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작명 습관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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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aged_keumkang_rock-620.jpg 김정일의 지시로 새겨진 금강산 자연바위의 글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수령님은 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장군봉으로 고치게/남한이나 미국에서 보니까? 상당히 역사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일성의 교시나 김정일의 말이 성경책을 그대로 가져다 옮긴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하나님만’ 빼고 ‘김일성 대 원수께서’ 이렇게 옮긴 거라고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 책 이름짓기 이모저모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금강산 탐승길에 올랐던 남쪽 사람들은 금강산 곳곳에서 예전에 알던 것과는 다른 이름을 가진 계곡이나 폭포를 만나게 됩니다. 금강산 구룡폭포 근처에 있는 물줄기 삼록수(蔘鹿水)는 이름 그대로 산삼과 녹용이 녹아든 맑은 물이어서 가히 보약과 같은 물이라 하겠는데, 북측 안내원에 따르면 이 물 이름을 지은 사람은 바로 그들의 수령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수령이 아니라 전 전 수령 김일성을 말하는 것인데, 김일성과 김정일은 금강산에서 120여 개의 이름을 새로 짓거나 고쳤다고 하는데 김일성 작명 습관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일성 부자는 현지 지도의 그 바쁜 나날에도 명승지의 이름 개명했는데 합리적인 것도 있지만, 어찌 보면 제멋대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은 지적합니다.

임채욱 선생: 김일성이 금강산 산천 이름에 손을 대기 시작한 시기는 1947년 9월 말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그때 금강산에서 휴양소 이름이 산화장이니 한화장이라고 부르니 휴양소 맛이 안 난다고 1각, 2각, 3각이라 부르라고 했으며, 유명한 구룡폭포 밑에 있는 운금폭포를 주렴폭포로 고치게 하고 조양폭포는 옥영폭포로 바꾸게 합니다. 이런 개명이 합리적인 것도 있지만 어찌 보면 제멋대로이지요. 바위에도 새로 이름을 짓거나 했는데 기관차바위, 땅크바위, 포바위, 어뢰정바위 같은 것들이 있지요. 그 많은 바위를 다 이름 지을 수야 없어 아들 몫으로 남겨 둔 것인지 1981년이 되면 아들 김정일도 병사바위, 사수바위 같은 이름을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지요. 아버지 김일성이 앉았던 곳은 충성대가 되고 어머니 김정숙이 식사를 준비했던 곳은 정성대, 김정일 자신이 아버지에게 샘물을 떠다 준 곳은 효성샘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은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위해 백두산 병사봉을 장군봉으로 고치게 한 것은 무식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임채욱 선생: 1963년 8월 초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 백두산에 오르는데요, 백두산 제일 높은 봉우리 이름이 병사봉이라니까, 수령님은 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장군봉으로 고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김정일의 무식이 드러납니다. 백두산의 병사봉은 군대 졸병이라는 병사(兵士)가 아니라 조선시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줄여 말하는 것이지요. 병마절도사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도 단위 국방책임자를 말하는 것으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지요. 이를 모르니 엉뚱하게 이름을 바꿔버리는 것이지요. 북한의 학자들이야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최고 권력자가 하는 일에 나설 수가 없었겠지요.

김씨 일가의 작명으로 5천 년 역사 속에 간직되었던 고유 이름들이 바뀐 것은 통일 때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자유아시아바송 정영 기자가 지적합니다.

정영 기자: 작명이라고 하는 것은 지방의 이름을 짓거나 사람의 이름을 짓는 걸 말하지 않습니까? 북한에 있을 때는 위대한 수령 하면 김일성 김정일 이런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놓으면 그게 굉장히 신성시 해 보이고 그 지방 사람들은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조금도 이상한 게 없었지요. 당연히 영광스럽게 받아들였고요. 그런데 남한이나 미국에서 보니까? 상당히 역사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들거든요. 왜냐면 한반도 북쪽 땅이라는 것은 5천 년의 역사를 가졌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구가 생겨서 몇십만 년이 지났고요. 그 과정을 통해서 고유하게 써오던 이름들이 있는데 어느 한순간에 김씨 일가가 한 70년을 통치하고 있는데, 그동안에 많이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방으로 볼 때는 김씨 일가의 가계 이름을 따서 많이 바꿨지요. 김형직군, 김형권군, 그리고 김정숙군, 김일성 종합대학, 김형직 군의대학, 김정숙 해군대학, 등 북한에서 기본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당과 군 이런 핵심 기관에 대학들은 전부다 김씨 가계 이름을 따서 부쳤거든요. 이런 걸 보면서 북한정권으로서는 김씨 일가의 대대손손을 꿈꾸지 않습니까? 이제 나라가 통일되고 북한이 개방되면 이런 작명도 달라져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한국에서 방영되는 채널 A 텔레비전 방송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탈북 여성들의 김일성 교시에 관해 이야기 들어봅니다.

탈북인: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김일성을 안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직 자기만을 믿어야 되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총살이거나 수용소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김일성 김부자 자기들만을 믿어야 되기 때문에 종교 탄압이지요 / 기독교에 특히 민감하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가 김일성의 교시나 김정일의 말이 성경책을 그대로 가져다 옮긴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거기서 ‘하나님만’ 빼고 ‘김일성 대 원수께서’ 이렇게 옮긴 거라고 그래가지고 그걸을 아오지로 보냈는데 그치지 않아요. 그런 건 무조건 사형감이에요.

김일성은 1970년 교시에서 종교는 미신이다. 종교인은 죽어야 그 버릇을 고친다고 했습니다. 북한 김 씨 일가의 교시와 이름 짓기는 무엇인가 상관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김일성 부자는 사이좋게 지하철 역이름을 나누어 지었다고 합니다.

임채욱 선생: 평양에 있는 지하철 역이름도 김일성 부자가 사이좋게 나눠 이름을 지었지요. 아버지 김일성은 붉은별역, 전우역, 낙원역, 봉화역, 삼흥역, 혁신역, 승리역, 전승역, 통일역을 짓고 아들 김정일은 건설역, 황금벌역, 건국역, 광복역 이름을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 있는 많은 다리이름도 김일성도 짓도 김정일도 지었는데 송신다리, 청천다리, 충성의 다리 등이지요.

김일성은 또한 땅이름이나 건축물, 산이름, 하천이름, 동네이름을 짓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상점이나 상품이름도 지었다고 임채욱 선생은 설명합니다.

임채욱 선생: 김일성은 현지답사를 하다가 ‘식사와 료리’라는 상점 간판을 보고는 주인을 불러 ‘식당’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지요. 그 뒤로 북한에선 상점이름은 없이 오리고기, 남새, 지짐, 단고기 처럼 상품이름만으로 상점을 알리는 곳도 많아졌지요. 좀 더 친절하게 생선국집, 농마국수집, 노치집, 물고기상점이라는 이름도 많지요. 김일성은 북한에서 처음 생산된 전기기관차 이름도 붉은기호로 짓고 모내는 기계는 대동강호, 볏단 묶는 기계는 모란봉호라 부르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 식물 이름도 새로 고칩니다. 산목련을 목란으로 고치는데 목란은 북한의 이른바 국화로 되어 있지요. 사과이름도 바꾸고 꽃 이름도 바꾸고 온갖 이름을 다 바꿉니다. 이런 작명습관은 김일성이 금강산에 있는 바위나 샘, 폭포이름을 바꾸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이미 황해도에 있는 곡산광산을 만년광산으로 바꾸고 겸이포제철소를 황해제철소로, 마동시멘트공장을 2.8시멘트공장으로 바꾸면서 평양에 있는 중앙목욕탕이름도 중앙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제1목욕탕으로 바꾸게 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기획,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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