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牧民心書)에 대한 남북한의 관점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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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이 지난 2012년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에 앞서 언론에 공개한 친필저술, 문예(시문, 서화), 교유(학맥, 가계, 사우, 문인) 등 유물 150여 점 중 일부의 모습.
전남 강진군이 지난 2012년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에 앞서 언론에 공개한 친필저술, 문예(시문, 서화), 교유(학맥, 가계, 사우, 문인) 등 유물 150여 점 중 일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목민심서는 지방행정 책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자세나 몸소 실천해야 할 일들, 말하자면 지침들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목민심서란 책이 나온 지 올해 200년이 된다지요? 이 책은 나라 녹(祿)을 먹는 공직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되는데,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목민심서 책에 관한 이야기 나눠 봅니다.

목민심서가 언제 나왔습니까?

임채욱 선생: 목민심서가 1818년에 나왔으니까 올해가 딱 200년이 되는군요. 목민심서를 지은 정약용은 이 책을 지은 이 해에 다행히 귀양살이가 풀려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에는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은이가 귀양지에서 지은 것이군요. 그럼 이 책을 지은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임채욱 선생: 정약용은 호를 여러 가지 썼는데 다산(茶山)이란 호가 가장 알려진 것입니다. 경기도 광주사람인데 그는 벼슬살이 하던 시절과 귀양살이 하던 어려운 시절, 그리고 귀양이 풀려서 고향에 돌아와서 편안한 여생을 마친 시절 셋으로 일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기 벼슬살이 시절은 스무 두 살 때 벼슬길에 들어서서 정조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암행어사, 곡산부사 등을 지냈고 서양학문도 접하면서 책도 짓고 수원성을 짓는데도 관여해서 설계도 합니다. 제2기는 정조임금이 죽자 감옥에 가고 유배를 가게 됩니다. 유배기간이 무려 18년입니다. 이 긴 기간에 책을 많이 짓습니다. 그리고 유배가 풀리고 고향으로 와서는 회갑도 맞고 유유자적하게 지낸 제3기가 됩니다. 정약용은 모두 500여권의 책을 썼는데 목민심서는 유배기간에 썼습니다.

목민심서는 어떤 내용이기에 공직자들이 읽어야 하는 책으로 꼽히는지요?

임채욱 선생: 목민심서의 목민은 백성을 키우고 다스린다는 것으로, 이런 직책을 가진 공직자를 목민관이라 하는데 오늘날로 치면 지방행정 책임을 지는 공직자라고 보겠습니다. 목민심서는 이런 지방행정 책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자세나 몸소 실천해야 할 일들, 말하자면 지침들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당시 지방 공직자들인 수령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일에만 신경 쓰면서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백성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면서, 고쳐야 할 항목을 72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00년 전의 책이 오늘날에도 유용할 수 있는지 의문도 가는 게 사실입니다만.

임채욱 선생: 물론 지방행정관이 수행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그때와 다르고 방식도 다르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위민정신은 같은 것이지요. 무엇보다 정약용은 공직수칙을 관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민간의 입장에서 보면서 하나하나 언급하고 있는 것이 주목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목민심서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어떤지를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목민심서를 북한에서도 일정한 평가를 합니다만 한국에서와 같이 반드시 좋게 평가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책 내용이 봉건체제를 허물어버리려는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 봉건체제를 지키기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봉건양반의 입장에서 본 당시 사회경제 형편을 유교의 이른바 덕치사상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기울어가는 조선조 말기 봉건체제를 정비강화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봉건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지어진 책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본 폐습과 탐관오리들의 행패를 고치려고 하되 그것이 결국은 보다 교묘한 봉건적 통치방법을 갖도록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은이 정약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임채욱 선생: 비교적 좋게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한계를 갖지요. 정약용이 선진적인 사상과 과학기술 연구에 힘쓴 실학자로 자리매김하면서 과학기술분야 성과, 역사, 지리, 언어분야 연구업적을 좋게 평가하고 또 문학가로서의 면모도 평가하고 있지요.  하지만 정약용이 강조하는 백성은 노예신분을 가진 인민들이 아닌 양반계층을 뜻할 뿐이라는 지적도 놓치지 않고 합니다. 결국 정약용도 다른 실학자들이나 마찬가지로 근로인민들의 이익은 대변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목민심서에 대해서는 외국에서도 알려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가 목민심서에서 배울 수 있는 정신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임채욱 선생: 알려지기로는 북베트남 지도자였던 호지명, 호치민이라고 부릅니다만 그가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두고 늘 읽었다고 합니다. 한문으로 된 원본을 봤겠지요. 목민심서는 공직자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자기인격을 수양해서 청렴한 선비가 되는 것이고 둘째, 공적인 일을 받드는 정신에 따라 공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셋째, 불쌍하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에게도 애정을 베푸는 것을 기본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세 번째로 언급한 불쌍하고 약자인 사람에게도 애정을 베풀어라는 것도 넓게 봐서 노비라든가, 천민에게도 배려를 하라는 뜻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목민심서 200주년을 맞는 기념행사도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정약용을 연구하는 다산연구소에서는 올해를 ‘다산의 해’로 삼아서 다산이 바라마지않았던 불공정에서 공정으로 불평등에서 공평으로 되는 깨끗한 나라가 되도록 국민들이 공직자들을 잘 감시하자고 합니다. 그런 정신적 바탕위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약용은 앞에서 500여권의 책을 썼다고 하는데 목민심서 외에도 눈 여겨 봐야 할 책이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다산 정약용의 많은 책 중에서도 흔히 1표 2서가 유명하다고 하지요. 1표는 경세유표란 책이고 2서는 목민심서와 흠흠신서라는 책입니다. 경세유표는 목민심서 보다 1년 앞서 쓴 책인데 국가제도를 바로 잡는 방법을 쓴 것이고 흠흠신서는 형벌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쓴 것이며 목민심서는 지금까지 말씀 드렸듯이 한 마디로 수령이 고을을 잘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쓴 것이지요. 목민심서에는 민본주의 사상이 녹아 들어 있습니다. 정약용은 말했습니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지, 백성이 수령을 위해서 있지는 않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평가처럼 교묘한 통치방법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 목민심서를 썼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한 평가라고 봅니다.

목민심서가 북한에도 번역돼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1962년 과학원출판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이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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