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시대의 민간항공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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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소련 투폴레프 ANT-35 여객기.
1930년대 소련 투폴레프 ANT-35 여객기.
Photo courtesy of Wikipedia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 한국에서는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됐지만 북조선 인민들에게는 민간항공, 즉 민항을 이용한 비행기 여행은 아직도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그런데 소련시대 인민들은 이미 1950년대에 교통수단으로 비행기를 많이 이용했다고 들었습니다. 버스 타는 것보다 더 흔하게 비행기를 탔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사실인가요?

란코프 교수: 버스를 타는 것처럼 쉽게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소련에서 비행기가 아주 많고, 인민대중은 지방에서 비행기를 많이 탈 수가 있었습니다. 소련시대 민항 역사, 즉 일반인들이 비행기를 타는 문화와 역사를 보면 소련사회의 장점과 단점을 대체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련시대 비행기 문화는 북조선 비행기 문화와 사뭇 다릅니다.

전: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란코프: 북조선에서는 비행기가 거의 없는데, 국제선은 물론 국내선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완전히 다릅니다. 국내선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70-80년대 비행기를 많이 탔습니다. 물론 이것은 지리적 상황 때문에 생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전: 땅이 너무 광활해서인가요?

란코프: 그렇기도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오늘날의 러시아는 소련 시대보다 조금 작은데, 그래도 여전히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캄차카 반도로 간다면, 비행시간은 오늘날 9시간인데, 소련시대에는 보통 11시간 걸렸습니다. 둘째 이유는 소련 영토 대부분은 인구밀도가 너무 낮습니다. 수많은 경우 철도뿐만 아니라 도로가 없는 지역이 많습니다. 특히 소련 북방지역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방금 전에 말한 캄차카 반도에서 제일 큰 도시의 인구가 수십만 명 뿐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와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나 도로가 없습니다.

전: 그런데 교수님, 배가 있지 않습니까?

란코프: 물론 화물은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항공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비용은 아주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에서는 아무도 배를 이용해서 캄차카 반도로 여행할 생각을 못합니다. 몇 개월이나 걸리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캄차카 반도까지도 15일 걸립니다. 1950년대부터 항공이 활발해지자, 모두 비행기를 탔습니다.

전: 1950년대부터 항공여행이 활발해졌다고 하셨는데요. 그 전에는 어땠나요?

란코프: 그 전에도 항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나 1940년대 말까지 비행기여행은 매우 드문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비행기는 극소수 부자들이나 타는 것입니다. 공군은 당연히 비행기를 썼지만 민항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소련에서 1920년대 말부터 여객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1930년대 비행기는 작고, 속도도 느리고, 너무 위험했습니다. 사고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1930년대 소련 항공 개발 전략의 몇 개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특징들은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전: 1930년대 통치자는 스딸린인데 항공 개발 전략이 그와 관계가 있었을까요?

란코프: 관계가 많습니다. 스딸린은 공군이든 민항이든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부문에 관심도 많고 자원을 많이 집중시켰습니다. 다른 편으로, 스딸린 시대 숙청 때문에 많은 기술자들은 제거되었습니다. 전기자님은 투폴레프를 아십니까?

전: 소련의 유명한 비행기 기술자지요?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도 고려항공이 많이 쓰는 TU-134, TU-145, TU-204 비행기 개발자입니다. 그러나 투폴레프도 스딸린 시대 숙청되었고, 몇 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래도 스딸린 시대는 비행기에 관심이 참 많았습니다.

전: 그렇다면 소련 민간항공 전략의 기본 특징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1930년대부터 소련이 무너졌을 때까지 변함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소련은 이 부문에서 사실상 자력갱생 정책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소련 여객기는 모두 다 국내에서 생산한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기술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경우 해외 기술을 받거나 훔친 다음에 복제했습니다. 예를 들면 1940-50년대 소련에서 제일 많이 쓰는 여객기는 LI-2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인기가 아주 많았던 DC-3 여객기의 복제입니다. 외국 기술을 많이 전용했지만, 그래도 생산은 무조건 국내입니다. 둘째로 소련당국은 공군을 민항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수많은 경우 여객기는 폭격기를 기본으로 해서 설계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소련에서 제일 인기 있던 여객기 TU-104형은 사실상 TU-16폭격기를 조금 개조한 것입니다. 셋째로 소련에서 비행기를 개발할 때 기름 절약이나 비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전: 교수님, 소련당국은 왜 비행기 기름을 절약할 생각이 없었나요? 공산국가였기 때문인가요?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가 무너진 이유 중에 하나는 소련당국이 기름을 비롯한 여러 자원을 아낄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소련정부는 민항 개발을 중요한 과제로 보았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 무상으로나 아주 값싸게 기름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기술자들은 설계 단계부터 기름 절약을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소련시대 이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나중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전: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까요?

란코프: 옛날 소련시대 비행기 가운데 기름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비행기가 많았는데, 소련붕괴 이후 새로운 상황에서 항공회사는 이제 자기 돈으로 기름을 사야 했습니다. 그래서 항공사는 기름을 많이 쓰는 비행기를 몇 년 이내에 파철로 팔아버리고, 그 대신에 기름 효율이 아주 높은 미국이나 유럽의 비행기를 샀습니다. 그래도 TU-134, TU-154와 같은 비행기는 기름을 많이 낭비하지 않아서 오늘날까지 가끔 쓰고 있습니다.

전: 교수님, 그렇다면 비행기표 값은 어땠을까요? 공산주의 국가니까 비행기표도 무상이었을까요?

란코프: 아닙니다. 물론 비행기표가 쌌습니다. 그래도 버스나 기차보다 비쌌습니다. 국가는 당시에 거리에 따라서 가격을 자동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비행장 조건에 따라, 지역 조건에 따라, 특히 승객 숫자에 따라서 비행거리가 같더라도 요금은 두 배나 세 배까지 다릅니다. 그러나 소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금은 승객 숫자나 상황에 관계없이 그저 간부들이 정한 거리 기준에 따라 고정되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사회주의이지만, 수많은 경우에 인민들에게 편리했습니다. 왜냐하면 시베리아와 같이 비행장 조건이 열악하고 승객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는, 시장경제라면 비행기가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해도 비행기표가 아주 비싸서 인민대중이 타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소련시대 지방 비행장이 너무 많았습니다.

전: 비행장이 얼마나 많았나요? 작은 도시에도 있었나요?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인구가 수만 명 도시라면 거의 확실히 비행장이 있었습니다. 인구밀도가 낮은 시베리아라면 수천 명이 사는 마을이라도 큰 마을이기 때문에 비행장도 있고, 매일 혹시 일주일에 몇 번씩 가까운 큰 도시로 가는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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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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