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지도자들의 후손들 (2)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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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벽 묘지에 있는 콘스탄틴 체르넨코의 묘.
크렘린 벽 묘지에 있는 콘스탄틴 체르넨코의 묘.
Photo courtesy of Wikipedia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지난 시간에는 스딸린, 흐루쇼프, 브레즈네프를 비롯한 소련의 최고 권력자들의 후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서기장이나 정치국 위원의 자녀와 손주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이민 가거나, 러시아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대체로 이들 후손 중에 핵심 간부나 유명 지식인이 됐다는 얘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서기장이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전기자님은 혹시 콘스탄틴 체르넨코라는 이름을 아직 기억하십니까?

전: 네. 안드로포프 다음으로 80년대 중반 잠깐 동안 소련 최고지도자였던 사람이지요?

란코프: 그렇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 즉 1년정도 소련을 통치했던 사람입니다. 체르넨코도 두 번 결혼했는데, 아들딸은 다섯 명 입니다. 흥미롭게도 그 아들딸 가운데 간부가 된 사람은 하나뿐입니다. 나머지 아들딸들은 모두 다 대학 교원들입니다. 주로 법학, 문학,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체르넨코의 아들딸들도 아들복 딸복이 많아서, 지금 살아있는 체르넨코의 후손들은 15명이나 있습니다. 대부분은 대학교원들이지만, 하나는 외교관입니다.

전: 다른 소련 최고 지도자 가족과는 달리 체르넨코의 자녀나 손주 중에는 외국에 간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네요.

란코프: 아닙니다. 외교관, 엄밀히 말해 외교 직원으로 잠깐 일했던 손녀는 퇴직한 다음에 미국으로 유학 갔고, 지금 미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체르넨코의 후손들 중 한 명밖에 소련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체르넨코의 후손들은 다른 공산당 최고지도자들의 후손보다 지금 권력, 특권, 재산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체르넨코의 후손들은 일반인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전: 교수님, 소련 최고지도자였던 체르넨코의 후손들이 평범한 일반인으로 산다는 것은 아마도 북조선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 같습니다. 공산국가들은 세습경향이 심하지 않습니까?

란코프: 흥미로운 질문이십니다. 거의 모든 사회주의 진영국가에서 갈수록 세습화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당비서의 아들은 당비서가 되고, 광부의 아들은 광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라별로 큰 차이가 있었는데요. 제가 자라난 소련에서 세습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북조선만큼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소련 지도자들의 후손들은 나중에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도 아주 잘 살수 있습니다.

전: 어째서 일까요?

란코프: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북한이나 봉건 조선왕조처럼 양반이나 간부들의 특권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대를 이어 세습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세습 제도가 없는 사회라고 해도 이러한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옛날 소련 공산당 서기장들의 후손들이 오늘날 아주 잘 사는 이유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쨰는 교육이고, 둘째는 인맥입니다.
제일 먼저 권력자의 아들딸들은 어린 시절부터 좋은 학교를 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잘 배울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권력자 아들딸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고위 간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가 큰 권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간부들이 많이 도와줍니다. 결국 그들은 처음부터 발전하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세계 어느 사회이든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상류층의 특권 세습화를 통제나 관리 할 수 있지만,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 소련 최후의 서기장, 고르바초프 가족은 어땠습니까? 그도 자녀들을 미국으로 보냈나요?

란코프: 아닙니다. 사실상 고르바초프는 마지막 순간까지 소련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개혁을 함으로서 경제위기에 빠진 소련을 구할 희망이 있었습니다. 아까 전기자님은 후손들을 외국으로 보내지 않은 서기장에 대해서 질문하셨는데요.

전: 혹시 고르바초프가 후손들을 외국으로 보내지 않은 서기장인가요?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소련 서기장 중에, 후손들이 미국에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유일한 서기장이 바로 고르바초프입니다.

전: 약간 뜻밖입니다. 소련 개방정책을 표방해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었고 미국 레이건 정부 때는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왜 자식들을 미국으로 보내지 않았나요?

란코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다른 공산당 총비서들보다 자녀들이 적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소련의 인구변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출산율, 즉 평균적인 부부가 낳는 자녀의 숫자는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부인을 아주 사랑했고,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간부도, 외교관도, 외화벌이 일꾼도 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진 다음에는 의사로 일하는 것보다, 여러 회사와 비정부단체에서 경영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중급 간부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딸 두명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르바초프에게 손녀 2명이 있습니다. 둘 다 언론 일꾼들입니다. 1명은 옷과 일상생활을 주로 다루는 여성잡지 집필장입니다.  정치와 별 상관이 없는 잡지입니다. 다른 1명도 매우 비슷한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시집을 갔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전: 고르바초프는 마지막 총비서입니다. 그의 후임자는 옐친 대통령 아닙니까?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후임자가 아니기는 하지만, 사실상 후임자입니다.
러시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 옐친은 원래부터 소련 공산당에서 네 번째나 다섯 번째로 높은 간부였습니다.

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로 바뀌었는데요. 옐친 대통령도 자녀를 미국으로 보냈나요?

란코프: 그렇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옐친의 후손 대부분이 돈과 권력이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그는 딸 두 명과 손자손녀 5명이 있습니다. 큰 딸의 남편, 즉 옐친의 큰사위는 오랫동안 러시아 최대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의 부사장으로 지냈습니다. 그는 원래 비행사였습니다. 그 후에 1년 반 전까지 교통성 부상으로 지냈습니다. 우리 청취자들이 놀랍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러시아를 포함해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는 공무원의 월급과 재산이 공개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옐친의 큰 딸 부부의 재산을 알 수 있는데요. 아주 큰 부자들입니다. 미국 돈으로 수천만 달러의 재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재미있는 사람은 둘쨰 딸입니다.

전: 둘째 딸이라면 타티아나라는 사람 아닙니까? 막후 권력실세라느니 남편이 탈세했다느니 해서 언론에 이름을 탔었지요?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90년대 말에 러시아에서 권력이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에 그녀가 옐친의 후계자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제가 봤을 때 사실이 아닙니다. 타티아나는 대통령 보좌관이었으며 동시에 아주 큰 건설회사 사장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푸틴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지만 좋지도 않아서, 멀고 먼 오스트랄리아로 이민 갔습니다. 하지만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에게는 입양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입양한 딸은 러시아에서 두번째나 세번째 부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니까 옐친의 손녀사위는 러시아에서 알루미늄 생산을 통제하는 올레그 디에리파스카입니다. 그의 재산은 70억 달러입니다. 북조선 사람들은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돈입니다.

전: 란코프 교수님, 오늘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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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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