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해체 후 간부들이 승리자가 된 이유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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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국가 연합 설립 계약에 서명하는 각 공화국 지도자들.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앉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독립 국가 연합 설립 계약에 서명하는 각 공화국 지도자들.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앉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Photo courtesy of Wikipedia/RIA Novosti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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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해체 후 간부들이 승리자가 된 이유>

- 공산당에 대한 실망으로 소련 해체, 간부들은 오히려 승리자

- 간부들, 국가 소유의 기업소를 개인 소유로 만들어

- 간부들처럼 교육, 인맥, 경험 갖춘 사회 계층 없어

- 소련 해체 후 가맹 공화국에서도 비슷한 현상


1980년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등장은 소련 국민의 큰 기대를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의 악화가 국민의 실망으로 이어졌고 결국, 고르바초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소련도 해제됐습니다. 공산당에 대한 실망이 소련의 기반을 파괴한 셈이 됐는데요. 오늘은 소련의 해체가 주는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교수님,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라는 국가는 해체됐습니다. 이것을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혁명이라고 한다면 승리자와 실패자가 있을 텐데요. 소련의 해체로 권력을 잃어버리고 실패자가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공산당 간부들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회계층인가요?

[란코프 교수] 약간 의심이 있지만,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 말부터 소련에서 소련 인민들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실망이 크고, 새로운 체제로 바꿀 것을 요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1990년에 모스크바에서는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에 대한 규정을 소련 헌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시위에 참여한 사람의 수는 50~60만 명입니다. 이것은 러시아 역사상 규모가 제일 큰 시위였습니다. 그러나 공산당 간부들을 실패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역설적으로 소련에서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이후 공산당 간부들만큼 이익을 많이 본 사회계층은 없었습니다.

-          하지만 1980년대 소련 인민들이 공산당에 대해 실망과 적대감이 컸다고 하셨는데요. 간부들은 왜 감옥으로 가지도 않고, 실패자가 되지도 않고 오히려 승리자가 되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이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상 간부들은 처음부터 교육도 받았고, 국가를 경영할 능력과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국가 소유에 대한 통제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 소련 체제가 무너진 이후 대부분 기업소에서 지배인으로 지내던 사람이나 당비서로 지내던 사람들은 이 기업소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원래 상급자들의 명령에 따라 임명되었던 지배인들은 하루아침에 사장이 됐습니다. 당연히 사회주의 국가에서 지배인은 자본주의 나라의 사장이나 소유자보다 훨씬 힘이 작았습니다. 아마 제일 중요한 차이점이라면 지배인은 언제든지 권력과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지만, 사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권력과 특권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아들과 딸에게도 이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배인은 원래 당원이니까 많은 감시와 제한을 받았습니다. 생활도 별로 호화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부였다가 사장이 된 사람들은 지금도 매우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구소련 가맹 공화국에서 지금까지 경제력을 가진 사람의 대부분은, 1980년대에 공산당 간부였거나 그들의 자녀였던 사람들입니다.

-          그러나 당시에 반공 사상이 아주 심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소련 인민들은 간부들이 여전히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이에 대해 왜 반대하거나 반발하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물론 어느 정도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간부만큼 교육과 인맥, 그리고 경험이 많은 사회 계층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러시아 반공 운동을 지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고급 공산당 간부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80년대 중반에 소련 공산당에서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중요한 직위에 있었던 옐친입니다. 1990년대 초 러시아 정부와 국회에서는 60~70년대에 공산당 독재를 반대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공산당 간부들이 아닌 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그들은 러시아 정부 기관의 핵심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          그렇다면 당시 핵심 인물은 누구였습니까?

[란코프 교수] 초대 대통령 옐친처럼 고급 간부 출신자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소련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의 초대 총리가 된 사람은 가이다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매우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건설 정책을 펼쳤는데, 그는 젊은 간부 출신자였을 뿐만 아니라 1917년 혁명 때부터 러시아에서 대대로 힘이 강했던 간부집 아들이었습니다. 그를 대체한 체르나민 전 총리는 고급 경제 일꾼 출신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들어와서는, 러시아 정부에서 공산당 간부나 경제일꾼, 군인 그리고 국가기업소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 구소련은 15개 가맹 공화국으로 나뉘어졌습니다. 다른 가맹 공화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대부분 러시아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례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5개의 가맹 공화국인데요. 이들 5개 가맹 공화국 중 4개 공화국은 공산당 책임 비서로 지내던 사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카자흐스탄에서는 80년대 말 공산당 책임 비서였던 나자르바예프가 지금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소련 시대의 공산당 최고책임자였던 카리모프가 2016년까지 대통령이었습니다. 그가 2016년에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대통령이었을 겁니다.

-          그렇군요. 결국, 소련이 해체됐어도 당시 간부들은 교육과 인맥, 경험 등을 바탕으로 기존의 기득권을 여전히 누릴 수 있었다는 말이 되겠는데요. 그렇다면 소련이 붕괴한 이후 간부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다음 시간에 계속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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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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