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등산문화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2-2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에서 무사산행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시산제를 하는 모습.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에서 무사산행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시산제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설이 지나면 한국에서는 시산제를 열고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 등산문화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 볼까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많은 등산단체들, 등산 팀들이 시산제를 열면서 기지개를 켜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지요.

시산제는 어떤 형식으로 열립니까?

임채욱 선생: 시산제는 한 해 첫 산행을 하면서 산신에게 지내는 제사입니다. 물론 새해 첫날도 등산을 하지만 대체로는 음력으로 새해가 된 뒤 따로 날을 잡아서 산신에게 한 해의 무사산행을 빕니다. 그래서 제사형식을 따릅니다. 제물, 그러니까 제사음식을 차려두고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면서 산신을 모십니다. 제주, 그러니까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 그 제단으로 산신이 내려오지요. 산신에게 축문을 읽으면서 소원을 이루도록 도와달라고 기원을 합니다. 물론 시산제에서는 산신에게 제사 지내는 형식뿐 아니라 산을 오르면서 자연을 보호 하자라든가, 예의를 갖자는 결의를 선서하는 형식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제사 때 읽는다면 제문이 아닙니까? 제문과 축문이 다릅니까?

임채욱 선생: 보통은 제문과 축문이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실은 다릅니다. 둘 다 제사 때 읽는 것이지만 제문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거나 추도할 때 읽는 글이고 축문은 신령에게 무엇, 무엇을 들어 달라고 축원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추모할 때 읽는 제문은 하나 인간이 살아 온 인생을 추모하면서 좋고 슬펐던 온갖 이야기들을 말하고 그 사람의 생전 품행이나 능력을 기리기 때문에 좀 깁니다. 하지만 축문은 신령에게 소원을 밝히고 음식을 드시라고 권유하는 것이기에 비교적 짧습니다.

산신은 어떤 존재이기에 제사의 대상이 됩니까?

임채욱 선생: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산을 신성한 영혼이 깃든 곳이라고 봤습니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하늘에서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왔고 가락국 시조 김수로는 구지봉으로 내려왔습니다. 신라 육촌을 이룬 조상들도 하늘에서 모두 산봉우리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산을 숭배하는 산악숭배 사상이 싹텄고 그 연장으로 산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산에 산신이 존재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산신은 단군이지요. 이 세상을 다스린 후 산신이 돼서 산으로 들어갔다고 하지요.

산신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까?

임채욱 선생: 여기에서 신이 존재하느냐, 않느냐 문제는 별개입니다. 다만 우리 조상들이 믿어왔던 신들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여러 신을 믿었습니다. 다른 신들을 배척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천지신명을 믿고 산신이나 조상신을 믿고 역사상 실재 했던 위대한 사람을 신으로도 숭배했습니다. 또 집을 지킨다는 가택신이나 부엌을 맡은 조왕신도 믿었습니다. 시산제 때는 가장 높은 신, 그러니까 하늘의 해와 달, 별을 다스리는 천지신명께 빌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두 번째 단계인 산신을 대상으로 제사를 지냅니다. 우리가 산에 있는 조상 묘소에 가서도 그 묘소를 지켜주는 산신에게 먼저 제사를 올립니다. 제사는 본디 숭배의 마음과 함께 집이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얻으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적인 등산 강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등산인구는 얼마나 될까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한국에는 등산인구가 1800만 명이라나요? 그럼 인구의 3분의 1이 됩니까? 등산단체가 수만 개 있다니까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속해 있으니 그런 통계숫자도 나오겠군요. 등산모임도 학교동창 등산모임, 직장 등산모임, 전문 등산모임, 또 산행을 영업적으로 이끄는 안내등산회 등등 성격에 따라 아주 다양하지요.

한국이 등산강국이란 것은 등산인구가 많다는 것도 있지만 세계의 높은 산을 정복한 등산가가 많다는 것도 한 몫 하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한국 등산인들의 해외 등산은 1962년부터 시작됐는데 1977년 9월 고상돈은 에베르스트 정상을 오르고 이어 히말리야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르는 등산가가 여럿 사람 등장합니다. 거기에다가 5대륙 최정상을 다 오르는 등산가도 나오고 남극과 북극의 극지를 밟은 사람도 나오게 됩니다. 여성등산가 중에도 에베르스트를 비롯해서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고영미, 오원선 등이 등장합니다. 1984년 히말라야 산맥에는 세계 내노라하는 등산 팀 41개 팀이 경쟁적으로 최고봉을 향했는데 그 가운데 17개 팀이 한국 팀이었습니다. 굉장한 일이지요.

북한에서는 등산에 관한 소식이 별로인 것 같습니다.

임채욱 선생: 그런 것 같습니다. 전문적인 등산은 없고 다만 관광을 하는 수준으로 산을 오르는 일은 있습니다. 일반주민이 묘향산에 오른다거나 금강산에 간 모습을 더러 기사로 되고 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한국 등산인처럼 등산복을 입지 않고 트레이닝 복을 입은 모습입니다. 심지어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도 묘향산을 등산 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길 따라 산에 있는 절 구경 간 것도 등산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일반주민은 등산을 그렇게 많이도 못하는데, 선대통치자 김정일은 등산을 여러 곳을 했습니다.

김정일은 어떤 산을 올랐는지요?

임채욱 선생: 김정일은 평양에 있는 용악산을 비롯해서 금강산, 백두산, 묘향산, 칠보산 등등 어디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산은 다 다녔지요. 용악산은 평양 대동군에 있는 산(292m)으로 평양8경에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산인데 이 산을 오르면서 이 가파른 산을 오른 것도 인민을 위해 오른 것으로 돼 있지요. 금강산은 어릴 때부터 여러번 간 기록이 있고 백두산도 6번이나 가서 정상에 9번을 올랐다고 합니다. 묘향산도 여러 번 갔습니다. 그 중에는 군 총참모장 오00와도 간 일이 있는데 단편소설 <등산>이란 제목으로 문학잡지(김성관 작, 조선문학 93. 7.)에 실렸습니다. 이 소설을 보면 김정일 외 오일민 장령 등 10여명이 왔는데 김정일은 잠바식으로 지은 연회색 등산복을 입고 전이 넓은 둥근 등산모를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초에는 묘향산에 휴식차 왔기 때문에 상원암까지만 가기로 했던 것인데 김정일이 못 오른 비로봉 정상을 오르자고 해서 정상까지 간 것으로 나옵니다. 마침 여러 기관이나 기업체에서 여비를 받아서 묘향산을 찾은 주민들도 보이는데 이 때 김정일은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가운데 애국주의가 나온다면서 인민들 산천유람을 강조합니다.

일반주민들도 등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등산이 강한 규율과 고상한 혁명적 동지애를 이끌어 낸다고 봅니다. 그리고 묘향산, 칠보산을 비롯한 수많은 명승지에 통치자의 현명한 영도와 배려에 의해 등산로가 마련돼 있어 청소년학생, 근로자 들의 체력단련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고 말은 그렇게 합니다.

앞으로 북한의 이름 있는 산들도 남쪽의 전문 등산가나 일반 등산인 누구나 갈 날이 올 때가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자유왕래가 아니라 이웃나라 가듯이 만 돼도 남쪽의 수만 등산인 들이 다투어 북한의 명산들을 찾을 것입니다. 등산로가 잘 마련돼 있으면 더 좋겠지요. 등산은 등산으로만 끝납니까? 네팔 오지에 학교를 16개나 세운 한국 등산가처럼 많은 남쪽 사람들은 북쪽 동포들을 돕고 싶어지고 실천으로도 옮기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