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을 보는 남북한의 관점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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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開天節)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사직단 단군성전에서 관계자들이 행사 준비를 하는 모습.
개천절(開天節)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사직단 단군성전에서 관계자들이 행사 준비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2019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우리는 2019년의 서력(西曆) 시간보다 2333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4352년 전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가 있었습니다. 고조선입니다. 오늘은 새해를 맞아서 우리역사의 여명기에 세워진 고조선을 보는 남북한의 관점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좋은 견해입니다. 고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남북한의 관점은 다른 점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이란 나라로부터 고조선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단군조선 다음에는 기자조선이 들어서고 다음에 위만 조선이 들어선 것으로 이해하면서 이 시기 고조선 시기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첫 나라가 세워진 것으로 봅니다. 북한에서도 고조선이 우리나라 첫 국가인데 노예제 국가라고 규정합니다. 이건 공산주의 역사발전사관에 따른 것이지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고조선을 단군이 세웠는데 기원전 30세기 초에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남쪽에서 보는 2333년보다 무려 700년을 더 올라가는 것이 됩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것은 서기 전 2333년으로 알고 있는데 북한에선 무슨 근거로 그렇게 올라 잡을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단군 뼈가 1993년 현재 5011년이 됐으니까 그 정도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에서는 1993년 평양 강동군에서 단군릉을 발굴하고 그 능에서 나온 뼈를 검사해봤더니 그게 5011년으로 나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단군의 존재가 4352년보다 훨씬 더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럼 한국에서 말하는 기원전 2333년은 어디에서 나온 근거입니까?

임채욱 선생: 중국에 요 임금 있지요? 그가 즉위한 해가 서기 전 2333년입니다. 중국 역사책 위서(魏書)에 단군도 이때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서 2333년을 단군즉위 연도로 정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던 해 그러니까 1948년 9월 25일에 단군이 건국한 해를 단기연호로 채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군기원 사용은 이보다 앞서서 고려 때도 사용했고 20세기 초 대종교나 단군교에서는 단기연호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문헌자료 기록으로 단군의 건국을 가늠하고 북한에서는 단군유골이라는 고고학 자료로써 단군의 건국시기를 정한 것이 되군요. 어느 것이 합당한지 아직은 일치되는 결론이 없지요? 연도문제는 미정인체 두고 다음은 고조선의 강역, 그러니까 고조선의 중심지는 어디이고 다스린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말씀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거론되는 설은 몇 가지가 됩니다. 첫째, 현재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유역설이 있고 둘째, 고조선의 중심지는 현재 중국 요녕성 일대이다가 후기에 평양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셋째, 고조선은 처음부터 요녕성 일대에 있었다는 설입니다. 넷째, 단군신화를 실재로 있었던 역사로 보는 견해에 따라 고조선은 환웅과 단군이 다스리던 배달국 시대에는 산동반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을 포괄한다는 설입니다. 이 네 번째 설은 한국의 이른바 재야역사학자들이 주로 주장하는 설입니다. 한편 북한에서는 고조선의 강역을 조선반도를 포함해서 동북아시아 넓은 지역에 걸쳤는데, 조선 옛 유형의 사람들은 대흥안령 경계선에 이르렀고 후기에 오면 만리장성 경계선까지 영역을 넓혔다고 말합니다.

고조선 중에서도 단군이 다스렸다는 단군조선의 역사는 시작과 마지막뿐 아니라 그 영역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신화나 역사를 기록한 문헌자료, 그리고 집터나 무덤 터에서 나온 고고학 자료로서 논거를 마련합니다만 단군조선뿐 아니라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도 지금 설명처럼 그 강역을 확정하기 매우 어렵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조선 연구에서는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일이 있습니다. 고조선을 아주 거창한 나라로 해석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고대에는 나라의 국경이 오늘날처럼 명확할 수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넓은 빈 공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조선의 범위를 만주 땅과 한반도 북부에 걸친 큰 나라로 그리는 것은 당시 실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조선의 영역을 대동강 유역 일대로만 한정 짓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 고조선을 세운 사람들은 지금 남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 조상으로 봐도 되는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 되지요. 대체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상 고대사 강역은 어느 한 종족만이 차지해서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지만은 안 했던 것입니다. 한 종족이 머물던 자리에 다른 종족이 들어와서 밀어내고 또 밀려나는 일들이 수없이 이어졌다고 봐야지요. 어떤 학자는 고조선 영역에서도 5개 민족들이 들어오고 밀려나면서 우리민족과 관련을 맺었다고 주장합니다. 모두가 말 타고 유목생활을 하는 기마민족들인데, 그 5개 민족은 흉노족, 선비족, 돌궐족, 몽골족, 여진족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을 맺습니까?

임채욱 선생: 흉노는 언어와 문화, 무덤유적이 우리와 유사하고 선비는 고조선의 한 파이며 돌궐은 지휘부 일부가 고구려 왕가와 이어진다고 합니다. 또 몽골은 칭기즈칸의 집안이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19대손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여진은 그들 시조가 고구려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조선 영역에서도 바로 우리 조상들이 아닌 사람들도 살았다는 말이 됩니다.

북한은 고조선이 노예제 국가라고 규정을 했는데 남북한은 고조선을 어떤 국가로 봤는지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고조선이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 조선으로 된다고 보면서 단군조선을 기록상 단군이 세운 나라이지만 고고학적으로 볼 때 국가성립과 관계를 짓기가 어렵다는 견해도 있지요. 국가형성단계는 청동기문화가 이뤄지는 서기 전 12세기쯤인데 이때는 단군조선이 아니라 기자조선이 시작된다고 보지요. 말하자면 단군조선을 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단군조선이 아주 발달된 문화를 가진 나라로 봅니다. 특히 통치기구에서 단군은 종래의 원시적인 정치기구를 특권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바꾸고 그것을 폭력과 결합시켜서 행정, 사법, 군대를 총괄하는 강력한 권력기구를 만들어 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100만년이나 계속돼 오던 원시시대를 끝장내고 동방에서 처음으로 국가시대, 문명시대를 이뤄냈다고 말합니다.

어떻든 우리민족사의 아침을 여는 고조선에 대한 견해도 남북한 간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견해의 접근을 위해서는 남북한 학자들이 자료도 교환하고 공동연구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임채욱 선생: 네, 학자들의 연구는 남북한을 잇는 교량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쪽과 저쪽을 잇는 것은 학자들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논리와 논리로 대화하면서 좋은 접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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