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붕괴와 민족주의 (2)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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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배치된 탱크들.
사진은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배치된 탱크들.
Photo courtesy of Wikipedia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소련의 붕괴와 민족주의 (2)>

- 가맹공화국 소수민족 갈등 발생

- 소수민족이 세운 주권국가도 등장

- 소련 그립지만, 지금의 경제적 여유가 좋아

- 체제정치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소련이 붕괴한 이후 15개 가맹공화국으로 나뉘었는데요. 15개 가맹공화국은 각자 과도기에 빠졌습니다. 가맹공화국을 구성한 소수민족끼리 갈등이 깊어졌고, 소수민족마다 민족주의를 내세워 주권국가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옛 소련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당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왜일까요?

- 교수님. 지난 시간에 소련이 무너질 당시 많은 가맹공화국 사람은 소련을 떠나면 금세 잘 살 줄 믿었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들의 희망처럼 가맹공화국들은 아주 잘살게 됐나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련은 1990년대에 애초 희망했던 번영과 고속발전의 시대 대신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과도기에 빠졌습니다. 러시아든 에스토니아든 카자흐스탄이든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립을 선언한 수많은 가맹공화국 내부에서는 소수민족 간 갈등이 생겼습니다. 소련에서 대부분 가맹공화국은 결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맹공화국이 독립선언을 하자 그 안에 소속된 소수 민족도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련에는 그루지야 가맹공화국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스탈린의 고향인데, 캅카스 산맥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루지야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1991년 12월에 그루지야가 독립선언을 하자 그루지야의 소수민족은 거의 동시에 그루지야 정부를 부정하고 독립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무장투쟁까지 시작했습니다. 결국 압하스 민족이 사는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은 그 지역에 있던 그루지야 경찰과 군대 등을 출국시키고 그루지야 민족 사람 대부분도 쫓아냈습니다. 그루지야 북부의 오세티야 소수민족도 비슷했습니다. 그루지야 중앙정부는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전 군대를 동원했지만 결국, 패배했습니다. 압하지야 공화국도, 오세티야 공화국도 러시아에서 지원을 받고 승리했습니다. 지금까지 사실상 독립국가입니다.

- 하지만 교수님, 지금 세계지도를 보면 압하지야나 오세티야라는 나라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루지야 공화국만 있는데요.

[란코프 교수] 압하지야나 오세티야가 사실상 독립한 지 벌써 25년 정도 됐습니다. 이들 나라는 경찰, 군대, 보위성, 국회, 대통령까지 있습니다. 압하지야는 심지어 해군과 공군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과 수교한 나라도 극소수입니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된 이후 독립국가가 된 15개 가맹공화국은 모두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을 받았지만, 같은 무렵에 독립선언을 한 구소련 자치공화국 몇 개 나라는 이러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 교수님. 어떤 나라는 인정을 받고, 어떤 나라는 인정을 못 받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란코프 교수] 기본적인 이유는 최근 국제사회가 무력투쟁으로 얻은 독립을 인정하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가 무력투쟁 독립을 쉽게 인정한다면 세계 곳곳에서 무력투쟁과 테러가 훨씬 많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 간 갈등이 중요했습니다. 압하지야처럼 사실상 독립국가들은 거의 모두 러시아연방의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 국력의 강화를 위험하게 생각하는 기타 강대국은 러시아에 좋은 일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 그루지야에 위치한 오세티야와 압하지야처럼 구소련이 붕괴한 이후 사실상 나라이지만 인정을 못 받는 나라는 몇 개였나요?

[란코프 교수] 5개~6개가 있습니다. 그루지야에서 2개, 우크라이나에서 2개, 몰다비아에서 1개 국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에서 생긴 나라는 자신이 독립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이웃 아르메니아와 통일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에서 생긴 나라의 사람은 아르메니아 소수민족입니다. 이 때문에 소련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아르메니아 계통의 소수 민족은 아제르바이잔 정부에 도전했고, 아르메니아와 합치겠다고 주장했으며 사실상 합쳤습니다. 이 때문에 지도를 보면 이 지역은 여전히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지만 사실상 아르메니아에 합병된 지 25년이 됐습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 가맹공화국 사람들은 독립할 때 경제 기적을 꿈꿨는데, 처음에는 실망과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나중에 이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란코프 교수] 조금 복잡합니다. 1990년대 말에 어려운 과도기를 거치고 빨리 발전하기 시작한 소련 출신의 몇 개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는 러시아 연방입니다. 요즘에 러시아 경제가 좀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러시아 사람은 소련 시대에서 꿈꾸지 못한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소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매우 높은 이유는 경제성장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도 대체로 러시아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구소련에서 경제, 교육, 사회 수준이 제일 높았던 발틱3국, 즉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은 상황이 여전히 좋지만, 출산율이 너무 낮고 해외로 이민을 간 사람이 많아서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소련 시대보다 어렵게 살거나, 소련 시대 말기보다 더 나빠진 지역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지키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내부갈등, 부정부패 등의 문제가 심각하고, 생활 수준이 소련 시대보다 크게 향상되지 못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자원도, 풍요로운 농지도, 인구도 많지만, 아직 소련 시대 말기의 경제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 소련 시대보다 어렵게 산다면 큰 실패가 아닐까요? 우크라이나나 타지키스탄에서는 차라리 소련 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전혀 없습니다. 이들 나라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사는데 이들 중 일부만이 소련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류 민족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러시아 연방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련처럼 러시아를 중심으로 연방 국가를 만들자는 이야기조차 없습니다. 이유는 민족의식이나 민족적 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은 어렵게 사는 나라라 해도 스스로 만족한 나라이면 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이것은 약간 비합리주의적인 감정이라고 말할 있지만,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물론 간부들은 민족의식뿐 아니라 집단이익도 없지 않습니다. 주권국가에서 상이나 부상으로 지내는 것이 연방 국가에서 어떤 도의 국장이나 부장으로 지내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 아닐까요? 하지만 조금 말씀 드린 것처럼 소련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 기본적인 이유는 민족의식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만약 소련에서 아주 있다고 해도, 절대로 소련 부활을 원하지 않습니다.

- 네.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소련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와 체제보다는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소련의 붕괴 이후 15개 가맹공화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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