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통일연습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03.23
blue_roof_b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의 주택들이 지붕을 파란색으로 단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지난 번 시간에 남북한 간에 통일을 이뤄내는 데는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한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책과 더불어 남쪽의 국민과 북쪽의 인민들 간 감정대립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추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와 관련해 북한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좋습니다. 통일과정에서 남쪽사람들이 북쪽 사람을 꽉 막힌 이북내기라고 무시하고 북쪽사람들이 남쪽사람을 건방진 이남 것들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지요. 이런 자세를 바꾸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게 바로 통일연습이지요.

통일연습이라,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겠지만 뭣보다 어떤 자세나 태도를 가지는 게 중요한지를 짚어볼까요?

임채욱 선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통일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란 사람입니다만, 그가 말한 ‘사랑의 기술’을 떠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서로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관심을 기우린다든가, 이해를 하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세하게 언급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가지죠. 첫째 상대방에 관심을 가져라, 둘째 상대방을 이해하라, 셋째 상대방을 존중하라 넷째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남북한 주민들 간에도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끊임없이 관심을 기우려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서로를 알아야 하고 상대방 처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진 좋은 부분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은 책임까지 지는 것입니다.

남북이 서로서로를 사랑하라지만 사랑의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임채욱 선생: 그 환경이라는 것이 주로 정치, 군사적인 면의 환경이겠는데, 핵을 내려놓지 않고 있는 북한에 대해 한국국민은 결코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겠지요. 올해 들어서는 오히려 새로운 길을 가겠다면서 정면돌파전을 벌이려 합니다. 거기에다가 자력갱생을 ‘혁명의 생명선’이라고 아직도 외치는(노동신문, 19. 12. 12.) 정권을 존중하기는 쉽지 않을 테지요. 북한주민 입장에서도 한국을 잘 볼 리가 없지요. 전에 거지가 많은 곳으로 잘못 알았던 시각은 조금 바뀌어졌지만 여전히 빈부격차 때문에 사람 못 살 곳으로 각인되고도 있지요. 하드웨어 부분의 환경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부분의 환경도 서로를 사랑할 처지가 아닌 것 같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면들이 보입니까?

임채욱 선생: 75년간의 남북단절은 남북한이 함께 가진 문화의 보편성 보다 이데올로기로 포장되고 무장한 특수성이 더 짙은 냄새를 풍기고 있지요. 그러니까 문화적으로도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더 크게 비춰집니다. 그래서 누구나 입을 열면 동질성 회복이 중요하다고 외칩니다. 동질성회복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1945년 광복당시처럼 되면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동안 이질화돼 오던 모습이라도 앞으로 더 달라지지 않고 같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질화가 지금까지의 모습이라면 동질화는 앞으로 남북한이 힘을 합쳐 추구해야 할 과제가 되지요. 이런 동질화과제 같은 것들이 서로 사랑하게 될 환경을 만들 것입니다. 꽁꽁 언 얼음 밑에도 물은 흐르듯이 열릴 길 없는 남북 사랑의 환경에도 이를 극복하는 흐름은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되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어떻든 남북한 주민은 남북한이 지금 향유하고 있는 문화에 다름은 있어도 우열은 없다는 관점을 가져야 좋겠습니다. 그래야 상대방 문화의 좋은 면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서로가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요. 그래서 자기 문화를 보다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받아들일 때 어떤 기준은 둬야지요. 가령 문화발전면에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 문화발전성이라든가 자기쪽 문화를 보완하는데 도움되는 가치보완성, 또 정치적 부담이 없어야 하는 최소정치성 등등이 되겠지요.

이런 기준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북한문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말다듬기 사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국악기 개량사업도 죽 해옵니다. 우리말 이름도 장려하고 있고 민간의료요법 체계화에도 힘을 기우리고 있습니다. 사실주의 그림이나 조각 공예수준은 아주 높습니다. 또 교예라고 하는 서커스 수준도 높습니다. 그밖에도 가무분야에도 눈여겨 볼 작품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문화 중에서 배워야 할 부분도 있을 텐데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한국문화를 양키화되고 왜색화된 퇴폐문화로 보기 때문에 겉으로는 받아들일 것이 없다고 하겠지요. 그들은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 휴대폰 시장 반을 차지한다든가 방탄소년단 노래가 전 세계 젊은이를 열광시킨다든가 하는 데는 외면하겠지요. 하지만 한국 쪽 입장에서는 북한이 개방사회가 가진 미덕을 조금이라도 가지기를 바라야겠지요. 한국의 개방성,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바탕한 문화지요. 얼마 전 한국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것이 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개방사회라서 가능했다는 평가지요. 이 영화의 소재가 된 빈부격차문제가 한국이 개방사회가 아니라면 영화로 다뤄질 수 있을까요?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 세 번째와 네 번째가 되는 존중과 책임을 떠올릴 때 남북한 주민은 이를 실천할 준비를 해야 할 텐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지금 그리스 땅의 패권을 두고 다퉜지만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유지한 아테네가 결국 소수 독재체제 국가인 스파르타보다 문화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한국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동체니까 북한문화 중에서도 존중할 만 것을 찾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걸 발전시키는 책임도 져야합니다. 이럴 때 남북한은 상생을 할 길을 찾을 것입니다. 우위에 있는 문화에 기생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배우고 도울 수 있는 상생이지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나 북한의 속도전문화 같은 것을 정리해보는 것도 아주 초보적인 통일연습이 되겠지요. 통일연습을 위해서는 뭣보다 전통적인 민족문화에서 좋은 자료를 찾아내서 그간의 달빛문화를 탈피하고 햇빛문화로 비약해야 하겠습니다.

전통적인 민족문화에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찾아 낼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요?

임채욱 선생: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만 모르는 보물이 많다는 거죠. 한글, 직지, 한옥, 사랑방문화, 골목길, 조선종이, 선비문화, 두레, 효도문화, 홍익정신 등이 21세기에 한국사람들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내용으로 꼽았지요. 이런 것들로 해서 한국은 햇빛을 받아서 빛을 내는 달빛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돼야하지요. 이런 길에 남북한은 함께 가야 합니다. 다시 말 합니다만, 남북한 문화에 다름은 있어도 우열은 없다는 관점에서 서로서로 관심과 이해와, 존중과 책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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