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새해 덕담과 삶의 질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01-06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달 31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설맞이 축하 공연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설맞이 축하 공연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덕담은 대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소원 성취하게”처럼 짧은 몇 마디지만 여기 내포된 뜻은 상대방의 모든 인간사가 순조롭고 행운스럽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새해 2020년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는 새해 초는 언제나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됩니다. 새해 남북한 표정은 어떤지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올해는 2020년 경자년입니다. 서울에서는 종로 보신각종이 33번 울리면서 새해를 맞았고 평양에서는 평양역 시계가 자정을 알릴 때 중구역 경상동에 있는 평양종이 12번 울렸습니다. 서울이나 평양이나 서울이나 평양은 다 영하의 추위 속에 하늘에 불꽃과 축포가 오르고 시민들은 환호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평앙시간도 서울시간과 같았다는 겁니다. 2015년 북한에서 새로 평양시간을 정하는 바람에 남북한 시간이 30분 차이가 났는데 재작년 5월 다시 같게 한 것이지요.

새해를 맞는 시가지는 밝은 불빛으로 장식되고 기쁜 표정의 사람들은 흥청거림의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갔겠네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곳곳의 전망대에 오른 서울시민들은 불꽃이 하늘을 뒤덮는 가운데 불 밝힌 서울의 야경을 파노라마로 훑으면서 새해 첫날의 첫걸음을 뗍니다. 그 걸음들은 환희의 물결을 이루면서 길게 이어졌습니다. 평양도 시가지 조명이 전에 없이 밝아서 멋진 야경을 이뤘습니다. 인민대학습당, 주체사상탑, 천리마동상, 류경호텔, 빙상장, 그밖에 무슨 기념탑 등에 조명을 환하게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조명을 불장식이라 표현하는데 이 불장식이 창전거리, 여명거리, 미래과학자 거리 등에도 나타났습니다.

전력난으로 수령 동상 외에는 어두웠다는 몇 년 전보다는 나아진 모양이지요?

임채욱 선생: 전력난이 좀 완화됐는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최고통치자가 평양시 야경을 황홀하게 보이게 불장식을 잘하라고 말했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불장식이 건물전체를 환하도록 밝게 비추던 종전의 조명방식과 다르게 기둥과 같은 특정 건축요소들만 돌출되도록 특색 있게 했다는군요.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집집마다 설날 행사가 시작되지요?

임채욱 선생: 새해아침은 조상에 대한 차례와 덕담을 주고받는 세배로 시작되지요. 세배가 어른에게 드리는 새해 첫 인사라면 덕담은 잘되기를 바라는 언어적 표현이지요.

덕담은 어떤 내용으로 주고받는지요?

임채욱 선생: 덕담은 대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소원 성취하게”처럼 짧은 몇 마디지만 여기 내포된 뜻은 상대방의 모든 인간사가 순조롭고 행운스럽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건강상태, 교육성과, 직장생활, 금전축적, 이웃관계, 여가시간 등등 개인적 삶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이 잘되기를 서로서로 비는 것이지요.

그런데 덕담은 또래끼리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임채욱 선생: 맞습니다. 덕담은 본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대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세배를 할 때 “과세 안녕하셨습니까”라든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하듯이 축원하는 인사말 형태로 합니다. 근데 요즘 한국에서는 아랫사람도 윗사람에게 ‘복 받으십시오’ 합니다. 그러니 아랫사람도 윗사람에게 덕담을 한 것이 되지요. 차라리 북한에서처럼 “새해를 축하합니다”라고 하면 그건 축원의 인사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세배를 할 때 아랫사람은 웃어른께 “새해 복받으세요”하면 안 되겠네요?

원래는 그렇지요. 하지만 어쩝니까? 아랫사람도 윗사람에게 덕담을 해도 되는 세상이라면 세배 때 “복 많이 받으세요”해도 되는 거지요.

덕담의 유래를 알면 아랫사람이 해도 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임채욱 선생: 우리는 덕담을 통해 더럽고 나쁜 것을 씻어 없애고 좋은 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덕담의 유래는 사람이 하는 말에 신비한 힘이 있어서 말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겠지요. 오늘 날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 fulfilling prophecy)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겠지요. 이를테면 잘되기를 바라면 결과도 그런 쪽으로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좋은 예언을 하는데 아래 위를 굳이 따질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덕담으로 복이 오고 즐거움이 온다면 그 아니 좋겠습니까? 덕담을 아낄 것은 아니지요.

임채욱 선생: 네, 복과 즐거움이 양적인 성취로 얻어지거나 질적인 성취로 얻어지든 간에 그 성취는 만족감이나 행복감으로 나타나겠지요.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가져오는 덕담이라면 덕담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려는 서로의 격려이며 다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덕담을 삶의 질과 연결시켜서 해석하는군요. 북한에서도 새해 아침에 덕담이 오고 갔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이지요. 어른들은 자식들이 건강하고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디나 같지요. 다만 수령사진을 향해 만수무강을 비는 인사를 먼저하고 자녀들 세배를 받는다는 것이 다르겠지요. 그리고는 수령의 신년사를 듣고 학습해야 하는 일 때문에 가족 간의 소망을 비는 일이 선차적인 일에서 밀리기는 하겠지요. 올해는 신년사 대신에 전원회의 내용을 학습해야 하겠군요.

전원회의에 따른 전투적 과업을 수행하려면 힘들 테지요?

임채욱 선생: 당 전원회의에서는 인민을 잘살게 하려고 장구한 투쟁을 결심했다지만 이 투쟁 속의 전투적 과업은 힘든 것이지요. 그래서 당이 요구하는 대로라면 개인의 안락한 생활은 희생돼야 하지요. 북한당국은 혁명하는 인민들이니까 언제나 충성의 열기 속에 당국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말하고 있지요. 지금과 같은 삶의 조건 속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당국이 시키는 대로 하지만 언젠가 그 삶의 조건이 바뀔 때는 인간 본성을 쫓아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또 다른 행동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국민의 만족감이나 행복감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임채욱 선생: 여러 조사를 보면 대체로 물질적 만족감은 높은데 정신적 행복감에서는 떨어지는 같다고 하지요. 물질적 궁핍이 없어도 정신적 결핍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최근 한국의 한 삶의 질 조사에서 55세서 75세에 이르는 연령층 생활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6점대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속에 바람 잘날 없이 시끄러운 정국이 국민 삶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지요. 삶의 질을 낮추는 촉진제가 여러 가지 지적됩니다. 나라발전의 에너지였던 원자력이 주저앉으려 하고 있고 그렇게 힘들여 성공시킨 산림녹화 지대가 태양광 시설 보급으로 훼손되고 있는 현실도 삶의 질을 낮추는 촉진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삶을 휘젓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지요. 갈등과 반목이 삐죽이 고개를 내미는 혐오사회가 되고 있다는 진단도 있지요.

새해 아침에 남쪽사람이 주고받은 덕담이 삶의 질과 관계되는 이야기라면 북쪽사람은 소설가 뚜르게네프가 묘사한 혁명가의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 생활이란 추위, 굶주림, 증오, 멸시, 질병, 졸음을 참아가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북한주민들도 혁명투쟁을 떠난 개인의 순수한 행복이란 있기 어려운 조건에서 벗어나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탄력성 있는 사고, 다양한 생활방식, 다채로운 오락생활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느껴야 진정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