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사상과 통일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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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고산사 소장 원효대사 진영 모사본.
일본 교토 고산사 소장 원효대사 진영 모사본.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한 해의 들머리에서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듭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분단된 채로 살아야 하는가, 남북한이 각기 다른 나라로 살아도 민족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정녕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런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요. 작년에 남북한 정상이 만나기는 했지만, 그게 통일문제를 꺼내기에는... 그보다 더 우선적인 문제, 이 땅의 평화라 할까, 먹고 사는 문제랄까 교류문제 그런 것에 매달려야 했겠지요. 올해 김정은 신년사를 봐서도 통일을 내다보는 전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통일문제가 논의될 때가 올 것이지요.

통일이라면 사람들은 통일방안이라든가 무슨 통일원칙 같은 것들을 내세우는데 그런 것들 보다 더 기본적인 어떤 사상은 없을까요?

임채욱 선생: 저는 통일에는 기본이 되는 논리가 있고 윤리가 있고 그걸 이뤄낼 사람들의 현실적인 심리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기본이 되는 논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걸 화쟁사상(和諍思想)으로 풀어봤으면 합니다. 통일논리를 화쟁사상에서 찾는 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정책가라든가 학자들 속에서 간혹 언급되면서 들어난 경향이기도 합니다.

화쟁사상이라면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말한 사상이 아닙니까? 그 옛날, 1300년도 더 전인 그 때 나온 것인데 어떤 힌트가 있는지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화쟁사상의 개념이랄까, 본질부터 설명 좀 부탁합니다.

임채욱 선생: 글자풀이부터 해 볼게요. 화쟁에서 화는 화할 화로 평화라 할 때 쓰는 화지요. 쟁은 간할 쟁인데 잘못을 깨닫도록 말하는 것이지요. 그럼 잘못을 깨닫게 말해서 화합하는 뜻이 되겠지요? 글자풀이대로라면 이렇게 간단한 것이지만 화쟁이란 말에는 아주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화쟁은 대립과 모순이 있다면 이를 조화하고 극복해서 하나의 세계로 나가려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논쟁을 조화로 바꾸려는 사상이지요. 그게 가능할까요? 본래 부처님은 아예 쟁점이 없는 무쟁(無諍)을 지향했지요. 무쟁의 세계는 저쪽과 이쪽, 즉 피아간에 대립이나 시비가 아예 없는 절대적인 조화의 세계를 말하지요. 그렇지만 원효는 현실세계에는 무쟁이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이를 조화하고 극복하려는데 초점을 뒀지요.

좀 더 쉽게 부연설명을 하신다면?

임채욱 선생: 이렇게 설명해볼게요. 고려 때는 불교가 국교처럼 됐지만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한 것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불교는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은 쟁(諍)으로 맞서지 않고 조화의 정신으로 쟁을 이겨나갔고 오히려 쟁을 화(和)로 승화시켜서 결과적으로 유교인 들까지 교화시켰던 것입니다. 조선조 유학자들 중에도 불교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려 한 사람이 많지요. 이런 면에서 화쟁사상을 자유와 평화를 지향한 사상으로도 봅니다.

그런데 이런 화쟁사상이 오늘날 남북통일과도 연결된다면 어떤 부분에서인가요?

임채욱 선생: 원효의 화쟁사상이 남북통일에 사상적이랄까, 논리적이랄까 어떤 암시나 실마리를 제공할 가능성을 찾자는 것이지 화쟁사상에서 바로 그게 나온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떻든 화쟁사상을 통일문제와 처음으로 연관시킨 심포지움이1987년 11월에 서울에서 열립니다. 심포지엄 주관은 대한전통불교연구원입니다만 주최는 당시 국토통일원입니다. 이 심포지엄에서 당시 장관이던 허문도는 말하길 원효대사는 중국의 당나라가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그 시대에 정신의 최고봉에 오른 우리 민족의 선인이라고 전제하고 “민족통일의 과제를 앞에 두고 연찬과 탐구의 길에 나서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민족의 가능성에 눈뜨고 도전해보기를 소망함으로써... ” 이 심포지엄을 연다고 밝혔습니다.국내학자 논문 25편 국외학자 논문 9편 중 화쟁사상과 통일문제를 직접 연결시킨 것은 한편도 없지만 이후 한국학계에서는 화쟁사상을 통일문제와 연관시킨 논문들이 등장하게 되지요. 지금은 상당히 많은 주장들을 볼 수 있습니다.최근만 해도 남쪽 통일부장관이 불교계 어느 단체에 가서 화쟁사상이 삼국통일 시기 정신적 역할을 했듯이 오늘날 남북관계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는군요.

그럼 이런 의미 있는 사상을 북한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이나 통일에 기대하는 면이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화쟁은 쟁론을 화합한다는 뜻이라면서 그 쟁론을 극복하자면 서로 자기의 견해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견해들을 다 같이 화합, 융합시켜서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 화쟁사상의 본질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사실대로 언급한 것이고 그 해석에 들어가면 화쟁사상은 비판받을 부분이 많은 사상이 됩니다. 우선 화쟁사상이 나온 이유가 불교의 신비주의적인 교리를 합리화하고 대중에게 더 잘 주입시키기 위해 나온 사상으로 규정합니다.그래서 화쟁사상의 견해로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불교의 진리이고 부처의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상은 당시 인민대중의 자주의식 발전에 많은 지장을 주는 것이 됩니다. 화쟁사상의 요구대로라면 통치배들과 인민대중 사이에 아무런 대립과 차별도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결국 신라에 의해 멸망된 백제지역 주민이나 고구려 지역 주민들이 자기의 처지를 감수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고 풉니다. 그러니까 신라에 투쟁할 것이 아니라 신라의 통치질서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이끌어 낸 사상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선 결코 환영할 사상이 되지 못하겠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이 아직 기대고 있는 사상적 배경이 뭣입니까? 주체사상? 말이 주체지 그것보다 아직도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한다면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사정에서 공산주의 사상의 무오류성을 믿어온 사람들이 화쟁사상이 말하는 이 사상이나 저 사상이나 다 융합할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기가 어렵겠지요. 공산주의 이론에서 대립은 정반합으로 발전되는 것인데 화쟁사상에서는 대립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니까 이건 궤변이라는 것입니다. 엄연히 있는 대립을 무마시킨다는 화쟁사상은 신라 지배계급이 필요해서 나온 사상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도 가능성의 세계를 찾아봐야 하는 것은 정책가들의 뜻일 터이니까 앞으로 남북 정책가나 이론가들끼리 화쟁사상을 논제로 하는 토론도 해보면 좋은 해답도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임채욱 선생: 네, 그런 접근 기회가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늘 말하지만 남북관계에서 이론을 따지는 학자들이 역시 통일을 추진할 주민들의 가교역할을 할 것이니까 그런 토론회를 자주 여는 것이 좋겠습니다. 북한이론가나 정책가들도 언젠가는 화쟁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인식할 날도 오겠지요. 화쟁사상이 어제까지 적으로 싸우다 오늘은 한 민족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 민족을 위한 이념이 될 수 있고 화해의 논리와 통합의 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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