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공산권은 지금: 구소련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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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권 여러 나라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구공산권은 지금’ 오늘은 구소련의 개혁에 대해 살펴봅니다.

구소련 하면 냉전 시절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동유럽 여러 나라들을 강제로 공산화했던 바로 그 나라인데, 오늘날 구소련은 러시아로 이름도 바꾸고 공산체제를 버리고 시장경제체제로 돌아섰죠?

그렇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저명한 민간연구기관인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동구전문가인 안데스 오슬란드 박사는 오늘날 러시아는 누가 봐도 시장경제국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시장경제 실시에 따른 부패가 심한데다, 사유재산권 보호라든가 법에 의한 지배가 아직은 견고하지 못한 게 흠이라고 말합니다.

Dr Andes Ausuland: the former Soviet Union is by and large a market economy...

러시아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 1만2천 달러, 국내총생산이 1조7천억 달러, 대외교역 규모가 3천6백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10위 경제 대국입니다.

러시아가 이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한데는 러시아의 전신이라 할 구소련에서 시작된 개혁, 개방을 꼽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주동인물이 미하일 고르바초프이었죠?

그렇습니다. 구소련은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기 이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도 미국과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이느라 경제를 돌볼 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공산주의 통제경제로 인해 경제 효율도 엉망이었으며, 공산당 간부들은 변화를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결국 변화의 바람은 개혁적 성향의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 일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85년 소련 권력 서열 1위인 공산당 서기장에 임명된 고르바초프는 처음엔 휘청대던 공산당을 재건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는 생각에서 글라스노스트(glasnost)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글라스노스트는 개방이란 뜻이고, 페레스토로이카는 개혁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도입한 개방, 개혁 정책이 결과적으로 소련 공산당의 쇠퇴, 나아가 구소연방 해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당서기장 취임 당시 국민들의 생활수준이나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한없이 뒤쳐져있는 것을 알고는 경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제일 먼저 소련 국민들이 가장 즐겨 찾은 보드카 값을 대폭 올리고 판매를 제한했습니다. 술에 취해 흥청망청하는 사회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었죠.

이 조치로 주류세가 대폭 줄어 국고가 궁핍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고르바초프는 처음으로 국영 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도입했습니다. 또 제조업과 대외무역 부문에서도 민간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나아가 전국적 차원의 노조가 구성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 개혁과 별도로 글라스노스트, 즉 개방 정책도 실시해 호응을 얻었죠?

러시아 말로 글라스노스트는 개방을 뜻하는데요, 고르바초프는 이 개방정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서구 자유민주주의 핵심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당시 모든 언론집회 결사의 자유가 공산당 정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됐던 상황에 비춰 이런 조치는 상당히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언론이 족쇄에서 풀려났고, 전국의 수 천 명의 정치범과 반체제 인사들이 풀려났습니다.

비록 공산당 내 수구 보수파들은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를 반대했지만 국민들은 절대적으로 지지를 보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집권 2년 뒤인 1987년에는 정치에도 민주화를 역설해 정부에 대한 당의 통제권을 줄였습니다. 또 이듬해엔 소련 최초의 하원을 구성해 자유선거를 실시했고, 마침내 지난 90년 첫 자유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구소련의 개혁, 개방 상황은 다음 시간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워싱턴-변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