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실험의 결과 (1)
2020.09.08
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오늘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기자: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몇 주 후면 ‘공산주의 역사이야기’프로그램이 막을 내리는데요. 저희가 오랫동안 공산주의 실험과 역사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공산주의 실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란코프 교수] 제일 먼저, 공산주의 역사는 비극입니다. 아마 세계역사에서 제일 거대한 비극 중 하나일 겁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희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상에 대한 꿈입니다. 누구든지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꿈이었고, 이 꿈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짧은 기간 내에 기적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은 사회 이론보다 종교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상이 숭고한 사상으로 시작됐지만,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실험이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기자: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실패입니까?
[란코프 교수] 가장 중요한 실패는 경제적 실패입니다. 맑스와 레닌을 비롯한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가 매우 빠른 경제발전과 물질적인 발전을 가져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였습니다. 물론 공산주의 혁명 직후 공산국가가 처음에는 빠르게 성장합니다. 하지만 이 성장은 15~20년뿐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침체였습니다. 결국, 세월이 갈수록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 수준 격차는 점점 커졌습니다. 제일 좋은 사례가 한국과 같은 분단국가의 경험입니다. 동도이칠란트(동독)와 서도이칠란트(서독)는 분단 당시 경제 수준이 비슷했지만, 30년 후에는 2~3배 차이가 있었습니다. 분단 직전의 북한은 남한보다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남한은 북한보다 1인당 소득이 25배나 많습니다.
기자: 공산주의 국가의 경제적 실패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경제 실패를 초래한 것은 누구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란코프 교수] 이것은 특정 개인의 잘못보다, 바로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희망하는 사회, 경제구조가 초래한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맑스를 비롯한 공산주의 이론가들은 사회에서 모든 문제의 기본 원인이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사유재산을 없애버리고, 국유 공유 재산으로 만들면 사회적 모순이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 없이 오늘날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사상 때문에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이 없는 경제에서는 불가피하게 왜곡된 결과도 나타납니다. 오늘날 수요와 공급의 원칙만큼 경제를 조절하는 중요한 원리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의 실패는 어떤 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 예로 우차(소달구지)는 자동차만큼 빨리 달릴 수 없습니다. 우차(소달구지)가 형편없이 느린 이유는 운전수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기본 구조 때문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교수님, 간부들과 국민들에게 사상 교육을 많이 하면, 어느 정도 성공이 있지 않습니까?
[란코프 교수] 아닙니다. 별다른 결과가 없습니다. 사상교육을 잘하면 사람들이 책임 있게 일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 지도자가 많았는데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처음에는 사상교육 때문에 얼마 동안 열심히 일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오랫동안 그럴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의 실패를 초래한 것은 노동자와 간부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공산주의경제의 내부 모순과 불균형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실패했습니다. 수천 년 후에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사유재산이 없는 경제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확실히 불가능합니다.
기자: 하지만 그래도 공산주의 국가들이 강력한 군사력과 중공업 등을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한 예로 과거 소련은 한때 미국을 위협하는 초강대국었잖아요.
[란코프 교수] 사실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에 기반한 소련식 사회주의는 대실패였지만, 그래도 장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몇 가지 장점 중 하나는 정부가 중요시하는 분야에 자원과 기술, 노동력을 집중시키고 시장경제 국가보다 더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련은 우주선이나 핵무기,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잘 만들었습니다. 공산국가는 평화를 표명했지만, 군국주의 성격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군사기술이나 무기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무기와 군사력에 많은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모든 것을 잘 만들 수 없습니다. 사실상 정치국이나 당 중앙정부가 매일 직접 열심히 감시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성공을 거뒀는데요. 우주선이나 핵무기가 있다 해도, 다른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성과가 없었습니다. 소비품의 질도 매우 낮았습니다. 그래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공산국가는 혁명 당시 경제 수준이 비슷했던 다른 자본주의 국가보다 갈수록 뒤처졌습니다. 핵무기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기자: 네. 말씀하신 대로 공산주의 경제는 실패였는데요. 그렇다면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는 어땠을까요? 전부 독재국가가 아니었나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흥미롭게도 공산주의 창시자들은 독재국가를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공산국가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더 참된 민주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것 은 꿈과 같은 주장이었습니다. 공산국가는 올바른 정당이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일당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정치토론과 대립이 불가능한 체제가 탄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경제활동을 감독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자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공산국가들은 모두 독재국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에서 1인 독재가 생길 가능성이 비교적 컸습니다. 또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19세기에 완벽한 사회를 꿈꿨던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일까지 생겼습니다. 신분제도가 사실상 부활한 겁니다.
기자: 그런데 교수님, 공산주의 이론은 계급이나 신분제도 타파를 주장하지 않습니까?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공산주의 혁명 이후에 지주나 자본가, 반동분자들은 심한 차별을 받았고, 노동자와 빈농 출신들에게 특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간부들이 등장했는데, 그들에게는 특권이 많았고 세습 경향이 있었습니다. 간부들은 자기 아들의 출세를 원했고, 농민이나 노동자 아들의 발전을 방해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경향이지만, 역설적으로 평등을 주장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이런 모습이 더 심했습니다.
기자: 네. 결국 공산주의 실험은 경제적 대실패와 독재정치로 끝나고 말았다는 말씀이신데요.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지금까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