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빛바랜 꿈’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0.09.29
hammer.jpg 사진은 평양의 당창건기념탑.
사진-연합뉴스

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란코프 교수님, 지금까지 교수님과 오랜 기간 공산주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오늘 방송은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의 마지막 방송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교수님과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종합적인 이야기를 나눠 봤으면 합니다. 1848년 마르크스(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지 무려 17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공산주의’는 도대체 무엇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공산주의란 다른 무엇보다도, 기적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초기 공산주의사상가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결정하는 법칙을 발견했을 줄 알았고, 인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불평등이 없는 사회, 누구든지 보람있게 평등하게 사는 사회, 전쟁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초기자본주의 시대에서, 오늘날 상상하기도 힘든 불평등과 가혹한 노동조건이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꿈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자: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한 지 70년이 지났을 때, 마침내 10월 혁명이 생기고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 소련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에서 벌어진 일들은 대숙청과 기근이 아니었습니까?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 인구는 1억5000만 명에 달했습니다. 기근, 처형, 옥사 때문에 거의 10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마르크스나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이 희망했던 기적적인 경제발전이 생기지 않은 것입니다. 소련에서도, 또 다른 공산국가에서도 경제성장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시장경제 나라, 즉 자본주의나라에 비해서 성장률은 낮은 편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희망과 달리 공산주의는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의 비약적 향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의 종말을 초래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기자: 그런데 마르크스는 공산주의혁명이 낙후된 제정 러시아가 아니라, 선진국인 영국,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 생길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공산주의혁명이 생겼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프랑스, 도이칠란트(독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그래도 나름 확률이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난다면, 소련과 별 차이 없는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이들 국가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났다면, 경제 발전 속도가 실제 역사보다 느려졌고, 또 민주정치를 폐지하고 공산당 독재가 생겼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나라들은 서로 친구가 된다고 주장했는데요. 당연히 사회주의영국과 사회주의 독일은 서로 열심히 싸웠을 것입니다.

기자: 교수님,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을 발표한 지 70년 후에 10월혁명이 생겼고, 소련이 생긴 지 70년 후에 공산주의진영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인가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대체로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소련의 경우 이미 1960년대 들어와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가 많이 식어갔습니다. 1970년대 들어와 뽈스카(폴란드)와 불가리아 같은 동유럽 인민들은 사회주의나라가 자본주의 나라보다 어렵게 산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사회주의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와 경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붕괴는 시간문제 뿐이었습니다. 공산진영은 80년간 유지될 수도 있   었고, 50년 만에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기자: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진 지 30년 지났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소련 붕괴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 어떤 태도일까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대체로 3가지 부류의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흠모하고 공산주의세력을 꿈꾸고 있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젊은이들 중 극소수입니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사회주의를 그리워하지 않지만, 소련시대 세계패권을 주장하던 초강대국 소련을 그리워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러시아에서 스탈린의 인기가 많은데요. 스탈린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사회주의 경제 때문이 아니라 초강대국, 강력한 군사력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옛날 악몽으로 생각하고, 끔찍하게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수입니다.

기자: 공산주의는 하나의 실패한 실험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더불어 러시아를 비롯한 옛날 공산국가들에서도 사회주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젊은이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좋게 생각한다고 하는 내용을 봤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제일 먼저, 미국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우리 프로그램에서 살펴본 공산주의와 거리가 멉니다. 예를 들면, 그 젊은이들은 누구든지 오바마 수령의 로작(노작)을 외워야 하고, 민주당만 유일 정당이고, 여행증 없이 다른 도시로 갈 수도 없고, 간부가 아니라면 해외여행을 꿈도 꾸기 힘든 나라를 상상하지도 못합니다. 미국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옛날 소련이나 중국, 북한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주로 북방유럽과 같은 나라,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나라의 체제입니다. 즉, 오늘날 미국보다 복지정책이 많고 사회양극화가 작은 나라입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경향이 생기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데요. 미국은 다른 자본주의 나라에 비해 빈부격차가 심하고, 복지제도도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하면, 미국은 빈부격차가 아주 심합니다.

기자: 오늘날 여전히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국가는 중국, 베트남, 쿠바, 라오스 그리고 북한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들 나라 대부분은 이미 공산국가가 사실상 아니지 않나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이 나라들은 원래 정말로 공산주의 국가였는데요. 하지만 지금 거의 다 사실상 공산체제를 포기했습니다. 이들 나라에서 공산주의는 자신들의 독재정치를 합리화하고, 주민들을 사상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입니다.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운운하지만, 사실상 중국 간부들 절대다수는 돈을 너무 좋아하는 극한 자본주의자들입니다.

기자: 앞으로 공산주의, 그러니까 마르크스 레닌주의 세력이 세계 어디선가 다시 권력을 잡을 날이 올까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는 구조적인 문제, 즉 고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았고, 문제를 고칠 희망도 없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러 선진국에서 극소수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단체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흥미롭게도 그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에는, 스탈린식 공산주의도, 트로츠키식 공산주의도, 모택동식 공산주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도 영향력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기자: 지난 3년 동안 교수님과 살펴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는 저희 청취자분들에게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하나의 등불과 같은 것이었다고 믿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랜 기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란코프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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