동농장에 가입했습니다. 다시 말해 공산당은 1917-18년에 농민들에게 주었던 땅을 다시 약탈했습니다. 물론 농민들은 이것을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당시에 스탈린과 공산당 지도자들이 농업집단화를 시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맑스-레닌주의를 많이 인용했지만, 사실상 공업화를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또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위해 필요한 공업 설비와 기술을 미국과 독일 등 해외에서 수입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외화입니다. 당시에 소련의 외화벌이를 위한 방법은 식량 수출 뿐이었습니다. 석유, 철광석 등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는 농민들이 개인적으로 농사를 하지 않고, 사실상 국가소유인 협동농장에서 일하도록 했으며, 그들이 생산한 식량을 매우 싼 가격으로, 사실상 공짜로 뺏은 뒤 국제시장에서 매우 비싸게 팔았습니다. 이렇게 얻은 돈으로 미국, 영국 등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업설비와 기술을 많이 수입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공산당 지도부의 희망대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땅을 뺏기고 거의 공짜로 일을 하게 된 농민들은 많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수백 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 그런데 농민들은 왜 도망치거나 싸우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그들은 아무 조직이 없었습니다. 농업 집단화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공산당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 초에 집단화가 시작되자, 농민들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은 국내에서 자유로운 여행이나 이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소련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 초부터 50년대 말까지 여행의 자유가 없었던 사람들은 농민들뿐이었습니다. 도시 사람이면 자유롭게 소련 국내의 거의 모든 지역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민으로 등록된 사람은 1950년대 말까지 마을을 떠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습니다. 이 때문에 농민 대부분은 10여 년간 열렬히 지지했던 공산당에 대한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었습니다. 자신들이 옛날 노비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협동농장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협동농장 간부들은 옛날 양반이나 지주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자 추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독일 파쇼침략이 시작했을 때에도 매우 쉽게 느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 네.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공산당을 지지했던 소련 농민이 공산당에 등을 돌리게 된 배경까지 들어봤는데요. 1940년대 독일군대가 소련을 침략했을 당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독일군대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등을 이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데요, 그럼 다음 시간에 이어서 듣도록 하지요.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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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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